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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책이 대체 역사소실인 로버트 해리스가 지은 '당신들의 조국(Fatherland)'이라는 책입니다.

'만약 세계 2차대전에서 독일이 이겼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가정하에..

히틀러치하의 승전국 독일에서 1960년대에 일어날법한 일을 소재로 한 꽤나 흥미로운 소설이죠.



그런데 이 책에서 '독일이 2차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정'이 재미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영국의 어떤 천재가 독일 해군의 암호체계이던 '이니그마(Enigma)'를 해독해서 독일 U보트에 치명타를 가했지만..

본 소설의 가정에서는 독일에서 영국이 '이니그마'를 해독할거라는 사실을 미리 간파하고, 그걸 역이용해서 대서양상에서의 U보트 활동이 극대화시켜 영국을 완전 고립시켜버렸고, 결국 고사당할 위기에 처한 영국이 독일과 휴전협정을 맺고, 덕분에 온 힘을 동부전선에 집중할 수 있었던 독일은 소련에게 승리를 거두고... 미국이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했을 때, 독일에서도 뉴욕 한복판에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미사일인 'V3'를 날려보냄으로.. 유럽은 독일 수중에 들어간 체 전쟁은 끝나고 독일과 미국은 냉전체제에 들어갔다. 라고 서두에 가정하고 있죠.



결국은 2차대전의 승패를 가르는 데 있어서 '독일의 암호체계를 연합군이 해독하느냐 못하느냐'가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는 가정이죠.

실제로 태평양전쟁에서도 미국이 일본을 압도적으로 제압하게 된 가장 터닝포인트 중 하나가 미국이 일본의 암호를 해독하기 시작한 때였죠.

암호를 해독한 덕분에 미국은 일본의 해군사령관의 이동정보를 입수해 공중에서 피격할 수 있었고,

태평양전쟁의 결정적인 터닝포인트였던 미드웨이 해전때도 미국은 일본의 암호를 해독해서 이미 일본의 작전을 훤히 알고 있었죠.

마치 스타크래프트에서 맵핵을 쓴 효과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뭐 이런 굵직한 예를 들지 않아도, 상대방의 암호를 해독한다는 것이 전쟁에서 얼마나 크리티컬한 영향을 줄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야구 얘기로 돌아와서...

야구에서도 암호가 있죠.

바로 코치와 선수, 선수와 선수들이 주고 받는 '싸인'이라는 것이 바로 야구에서 쓰이는 암호가 되겠죠.


그리고 이 '싸인'의 중요성도 야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죠.

오죽했으면 야구의 바이블인 '야구란 무엇인가'에서도 '싸인'이라는 제목으로 한 챕터를 할당해 꽤나 묵직한 분량으로 설명하고 있죠.



전쟁에서 상대방의 암호를 해독해서 결정적 승인을 잡는 것처럼,

야구에서도 상대방의 싸인을 해독할 수 있다면, 그것이 승패에 엄청난 영향력을 줄 수 있죠.


만약 상대방이 언제 뛰고, 언제 번트를 대고, 어느 코스에 어떤 구질의 공을 던질 것인지 등등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면...

상대방을 이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할러데이가 선발 등판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두산 베어스가 상대하는데...

할러데이가 이번에 직구를 던질지 슬라이더를 던질지... 그 공이 안쪽 벗어난 유인구인지 바깥쪽 꽉찬 코스로 들어오는 스트라이크인지 두산 타자들이 미리 알 수 있다면,

현재 메이저리그 20승을 눈앞에 둔 할러데이라 할 지라도 두산타자들을 막는건 결코 쉽지 않겠죠.



모든 스포츠는 전쟁과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따진다면 김성근 감독의 발언대로 '상대방의 암호를 해독하는 것' 즉 '사인을 훔치는 것'은 야구라는 게임의 일부라고 할 수 있고, '사인을 해독당하는 팀은 바보같은 것'이 될 수 있죠. 그리고 연합국에 암호를 해독당한 독일과 일본이 전쟁에 패한것처럼 사인을 읽히면 경기에 패배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그렇기 때문에 벤치에서 감독이 내는 사인이나 작전코치나 주루코치가 내는 사인, 심지어는 투수와 포수가 주고 받는 사인도 일반인이 보면, 저게 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지게 되는 것이겠죠.

사인을 내는 팀은 사인이 해독당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테고, 반대로 상대방은 그 사인이 어떤 작전을 담고 있는 것인지 해독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것이니깐요.


이렇게 본다면 상대방의 사인을 읽고, 못읽는 것도 야구 게임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공격팀의 작전코치나 주루코치가 내는 사인을 간파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죠. 그것을 읽는 능력도, 안읽히게 사인을 내는 것도 모두 야구의 일부니깐요.



하지만 야구가.. 스포츠가 전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야구(스포츠)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다는 것이겠죠.

전쟁에서는 상대방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스파이를 심든, 도청을 하든, 심지어는 상대방 핵심요원을 잡아서 고문을 하든, 상대방 기지에 침투해 병사들을 죽이고 암호해독기를 훔쳐오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죠.



반면에 야구(스포츠)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의 사인을 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죠.

대표적인 것이 어제 오늘 논란이 되고 있는 '포수가 투수에게 내는 사인'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일단 야구룰에서 타석에 선 타자는 포수가 내는 사인을 훔쳐 보는 것은 금지되어 있죠.

작년인가 제작년 포시에서 타석에서 머리를 흔드는 버릇이 있는 김동주가 상대팀 벤치로부터 그런 행위에 대해 어필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머리를 흔드는 행동'이 상대방 포수가 내는 사인을 타석에서 훔쳐본다고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포수는 투수에게 사인을 낼 때 경기장 양쪽에 있는 공격팀의 코치들이나 벤치 등에서 볼 수 없게 가랑이 사이에 손을 내려 은밀히 사인을 전달하죠. '야구를 무엇인가'의 '사인' 챕터를 보면 평상시에는 가랑이 사이로 내는 포수의 사인이 공격팀에게 노출될 염려가 없기 때문에 상대방을 속이기 위한 사인은 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다만.. 공격팀에서 주자를 2루에 내보낼 경우, 2루주자는 포수의 가랑이 사이로 내는 사인을 지켜볼 수 있기에 포수의 사인은 복잡해진다고 하더군요.

뭐.. 2루주자가 포수의 사인을 지켜보는 것 자체는 야구룰에서 금하고 있지 않으니깐요.


다만 2루 주자가 포수의 사인을 보고 타자에게 전달하는 것까지 막는 규칙이 야구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포수의 사인을 타자에게 전달하는 해위'는 어떤 나라의 어떤 야구에서든 금지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문법이든 불문법이든 말이죠.




만약에 야구에서도 전쟁과 똑같이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상대방 암호를 해독하는 것' 즉 '사인을 훔치는 것'이 허용된다면,

복잡하게 2루주자가 나가서 포수 사인을 훔쳐 교묘한 몸짓으로 타자에게 전달할 필요는 없겠죠.


항상 2루에 주자를 세워 놓을 수도 없고,

2루에 나간 주자가 영리한 주자일수도 있고 멍청한 주자일수도 있으니..

그냥 포수의 사인을 볼 수 있는 펜스쪽에 싸인해독 전문가를 심어놓고, 망원경으로 상대방 포수의 사인을 해독한 후,

타자의 헬멧에 무선 통신 장치를 부착해놓고 말로 전달하면 되겠죠.

'이번에 던지는 공은 안쪽 꽉찬 존으로 들어가는 커브야'

이런 식으로 말이죠.



혹시나 중앙펜스쪽에 대놓고 사람 세워놓는게 괜히 부담스럽다면,

홈팀에서 펜스쪽에 안보이게 비밀 토치카같은거 하나 만들어서 구멍 살짝 뚫어서 망원경 설치해놓고 사인을 전달해 줄 수도 있겠죠.

이렇게 되면 원정팀은 굉장히 불공정한 상태에서 게임을 치룰 수 밖에 없겠죠.




하지만 이런 것들이 허용된다면 아래 몇몇분들이 지적해 주신 것처럼 야구게임 자체의 진행이 어려워지겠죠.

또한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모든 것을 허용'해준다면 그것은 야구라는 게임의 공정성을 해치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재미를 반감시키겠죠.


결국 야구라는 게임을 적절히 재미있게 실행 시키기 위해...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다른건 괜찮은데 포수가 투수에게 내는 사인은 해독하면 안됨'이라 정해 놓은 것이겠죠.





뻘글이 상당히 장황해져 버렸는데... ^^;

어쨌든 김성근감독님의 인터뷰에서도 '어떤 사인이든 사인은 훔칠 수도 있다'는 뉘앙스도 보이는 듯 하고,

몇몇분들도 이에 대해 동의하는 분들도 계신 듯 하여...



그 부분은 저와 의견이 틀린 듯 하여 제 생각을 장황하게 적어보았네요.



여튼..

가을잔치가 가까워지긴 가까워진 모양입니다.



매년 가을잔치가 가까워지면 꼭 이런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는' 멘트들이 나와서...

일종의 심리전이라고나 할까요?

야구팬들을 흥분시키고는 했었는데.. 올해도 여지없네요.



페넌트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진작에 순위가 다 결정되어버린 상황이라...

야구에 대한 흥미가 많이 떨어져 있는데...


어서 가을잔치 시작했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