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야구에 대한 글을 좀 써보고 싶었습니다. 야구를 좀 인문학적으로 다뤄보고 싶었어요. 돌아가신 지 일년이 좀 넘은 eunie2 님이랑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으니님이 그러시더군요. 자신은 야구를 인문학적으로 본다고요. 그냥 지나가듯 이야기해서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잘 기억은 안납니다. 그리고 사고가 있고 난 후 가끔씩 으니님의 이야기가 간간히 생각이 나서 저도 야구를 인문학적으로 봤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어요.

인문학적으로 본다면 인간의 본성과 이성, 행동, 그리고 이들 관계 속에서의 야구를 본다는 것 쯤 될 것 같기는 합니다. 물론 누구든 정의하기 나름이겠지요. 저 같은 경우 야구를 볼 때 조직적이고 경제적 관점에서 야구를 봐오긴 했습니다. 감독의 시선에서 어떻게 선수를 구성하여 어떻게 기용하면 좋은 성적이 나오겠는가? 판단의 순간에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등등의 관점에서 보긴 했지만, 야구 선수와 감독을 인간으로 보고 그들의 행동을 통해 인간의 유적 특성을 바라볼 시도는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전에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에서 다뤘던 야구를 인상깊게 보긴 했지만 그걸 해낼 자신은 별로 없었어요. 물론 굴드는 과학으로 야구를 본 것이겠지만, 그의 야구 보기는 철저히 인문학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두가 너무 잡스러웠네요. 주저리 주저리 쓰려고 하는 데 사족이 길었습니다. 하여간 저는 야구를 인간의 한 행동으로 보고 야구 속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 번 정리해볼까 합니다. 이번이 처음이긴 한데 또 쓸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일단 집중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오늘 두산과 SK의 경기를 보면서 안타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지요. 특히 1사 만루 이성열의 타석에서 말이예요. 두산의 팀타율은 0.290을 넘지만 오늘 두산은 득점권에서 팀 타율에 훨씬 못미치는 타격을 했습니다. SK 투수들이 잘한 것이겠지만 신기하리 만큼 내야수와 외야수 사이의 필드에 공이 안떨어지더군요.

안타라는 건 참 오묘합니다. 미치도록 원하는 날에는 안나오고, 점수는 그만 냈으면 좋은 날에는 계속 터지곤 합니다. 이건 분위기라는 것이겠지요? 투수의 집중력과 타자의 집중력의 싸움이 투수와 타자의 싸움의 일부분일텐데 어떤 날은 투수의 집중력이 좋아서, 어떤 날은 타자의 집중력이 좋아서 한번 상대방의 집중력을 무너트려 버리면 미칠듯이 분위기를 타곤 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 "엘꼴라시코" 같은 경우는 투수와 야수의 분위기가 바닥이었던 것 같습니다. 투수는 던지는 족족 안타를 맞고, 야수들은 자기 앞으로 오는 타구들을 어찌할 바를 모르더군요.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날의 컨디션과 집중력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타격도 마찬가지여서 집중력이 좋고, 분위기가 좋은 날에는 정말 미칠 듯이 안타가 나옵니다.

그래서 타자의 집중력을 흐트려 놓는 것이 투수의 가장 큰 일인 것 같습니다. 공의 속도를 바꾸고, 공을 변화시키고, 공의 로케이션을 바꾸고, 작은 습관, 작은 템포까지 변화시키면서 타자의 집중력을 흝으려 놓으려고 투수는 노력합니다. 그런데  08년인가 김성근 감독과 최준석의 승부는 집중력을 흝으려 놓는 것을 역으로 이용하는 좋은 승부였습니다.  SK와 두산의 경기에서 주자가 있었고, 투수는 기억안나고, 타자가 최준석이었던 것만 기억이 납니다. 다른 건 다 기억이 안나는데 단 투수가 선택한 구종과 수비 쉬프트만 생각이 납니다. 당시 최준석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볼에 약했고, 몸쪽 직구에 강점이 있었습니다. 이를 최준석이나 김성근 감독이나 다 알고 있었지요. 최준석은 생각보다 인내심이 있고, 영리한 타자입니다. 그래서 최준석은 몸쪽 승부를 안할 것으로 예상하고 바깥쪽 공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몸쪽 바깥쪽 공을 배합하며 투스트라이크를 만든 후 김성근 감독은 수비 쉬프트를 좀 더 오른쪽으로 이동시킵니다. 조금 극단적으로요. 1루를 라인선상에 위치시키고, 2루수 정근우를 잔디 위 우익수 앞쪽으로, 그리고 유격수는 거의 2루 베이스 근처, 3루수는 유격수 쪽으로 이동시킵니다. 외야도 모두 오른쪽으로 이동. 영리한 최준석은 이를 눈치채고, 바깥쪽 승부를 생각했습니다. 저런 수비 쉬프트면 당연히 바깥쪽으로 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이겠지요. 하지만 그 순간 몸쪽 낮은 직구가 들어오고 최준석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벤치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빙의 상황에서 김성근 감독은 최준석이 모든 집중력과 타이밍을 바깥쪽 변화구에 맞추도록 했습니다. 그리곤 최준석이 집중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승부를 건 것입니다. 그 순간 김경문 감독도 어이없는 듯 웃었던 것이 생생히 기억에 나는 군요.

김성근 감독이 절묘한 것은 집중력을 흝으려야할 순간과 집중력을 높여야 할 순간을 구분하고, 되려 타자의 집중력을 높여 승리를 이끄는 방법을 썼다는 것입니다. 이를 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알고, 자신을 알아야하겠지요. 최준석이 자신의 선택을 이해할 만큼 영리한가, 상대방의 집중력이 좋은 상태인가, 투수의 제구력이 좋은가, 수비진이 전술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포수는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가? 등등 파악해야할 것이 참 많습니다. 위의 순간에서 김성근 감독은 최준석을 파악했고, 자신의 팀을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투수의 제구력을 믿고 가장 과감한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행여나 몸쪽 낮은 볼이 아닌 바깥쪽에서 조금이라도 가운데 몰리는 공이 온다면, 최준석은 자신의 타격스타일대로 왼쪽 수비가 빈곳으로 타구를 보내 주자 모두를 홈으로 들여보냈을 것입니다.

두산과 SK의 경기를 보다보면 이런 상황들이 한 경기에서도 수 차례 등장합니다. 페넌트레이스때도 그렇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만날 때면 두팀은 미칠듯한 신경전을 주고 받습니다. 집중력을 흝으려 놓기 위하여 언론을 이용하기도 하고, 자잘한 어필을 하여 템포를 죽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상대방 선수에 대한 분석이 당연히 포함되어있지요. 이러한 두 감독의 수 많은 수들을 읽다보면 정말 피곤해 집니다. 우리에게는 "그깟 야구"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이유"니 당연한 것이겠지요.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