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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화는 막무가내였다. 고향팀 빙그레(현 한화)가 아니면 차라리 그만두겠다고 버티었다. 답답해진 OB는 한대화의 임의탈퇴를 공시했다. 1983년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3점 홈런을 날린 주인공이었던 한대화의 야구인생이 그렇게 허망하게 끝날것인가.

1986년 2월, OB는 '게으름만 피우는' 한대화를 버리고 해태로부터 양승호를 데려오기로 했다. 그러나 해태와의 막후접촉이 성사되어 트레이드를 발표하자 한대화는 어깃장을 놓으며 부모가 계시는 대전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새로 출발하는 빙그레가 아니면 야구를 안 하겠다며 해태행을 거부했다.

트레이드가 인정된 프로야구계 풍토에서 보면 억지였지만 한대화의 반발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간염으로 고생하고 있던 한대화는 김성근 감독의 훈련법을 수용할 수 없었다. 훈련 제일주의의 김 감독은 한대화의 몸상태를 알지 못한 채 그가 뒤쪽으로 처지자 꾀를 피우는 것으로 여겼다. 좋은 자질을 지닌 한대화가 훈련까지 열심히 하면 얼마나 좋은 선수가 되겠느냐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었으나 한대화는 그럴 수가 없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 세월이 계속되자 한대화는 팀 내의 '미운 오리'가 되었다. 미운털이 박힌 그였기에 트레이드된 것이었지만 한대화는 느닷없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결국 한대화는 1개월 후 해태에 둥지를 틀었다. 동국대 시절 감독이었던 김인식씨가 잡아준 덕이었다. 동국대에 사표를 낸 김인식 씨는 새로 해태 코치직을 맡아 광주로 내려가던 중 한대화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신문을 보고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차머리를 대전으로 돌린 후 대전관광호텔에서 한대화를 불렀다. 스승이 함께 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해태에 몸을 담았다. 그리고 그것은 한대화의 운명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겉보기로는 도통 정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김응룡 감독은 보기보다 세심하고 자상했다. 한대화의 간염상태를 알고는 훈련을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었다. 훈련은 경기를 잘하기 위한 방법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 김응룡 씨의 생각이었다. 컨디션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연습을 하면서 그 해 시즌에 임한 한대화는 화려한 플레이를 유감없이 펼쳤다. 핫코너인 3루를 철통같이 지켰고 팀이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한 방씩 터뜨려 '해결사'로서의 명성을 드높였다.

때맞춰 최고 투수 선동렬이 6개월여간의 조율을 끝내고 무등산 폭격기의 위용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선동렬이 마운드에서, 한대화가 타석에서 자질구레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해태는 일시에 공포의 팀으로 떠올랐다. 선동렬,한대화 콤비의 종횡무진 활약 속에 해태는 그 해부터 1989년까지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함으로써 무적의 시대를 열었다. 한대화는 해마다 3루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해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OB의 애간장을 두고두고 태웠다.

백조가 된 미운 오리 한대화. 그는 1993년 12월 다시 한번 미운 오리가 되었다. 김응룡 감독과의 사이가 전만 못해졌다. 해태는 더 나이 들기 전에 한대화를 팔아버리고 싶어했다. 한대화는 내심 고향팀 한화로 가고자 했으나 다시 서울행. LG가 김상훈을 내놓으며 한대화를 원했다. 해결사를 원한 LG와 왼손타자를 원한 해태의 계산이 맞아떨어져 대형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대화보다 김상훈이 무게가 더 나간다며 LG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하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해태로 간 김상훈은 지지부진한 반면 LG의 4번 타자가 된 한대화는 팀이 위기에 빠지려고 할 때마다 한 방씩 쏘아올렸다. 그리고 후배선수들을 때로는 야단치고 때로는 토닥거리며 이끌어나갔다.

그가 떠난 해태는 가라앉고 새로 자리잡은 LG는 없던 힘까지 발휘하며 페넌트 레이스를 주도한 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오르고 내리는 기차 안에서만 고향 대전을 멀리 바라보았을 뿐 한 번도 내려보지 못한 한대화는 이제 고향으로 못 간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의 실력이 먼저인지, 그가 어쩔 수 없이 찾아든 팀의 운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는 곳마다 승리가 기다리고 있어서였다.

해태로 갔을 땐 선동렬이 함께 했고 LG로 왔을 땐 서용빈, 김재현, 유지현 트리오가 함께 했다. 5개 팀을 돌아다니면서도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한 선수에 비하면 그의 트레이드 길은 행운으로 가득 찬 길이었다. 4개 팀을 옮겨다니면서 7회 우승을 한 프로야구계 단 한명의 선수. 보통 선수들은 내리막길의 트레이드를 했지만 한대화만은 반전의 트레이드를 한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를 버렸던 김성근 감독은 쌍방울에서 한대화를 다시 불렀다. 좌투수에게 한 방 먹일 해결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끝내 고향팀에 적을 얹지 못한 한대화는 공교롭게도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처음과 끝을 김성근 씨와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