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우선 남주가 가진 왜곡된 인성과 여주가 가진 독립적 인격상이 서로 충돌되어 갈등이 생겨날 거란 건 뻔했습니다만.... 

유정의 치명적 비밀을 하나 알게 되면서 홍설이 완전 마음에 금이 가버리게 되는 이유가 재미있네요.

즉, 자신은 자기 노력대로 겸허히 살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노력하는 인생관인데 흔히 "오빠"에게 이래저래 "받는 습관"이 들어버린 자신이 혐오스러워진 셈입니다.

확실히 한국사회에서 또 저 연령대에서 보기 드문 케이스입니다.

댓글도, 카페도 재미난게 반응들이 한결같이 홍설이 좀 너무 한다, 자격지심이다 이런 반응입니다.

결국 작가가 드러내고 싶었던 문제의식은 연애 이전에 "주체적인 삶을 사는 독립된 인간"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남녀가 어딨나 싶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는 학비 딱 두번 집에서 내주고 이날까지 제 힘으로만 살아왔는데 이런 게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제 입장과 당장 제 한국친구들이나 또래를 보면 늘 상당한 괴리를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사회가 유독 갈등(conflict)이 깊고 그 갈등에 의해 벌어지는 아픔이 심한 사회인데.. 어떤 연구에 의하면 한국은 동일 면적의 다른 나라에 비해 관계의 복잡도가 무려 50배가 된다고 합니다.

관계가 얼기설기 복잡하면 결국 우리는 많은 줄에 매달린 마리오네트처럼 뻔히 예측되는 정교한 행동과 선택을 취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당연히 삶의 방식과 미래도 천편일률적으로 수렴화하는 현상을 보이게 되죠.

결국 이게 사회의 견고한 선형성을 만들게 되고 곧 경직성으로 이어지며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극단적으로 가중시켜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날이 서게 만드는 근본원인이 됩니다.

그럼 왜 갈등이 이렇게 많으냐...

갈등이란 건 본질적으로 "욕구의 좌절에서 오는 것"입니다. 

내가 목이 말라 죽겠는데 주변에 물이 없어 안절부절해진다면 이미 갈등입니다. 단 이 경우는 아직 혼자만의 갈등이죠.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 동생에게 "야, 물 좀 떠와" 하면서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기대"란 것의 정확한 정의는 "남에게 기대는 마음" 즉 남이 내 욕구를 해결해주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이미 연구된 사실인데 세상 사람 모두는 남의 기대에 대해 80%를 부응해 줍니다. 단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1) 역할 문제가 없어야 한다 (2) 구조적 문제가 없어야 한다 (3) 성격적 문제가 없어야 한다

즉 상대방의 별다른 제약이 없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내 기대에 부응해주려 합니다.

하지만 실제 저 세 가지 조건이 모두 만족하는 경우는 기대의 난이도가 높을수록 현저하게 낮아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적인 기대는 그 수준이 높을수록 좌절되기 쉽습니다. 즉 내가 기대한 상대방의 행동의 거절, 또는 실패로 좌절을 겪는 것이죠.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최초 "욕구의 좌절"에서 온다는 갈등은 정확히 말하자면 "욕구를 타인이 해소해 줄 것을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좌절되어 생기는 갈등"인 것입니다.

이 때부터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 되는 것이죠. 우리 삶을 진짜 힘들게 만드는 시점입니다.

그래서 "독립된 인간"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창조적으로 해소되지 못하는 갈등은 우리 삶을 좀먹고 사회적 비용을 막대하게 초래하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관리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개인이 스스로 독립된 인간이 된다면, 즉 내 욕구를 타인에게 기대하는 일이 적어지게 된다면 현저하게 갈등은 줄어듭니다.

치인트의 유정은 사실 타인의 약한 마음을 이용해 그들의 기대가 자신에게 진 부채가 되도록 들어주고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조종하는 권력자들이 흠히 취하는 태도죠) 홍설은 완전히 반대로 자신의 욕구를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 독립적 인간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유정은 자존심이 높은 반면에 홍설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된 것이기도 합니다.

연애 와중에 홍설이 계속 느끼는 "이래도 되나"하는 불안감은 독립적 인간이기를 지향하던 자신의 삶의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생기는 것에 어색함을 느낀 것이죠.

댓글과 카페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이인데 좀 기대고 받으면 어떠냐 라는 문제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홍설은 이미 유정과 충분히 감정을 주고받고 사랑을 키워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유정도 홍설과 직접적 연인관계가 되고나서부터는 그녀의 독립성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아니 처음 접근할 때부터 자기 스스로는 충분히 조심을 한 상태였습니다.

2부가 끝나가는데 3부에서는 왜곡된 유정의 인간성이 가져오는 여러 갈등이 드디어 표면으로 크게 드러날 것이고 홍설과 완전히 결별 수준의 갈등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발전과 변화를 믿는 작가라면 보다 성숙한 둘을 다시 이어줄테고 반대라면 둘을 어긋나게 하고 직딩이 되어 예전을 회상하는 홍설의 썩소로 마무리 짓겠죠.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정말 좋아하고 (무려 순정만화임에도!)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적극 권장하고 다녔는데 확실히 이 작가가 처녀작임에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정말 깊습니다. 그리고 단지 자신의 의견을 작중 전달하려는 계몽적 태도도 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우리사회 저간에 깔린 심각한 문제를 표면적 쟁점으로 끌어올리죠. 그것도 쉽사리 토론되기 어려운 독자층을 상대로 말이죠.

작가라는 입장에서 보자면 굉장히 도발적이고 그러면서도 지극히 온건하며 성실한 사람입니다.

어쨌든 작품의 향방도, 댓글의 여론도 모두 흥미진진하네요! 치인트 짱~ 순끼느님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