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얘기나 해볼까요?
- 작성일
- 12-04-15 00:09
박근혜 얘기나 해볼까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박근헤 비판을 할 것이냐면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좀 다른 차원에서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박근혜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공격은 유신공주와 수첩공주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근혜가 이명박 심판론을 받지 않는게 공주이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저는 이런 식의 컴플렉스 넘치는 발상이야 말로 박근혜를 돋보이게 만든다고 봅니다.
박근혜가 이명박 심판론의 책임을 전혀 지지 않고 이명박 실패에 타격을 받지 않는 건 그녀가 권력에서 배제되어서 그렇습니다. 박근혜 18대 총선 당시 측근들과 자파의 공천학살을 당하는 것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박근혜는 권력에서 배제되었고 이명박 정부의 주축에 친박인사는 단 한사람 포함되지도 않았습니다. 박근혜가 공주라서 이명박 실패의 책임을 안 지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는 이명박에게 배제되었기 때문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겁니다. 김대중에 의해 배제되었건 통추세력이 김대중 정부에 대해 책임질일이 없고 노무현이 배제했던 구민주계가 참여정부의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걸 단순히 그녀는 공주이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용서 받는 식으로 해석하면 대다수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박근혜는 그 개인만 놓고 보면 엄청난 불행과 연관되어진 사람입니다. 어머니는 간첩의 총에 맞아 죽었고 아버지는 여자를 품에 안다 궁정동에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남동생은 한 때 마약 중독자였고 여동생 역시 순탄치 않게 살았습니다.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한계를 심하게 뛰어넘는 수준의 복잡한 개인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은 그녀를 볼 때 기본적으로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물론 박정희는 그녀의 가족들의 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억하기 쉬운 것만 기억합니다. 노무현의 죽음을 기억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은 졸지에 "힘있고 배운 사람"으로 몰려 조롱거리가 되어 자살한 남상국은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후일 조기숙이 비공식적으로 유족에게 유감을 뜻을 전했다고 하나 그것조차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람들은 김대중은 기억하지만 그의 계획에 반대했다 단칼에 사라져야 했던 수많은 정치인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링컨의 노예 해방은 기억해도 그가 흑인을 백인과 동등하게 보지 않은 것은 기억하질 않지요. 박근혜를 유신공주라고 비난할 경우 그녀에 대한 동정심도 똑같이 환기되고 지금까지 유신공주로 대변되는 공격이 전부 실패한 것도 그래서 그렇습니다.
게다가 저는 수첩공주 박근혜가 그렇게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적어도 박근헤는 국민이 뭐를 원하는지 집권하려면 뭘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압니다. 수첩공주로 대변되는 공격은 박근혜가 많은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 세련된 어휘를 쓸 줄 모른다는 걸 의미하는데 바꿔 말하면 그건 누구나 간명하게 이해한다는 말이 됩니다. 또한 말을 잘한다는 것은 장점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정치적 유불리를 위해 움직이게 되면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자유무역협정이나 강정마을을 둘러 싼 말 바꾸기는 정치인들의 현란한 어법을 과시할 좋은 무대가 되어주었지만 대개 그렇나 화려한 어법은 소수의 지지자들의 함성과 다수의 중간층의 혐오로 끝이 납니다.
박근혜는 실제로도 딱히 말을 잘할 것 같진 않지만 말을 잘 해봤자 그것이 생물과도 같은 정치에선 오히려 칼날의 부메랑이 될지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줄푸세의 박근혜에서 복지의 박근혜로 변했음에도 박근혜에게 말바꾸기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걸 보세요. 박근혜는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침묵하는 겁니다.
그녀가 공주라서 지지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공주를 그리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고졸 대통령이 연속으로 탄생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공주라서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TK에 한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TK의 엘리트들조차 절반은 이명박에게 줄을 섰습니다. 그녀가 단지 공주라서 사랑을 받는다면 지금과 같은 지지율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싫더라도 박근혜는 어떻게 정치를 해야 표가 나올지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걸 행동으로 옮길 줄 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제가 박근혜 비판을 볼 때마다 난감한 것이 사람들이 박정희 시대에 고문, 정치 공작, 부패가 없었다고 생각하는게 아니거든요. 물론 인혁당으로 죽은 사람이 몇 명인지 그게 몇년에 일어났는지는 사람들이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가 그러한 일들이 있던 시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장 70년대를 다룬 대중문화작품만 봐도 그렇잖아요. 그리고 또한 70년대는 낭만이 존재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도 잊으면 합니다. 그 시절부터 중산층이 정착되기 시작했고 대학생 문화가 시작되었고 경제규모의 팽창이 하류 계층에도 나름대로 혜택으로 흘러가던 시기였습니다. 고도성장의 달쿰한 꿈이 그 시대에 없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이런 걸 깡그리 외면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없습니다. 박근혜를 유신과 엮어 유신의 당사자로 만들려거든 동시에 박근혜가 고도성장의 상징이 되는 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하나는 되고 하나는 안된다고 하면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를 좋아하는데 이미 알고 있는 얘기로 열을 낸다고 무언가 바뀌는게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야권은 박정희를 천하의 나쁜 놈으로 만들면 박근혜는 무너지고 자신들이 영구히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를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야권은 박근혜의 존립기반인 영남을 얻으려면 박정희를 박살내려고 하는데 그건 실수입니다. 대구경북은 말할 것도 없고 부산경남도 박정희를 저주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박정희가 주도한 권위주의적 산업화 시기에 부산경남은 어느 지역보다도 큰 혜택을 봤습니다. 그들은 기왕이면 자신들을 대변하는 정치 엘리트 김영삼이 성공하길 바랬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정희를 온 몸으로 증오하지도 않았습니다. 박정희를 나쁜 놈으로 만들고 박근혜를 그저 TK사람으로 몰면 PK에서 득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래서 소설에 가까운 겁니다.
제가 보기에 박근혜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역설적이지만 이명박을 벤치마킹하는 겁니다. 왜냐? 지금까지 박근혜를 이긴 사람은 이명박이 유일합니다. 왜 이명박을 벤치마킹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명박은 박근혜와 싸울 때 박정희를 호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박근혜와 더불어 박정희를 긍정했습니다. 대신 그는 박근혜 본인의 자질에 치중했습니다. 그녀가 대구 사람이고 박정희 딸이라서 수첩공주 수준으로 말을 해도 추종자들이 있다는 식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은 그저 박근혜가 아는게 별로 없고 해본게 별로 없다는 것을 공격의 포인트로 삼았습니다.
지금처럼 박근혜는 유신공주, 수첩공주라는 식으로 접근하고 그녀와의 대결에서 유리해지기 위해 자꾸 인혁당, 유신헌법을 끌고 오면 하면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박근혜가 안철수를 이기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중도 보수층의 지지?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안철수는 스스로 무언가를 해 낸 사람으로 인식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뽑아주고 밀어주었던 고만고만한 민주화 경력, 2000년대 초반 이후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진정성'이란 단어의 남용, "박근혜는 귀족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단순한 불만을 가지고는 박근혜를 이길 수 없습니다. 정수장학회와 인혁당은 박근혜에게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안철수의 v3는 넘어서기 어려운 걸림돌이 됩니다. 제가 안철수에게 큰 기대를 거는 것고 그것 때문입니다.
이번 대선이 박근혜와 유신공주 수첩공주를 목놓아 외치는 '진정성' 넘치는 분들의 대결이 된다면 그 싸움은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대선은 피튀기는 싸움입니다. 누군가가 도와준다고 그게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1997년에 김대중이 김종필에게 단일화를 해줬으면 김종필이 당선이 될까요? 아닙니다.
저는 야권이 차기 정권을 잡아 살아남는 길은 안철수를 어떻게든 모양빠지게 구걸을 해서라도 잡아내는 거 그거 뿐이라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