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엿한 숙녀로 성장한 빨간모자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엄마가 말했습니다.
“빨간모자야...숲 건너편에 사시는 삼진할매에게 이 바구니를 전해드리렴”
빨간모자는 엄마가 건네주는 바구니를 들고 길을 떠났습니다.
나뭇잎 틈새로 스며드는 햇살을 맞으며 꽃잎을 간질여 수줍게 춤을 추는 바람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다가 향긋한 꽃내음에 미소 지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바람을 질투하듯 커다란 발자국 소리와 함께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빨간모자야, 이렇게 예쁜 꽃목걸이를 본 적이 있니?”
빨간모자는 처음 본 꽃목걸이에 유혹되어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예쁜 목걸이인걸........나한테 줄 수 있니?”
늑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너에게 어울리는 목걸이야...........하지만 조건이 있어
내가 너를 보러 올 때마다 나를 봐 줘야 해”
빨간모자는 목걸이가 탐이 나서 늑대에게 약속을 하였습니다.
목걸이를 걸고 신이 난 빨간모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한참을 가는데 다시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빨간모자야, 이렇게 예쁜 꽃팔찌를 본 적이 있니?”
빨간모자는 팔찌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예쁜 팔찌인걸........나한테 줄 수 있니?”
늑대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너에게 어울리는 팔찌야...........하지만 조건이 있어
나를 볼 때마다 나를 안아 주면 돼”
빨간모자는 신이 나서 늑대를 한번 안아주고 팔찌를 받아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팔찌를 보며 노래까지 흥얼거렸습니다.
빨간모자는 이번엔 늑대가 무엇을 줄지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무 하나를 지날 때 마다 늑대가 나타날까 주위를 살폈습니다.
하지만 늑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빨간모자는 실망하며 삼진할매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때 였습니다.
기다리던 늑대가 빨간모자의 앞에 나타나서 미소 지었습니다.
빨간모자는 반가워서 늑대를 안으면서 말했습니다.
“늑대야, 오늘은 무엇을 줄거니?”
늑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너에게 꽃 모자를 줄게”
늑대는 너무나 아름다워 찬란하기까지 한 꽃 모자를 내밀었습니다.
빨간모자는 너무나 맘에 드는 꽃 모자를 받아들고 말했습니다.
“늑대야, 이번엔 조건이 뭐니?”
늑대는 또다시 망설이다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쓰고 있는 빨간모자를 버리고 꽃 모자를 썼으면 해”
빨간모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꽃 모자가 훨씬 예쁘기는 해.......
하지만 네 말대로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빨간모자가 아닌걸”
늑대는 정색을 하려다........이내 점잖은 미소로 말했습니다.
“넌 너무 아름다워서 빨간모자는 어울리지 않아.........
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꽃모자가 어울려”
빨간모자는 늑대의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 빨간모자를 벗어버리고
꽃 모자를 썼습니다.
늑대를 뒤로 한 채 삼진할매의 집으로 향하던 빨간모자는 갑갑함을 느꼈습니다.
꽃 모자가 머리를 아프게 하고 목걸이가 가슴을 답답하게 했습니다.
손목의 팔찌 또한 수갑처럼 손발을 오그라들게 했습니다.(불펜의 표현 그대로...ㅎㅎㅎ)
빨간모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맞지 않는 자신을 원망해 보기도 하고 욕심이 과했다는 자책감으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어느덧 삼진 할매의 집에 도착한 빨간모자는 울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서 오너라. 빨간모자야”
삼진할매는 반갑게 빨간 모자를 맞아 주었습니다.
빨간 모자는 엄마가 주신 바구니를 삼진 할매에게 내밀었습니다.
삼진할매는 바구니를 받으며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꽃 장신구들이 너를 아프게 하는가 보구나”
빨간모자는 울상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장신구들을 뺄 수가 없어요.........ㅠㅜ”
삼진 할매는 세월이 묻어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아가야, 내 말을 잘 들으렴..........
네가 가지고 온 저 바구니는 네 어머니의 인생이란다.
너에게 꽃 장식이 맞았다면........난 너에게 새로운 바구니를 주었을 거야.
하지만 넌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구나“
삼진할매는 잠시 옛일을 회상하는 듯 하다가 다시 말했습니다.
“네 어머니에겐 바구니를 주면서 고통을 이기라고 했었단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어........넌 바구니를 받지 않아도 되고 네가 원한다면 네 몸의 꽃장식들도 없애 줄 수 있단다.”
빨간모자는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할머니........제발 꽃 장식들을 없애 주세요”
삼진할매가 눈을 깜박이자, 모든 꽃장식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삼진할매는 기뻐하는 빨간 모자를 토닥이며 말했습니다.
“너에게 맞는 아름다운 것들을 찾았을 때 언제든 다시 와서 바구니를 받아가렴”
빨간모자는 삼진할매와의 작별인사를 뒤로 한 채... 다시 숲을 향해 나섰습니다.
꽃 장신구를 없앤 빨간 모자를 실망한 표정으로 보며 늑대가 말했습니다.
“빨간모자야, 내가 준 보물들을 다 버렸구나.
나보다 더 예쁜 꽃들을 너에게 만들어줄 늑대는 없을 거야
더구나 너의 빨간 모자도 더 이상 세상엔 없거든”
빨간모자는 아름다운 긴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습니다.
“괜찮아.........난 이제 모자가 필요치 않아
필요하다면 언제든 내 스스로 찾을 거야
나는 더 이상 빨간 모자가 아니거든”
너무나 어여쁜 생머리 아가씨는 바람에 휘날리는 긴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숲 저편의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