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후끈한 열기와 깨질듯한 두통, 그리고 갈증때문에 잠이 깨었다.

어둠속에서도 낮선곳이라는 것은 즉시 인지하였다.   둘러보니 연주씨 집 싱크대 옆 마루다.   베게와 덮을 이불이 창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먼저 갈증을 풀었다.  뱃속으로 차가운 물이 흘러들어가니 조금 정신이 든다.

어제 내가 연주씨집에 왔구나.   친구녀석들을 배웅해주곤 술을 좀 깰려고 걸었던 기억은 나는데, 그 발걸음이 그녀의 집으로 향했을 줄이야.

건축회사 친구녀석의 지적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부분이 분명 있기는 하지만 난 지금 연주씨랑 사귀고 있고 그녀가 맘에 든다.  그러면 됐지 않은가.  별 고민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옛 여인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그것대로이고 미련이 남아있는 것도 어쩔수 없다.    그냥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사람과의 시간이 그 상처를 아물게 해 줄 것이다.

손목시게를 보니 5시를 넘어가고 있다.   조금 있으면 해가 떠 오르리라.   출근을 위해서라도 일단 집에 가야만 했다.   

맨바닥에서 잠을 자 어제입고 출근한 와이셔츠와 바지가 많이 구겨져 있을 것이다.

방문을 살짝 돌려보니 안에서 잠궈 돌아가질 않는다.  

자고있어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볍게 노크를 하곤 “미안해요. 저 갈께요..” 라고 말을 남기고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원룸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연주씨가 현관문을 잠그는 소리가 찰칵하고 들린다.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 많다.  오토바이로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 가로 청소를 하는 미화원 아저씨.  새벽부터 어딘가를 바삐 오가는 차량들...

새벽의 분주함이 숙취가 남은 내 정신을 일깨워 준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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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을 하니 잠시 후 연주씨에게 전화가 온다.  목소리를 낮춰 통화를 한다.

“어제 어떻게 된 일이예요..?”

“미안해요.  술이 좀 과했는데, 술을 좀 깨고 집에 들어갈려고 걸었는데, 제가 연주씨 집에 갔나보네요.   집에 들여놓지 말지 그러셨어요.”

“나 참.  들어오라고 안했네요.  자기가 막 밀치듯 들어와서 그냥 꼬끄라 져놓곤...”

“하하.....  그랬나요.   그런데,  지금 저보고 자기라고 했나요?”

“아이참.  그 자기가 그 자기가 아니잖아욧........”

점심때 해장국 사주겠다고 회사에서 좀 떨어진 음식점으로 오라한다.  이여자 배려가 고맙다.

점심 시간이 되자말자 후다닥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해장국집으로 갔다.   그녀와 마주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다.






연주는 콧 등에 땀을 베이며 국물을 마시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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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씨와의 연인관계는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녀는 수원에 언니와 형부 이외에는 다른 친척이 없었고 언니가 영어학원선생으로 주로 저녁때 수업이 있었던 관계로 대부분의 저녁은 나와 먹었다. 

그러다가 한주에 한 두 번 정도는 그녀의 원룸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으며 그런 날에는 디져트가 별로 필요 없었다.  식사 후에는 같이 이를 닦고는 그녀 입속의 달콤한 디져트를 언제나 나누었기 때문에.... 

그녀의 달콤한 디저트를 받는 날이 늘어갈 수록 내 왼손의 위치 또한 그녀가 그동안 처놓은 마지노선을 하나씩 돌파하였으며 무더위가 지나가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어느날 밤에는 새로사온 쇼팽의 야상곡 CD음에 서로 취해서인지 그동안 절대 허용하지 않던 그녀의 츄리닝 속으로의 시도도 가느다란 신음과 함께 용인해 주었다.

그러나 딱 그정도 까지 였다.  츄리닝 속 한꺼플 남긴 마지막 장벽안으로의 시도는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새로지은 원룸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양쪽집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뭔가 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9월에 들어서 선선함이 느껴질 무렵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을 제안했다.

장소는 “남이섬” 

수원과는 100km 거리로 차로 2시간 코스여서 그리 멀지 않고도 도심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 이였다.

그녀가 옷이 그리 많지 않아 주중에 백화점에 들려 아직 낮에는 쨍쨍한 햇볕을 가릴 챙이 넓은 아이보리색 밀짚모자와 가을 여행에 잘 어울릴 플레어 치마를 사주었다.   그녀의 여성스러움과 아주 잘 어울렸다

9월 중순 어느 토요일.  업무를 끝내고는 아버지 차를 빌려 연주씨를 태우고 남이섬으로 출발하였다.

남이섬은 잘 알다시피 일몰이 되면 돌아가는 배편이 끊어져 섬안에 있던 사람들은 할 수 없이 방갈로 등에서 잘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에 그렇게라도 역사(?)를 만들어 볼려고 한 것이다.

4시경 섬 안으로 들어갔고, 매표원에게 살짝 마지막 배편을 물어보니 저녁 8시면 배 운행을 안한단다.

녹음이 만연하게 우거진 섬안에서 산책도하고, 사진도 찍고, 자전거도 타고, 저녁식사도 좀 일찍 하고, 7시 넘어서 산책길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연수원 시절의 티격태격한 만남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8시가 넘기를 기다리며...

그러다가 8시 10분이 되었을 즈음, "자 그럼 늦기전에 슬슬 출발할까요...." 하며 서서히 어두어둑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착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마지막 배는 떠났다고 하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짖고는 ‘앗싸. 이젠 꼼작없이 여기서 자고간다.’ 하며 연주씨에게는 “배시간이 생각보다 이르네요.  어떻하죠?” 하는데...

선착장 근처에 있던 어느 할아버지께서 "배 놓쳤구먼...  나눗배라도 타고 갈껴? 5천원만 내"  하신다. 

하.. 할아버지..... TT

돌아오는 차안에서 허무하게 무너진 오늘의 계획을 아쉬워하고 있는데..  수원에 거의 다 도착할 즈음에 연주씨가 차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혼자말 처럼 중얼거린다.

"카페에서 좀 더 있다 나올걸 그랬어요....." 

나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엑설레이트를 밟는 발에 힘을 더했다.

원룸에 도착하자 우리는 급하게 문을 열고는 진한 키스부터 나누기 시작하였다.  마루에서 내 브이넥 셔츠가 벗겨졌고 방안에서 그녀의 플레어 치마가 흘러내렸다.

그녀의 싱글 침대는 두사람이 눕기에 전혀 좁지 않았다.  다만 아침에 침대다리 밭침을 손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험이 없을 그녀를 위하여 조심스럽게 움직였음에도 작은 소리이기는 하지만 삐그덕 소리가 그치질 않았기 때문이다.

내 몸짓과 터치에 바르르 바르르 떨다가 약간의 눈물자국을 하고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 새근거리는 그녀를 팔베게 해주고 나도 스르르 깊은 잠에 빠졌다.   아주 깊은 잠에......

“똑똑똑.”    “연주야......”

잠은 좀 전에 깬 상태이지만 그냥 이렇게 그녀와 한자리에 누워있는 분위기가 좋아 그녀와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원룸 바깥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안방문을 통하여 들려온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이불로 몸을 대충 휘감고 안방문을 조금 열며 말 끝이 흐린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누...누구셔요...”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팔베게 하고 누워있던 편안한 마음이 싹 사라지며 바닥에 널부러진 옷 사이에서 내눈은 재빨리 팬티를 찾기 시작한다.

(계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