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거미줄을 두고 想
- 작성일
- 08-11-10 23:55
흔들리는, 출렁이는 그늘의 틈을, 아주 얇고 부드러운 틈을 보았다. 아니, 그것은 그늘에 새겨진 주름, 섬세하지만 날카롭지는 않은, 빛의 주름이었다.
도서관 뒤뜰 벤치에 앉았다가 거미줄을 보았다. 도서관과 중학교를 가름하는 벽이 있고, 그 벽 앞에 참나무가 있는데 그 벽과 그 나무를 잇는 거미줄 한자락을 본 것이다. 벽과 나무에 걸친 거미줄은 대충 봐도 한 일미터 정도는 될 길이였는데, 그러니까, 길이라 하지 않고 거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긴 거미줄 한자락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니, 아슬아슬하게 걸린 거미줄이라 하지 않고 아슬하슬하게 (거미줄에) 걸린 빛 한줄기라 해도 좋을만 하였다.
마치, 조용한 공간 빛이 들어오는 공간에 먼지들이 그 빛을 더 선연히 드러내듯, 거미줄은 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 거미줄에 빛이 걸려 있었다.
얇은 바람이 거미줄을 출렁이게 하고 있었는데, 바람이 너무 굵어지면 거미줄을 밀다가 끊어내어 날려버릴 것 같고 바람이 아예 없으면 나는 그 빛의 주름을, 거미줄이 아니라 내 안경에 그어진 흠이나 먼지 정도로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벽과 나무 사이에 걸린 거미줄은 바람을 끝내 감당하지 못하고 끊겨 휘날리다가 날아가버리다가 뭉쳐질 수도 있다. 뭉쳐진 거미줄은 거미줄이라 부를 수 없게 되지 않을까?
거미의 몸집이나, 거미가 노릴만한 먹이의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큰 규모가 아닐까 싶은 저 거미줄이, 길게 걸린 저 거미줄이 묶을 수 있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장마철 빗방울도 아니고 지금의 햇살 뿐이라는, 딱 거미줄 굵기의 빛무리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딱 지금, 딱 이곳, 딱 그만큼의 빛줄기. 그러나 나는, 저 빛줄기를 끊어버리지 않은 채로 저 빛줄기에 걸리고 싶다.
담장의 그늘을 배경으로, 바람 따라 출렁이는 저 빛 한줄기는 담장의 그늘이라는 배경이 없이는 보이지 않고, 그 화폭이 없이는 그 빛의 선이 그어지지 않거니와 너무 가까이 다가가도 보이지 않는다. 거미줄이 걸린 위상을 이 눈으로는 명쾌하게 파악하기 힘든 탓에, 앗 소리도 내어보지 못하고 그 거미의 그 대공사를 한숨에 망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저 빛은, 참나무 한그루 높이 길이만큼의 거리를 두고 보니 가장 잘 보인다.
참나무에 귀를 대었다가, 노크하듯 나무를 두드린다. 늦은 나비 한마리가 내 이마를 밟은 후 거미줄과 스치지는 않고 날아가버릴 것 같다. 어떤 형상은 거리를 두고 보아야 보이고, 어떤 소리는 거리를 두고 들어야 가장 잘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