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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17

작성일
12-07-27 21:50
글쓴이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IP
2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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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별 역순 댓글
 - 양보역



하아... 지금 돌아봐도 아득하고 아찔해지는 양보역 가는 길 입니다... 걸어갔네요...

북천에 도착한 시각은 대략 19시경이었어요. 날은 저물어가고 있고, 산세는 험해지는데 양보로 가는 버스는 없으니... 처음엔 저도 합리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날의 열차운행은 거의 종료가 되었고, 북천역에 21시 53분에 도착하는 포항발 순천행(이것도 은근히 근성노선입니다~ 밤차만 아니라면 타볼텐데... 밤의 열차는 서울지하철보다도 더 재미ㅤㅇㅡㅄ...) 1943열차를 타고 하동으로 바로 갈 생각으로 3시간을 때울 생각이었죠. 전회에 올렸듯이 그래도 조금 큰 마을이기도 하고... 마침 면사무소에 퇴근하는 공무원들에게 피씨방 있냐고 물어봤더니...

그런게 어딨냐는 겁니다... 그럼 만화방은? -  지금 님하 농담하심?, 묵을만한 곳은? - 이기는 여행지가 아니라요.

3시간을 하릴없이 멍하니 앉아있다가 열차를 타야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안그래도 원래 오늘중으로 하동까지의 모든 역을 답사하리라, 마음먹었던게 살짝 어그러져서 빈정상하던 차 였는데... 이제 양보역과 횡천역만 지나면 하동이거든요. 지난 4월의 여행에서도 하동에서 출발하여 재첩국 먹고 섬진강변을 걸었으니 하동은 이래저래 인연이 있는 동네~

그런데 두정거장 남겨놓고 점프를 해야한다니 안그래도 속상하는데 3시간을, 북천역이 아무리 좋고 철도라면 미치고 환장하는 놈이라 한 들, 곧 해가지는 기차역에서 3시간을 암것도 안하고 죽때리라? 말도 안되져.

이리된거 청와대로 간다! 는 아니고... 이리된거 양보까지는 걸어가리라! 하고 마음을 먹긴 했는데... 애초에 부산에서 이 답사를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수행할 것인가, 를 놓고 나베르 지도를 들여다보며 머리를 굴리다보니... 다른 동네는 대충 견적들이 나오는데, 가장 애매하고, 시간편성도 힘들고 교통편 잡기도 힘들어보이는 구간이 다솔사 - 북천 - 양보 - 횡천 - 하동 까지의 구간이긴 했어요. 직접 부딪혀보기 전에도 시골동네에서 버스타기가 쉬운일은 아니라는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도 하고... 하동에 거의 다 온 시간이라면 시간도 늦을 것인지라 더더욱 힘들고 위험할거라 생각은 했기에...

역시 전회에 말씀드렸듯이 근방 6개역중 유일하게 역무원이 있는 양보역의 역장양반에게 대충 이러이러한 취지다, 라고 길을 물었죠. 역장양반 과의 대화를 대충 재구성해보자믄...

"니 미ㅤㅊㅣㅆ나? 이제 해 떨어지고 날도 어두워질라 카는데 여가 어데라고 걸어가싸삣노? 마? 5.4키로메타?(북천역에서 양보역까지는 "철길로" 5.4킬로미텁니다) 거야 ㅤㄲㅗㄷ바로 가는 철길이니 그렇제, 도로로가마 꼬불~~~꼬불 한데 그가 그래 되나? 8키로는 될끼다."

마... 역장어르신이 좀 인상도 무섭고 연세도 있고 하셨지만 저래 반말로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살짝 힐난하는 투로 말하시기도 했고, 경상도 싸나이의 투박한 말투가 제게는 대충 저렇게 들렸... 뭐, 위에 지도에도 올렸지만, 역장양반의 우려는 합리적이면서도 과소한 것이기도 했죠. 실제로는 9킬로미터 이상을, 해떨어진 밤중에, 것도 꽤 급한 산길을 걸었...

참고로



위 지도와 같은 지도입니다만... 파란색 실선으로 철길을 따로 표시해 봤습니다. 북천에서 양보로 가는 길은 꽤 험한 산이 가로막고 있기에...철도는 아싸리 구 경전선 답잖은 거한 터널을 뚫어 지나갑니다만, 도로는 산기슭을 따라 한참 올라 황토재? 라는 언덕을 넘어 양보... 로 향하지도 않는게, 양보는 애초에 돌아서 바로 횡천으로 가고, 양보로는 제대로 된 도로도 이어져 있지 않습니다... 물론 밤중에 가서 못찾은 걸 수도 있지만, 한 밤중 산속이 어떤지는 다녀보신 분들이라면... 음...

사설이 긴 이유는 이제는 완전히 밤중이라 사진을 찍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찍어봐야 뭐 보이는 것도 없고... 무엇보다 이 3시간의 경험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 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부족하나마 최대한, 화질 좀 안좋은거 포함해서 사진 올려봅니다.



북천 5일장 안내반입니다. 4, 9일에 여는데 이 날은 6일이라...



허 합니다. 군북에서도 이랬었죠...



역뿐 아니라 마을 자체가 컨셉이 코스모스인 모양입니다. 다만 코스모스에 대한 저의 기억은... 일단 가을 한철만 피는데에다, 듬성듬성하게 피는지라, 가을이 아니면 코스모스 밭은 볼게 참 없게 되어버린다는게... 가을 한철 화사함을 위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게 코스모스의 아쉬운 점이었던 거 같아요. 벚나무는 그래도 여름동안에도 짙은 녹음을 전해줍니다만...



담양이 대나무로 유명한데, 담양뿐 아니라도 지리산 일대의 남도지역은 서도든 동도든 대나무가 다 많은거 같습니다. 대나무숲을 병풍삼아 달리는 철길인데 철로가 좀 잘 나오게 찍을걸 그랬죠... 구도도 아무나 잡는게 아니지 시프요.



저 산을 주변분들은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산의 능선이 무게감이 있는게 퍽이나 인상깊은 산이었더랬습니다. 이 주변이야 워낙 산이 많은 곳이지만, 저 봉우리는 다른 봉우리들과 이어져 있기보다는 비교적 낮은 구릉들 틈에 우뚝 솟아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저 산을 빙 둘러서 한참을 걸어갔는데, 시시각각으로... 떨어져 가는 해와 변해가는 산의 음영, 달리 보이는 산능선의 모습들로, 26일 해지기 전의 도보행은 심심치 않았더랬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본 모습. 좀 더 많이 찍어둘걸 그랬지 싶은데, 날이 어둡다보니 사진이 조금만 흔들려도 잘 안나와서 제대로 된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아예 밤중에는 그런 사진이라도 건사하긴 했지만...



충효의 고장에서 비석이야 그저 가로수같은 느낌일 뿐이지만, 문익점비는 좀 다르죠. 지금 빤스한장 걸치고 앉아 있는데, 이 면빤스도 문익점 선생의 역사적 유산중 하나이기도 하니, 조금쯤은 경건한 마음으로 지나칩니다.



위의 지도에서 보시듯이, 이 구간에서 걸은 거리는 다른 구간의 거의 두배에 가까워요. 풍광또한 수려했던지라, 사진도 많았어야 하지만... 이 사진에서 보시듯이, 조금만 흔들려도 입광량이 부족한 상황에선, 캐리어가도 답이 없습니다. ISO값 조정법을 부산에서 배우긴 했는데, ISO조정으로도 넘기 힘든 한계가 있더군요. 물론 이 뒤로도 간혹 괜찮은 사진이 있는데, 그건 정말 기적같이 손이 흔들리지 않은 경우고... 담배도 안피는데 뭔 손이 그래 떨리는지... 때문에 사진이... 사실 다른 회에 비해 장 수는 그렇게까지 적진 않지만, 제가 전하고 싶었던 모습에 비해서는 엄청 적습니다. 뭐, 보여주지 못하면 없는거긴 하지만서두...



이 때는 유려한 능선이구나, 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와 생각해보니 제가 넘은 산이 저 멀리 있는 두 산의 골짜기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멀리 마을들이 보입니다. 카메라가 최대한 빛을 먹어줘서 이 정도의 밝기지만, 육안으로는 훨씬 어두운 상황이었어요.

철로는 이미 산을 뚫고 지나는 시점이 된지 한참이라, 이 여행의 벗인 철길조차 없이, 지나는 행인도, 지나치는 차도 거의 없는 산길에서 해까지 산을 넘어가 실로 적막함속에 묵묵히 걷고 있습니다.



산 사이의 꽤 넒은 계곡이지만... 조금만 걸어가도 논의 바닥이 계속 올라가는 계단식 논들이에요. 이미 북천에서 거리도 거리지만 높이로도 꽤 올라온 시점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보이는 모습들이 흐려져 갑니다. 마음도 조금쯤은 초조해지는 상황... 산을 넘어야 하는 길이라면 일단 마루에 오르면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다, 라는 안도감이라도 드는데, 아직 마루가 어딘지도 보이지 않는 상황인데 주변은 점점 흐려가고, 열차시간또한 점점 다가오니...



넘어가는 해는 잿빛하늘을 잠시 흩뿌려 놓았다가,



이내 거둬갑니다. 어둠이 이제는 완전히 내렸습니다.



한참을 빛없이 걷다가 조금쯤은 큰 마을인지, 이날의 산행아닌 산행에서 유일한 가로등? 을 보았네요.



반가운 마음에 가로등 불빛을 배경삼아 한장 찍어봤습니다.



거짓말 아니고, 입광량 최대 설정하고 찍은, 산길에서의 사진중 하나입니다. 한참동안을 이런 상태에서 걸어갔네요... 물론, 사람눈이 상황에 대한 적응력은 더 좋기에, 나무와 길가의 실루엣 같은것은 보였습니다만...

차가 아주 간간이 지나갔는데, 차가 지날때 사진을 한 두장 찍어놓을걸 그랬습니다. 뭐, 그 당시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만...

이 사진의 제목을

니 앞길.JPG

라고 붙이면 너무 암울할까요...^^



북천역을 떠날때, 주민중 한 사람이 주유소가 어쩌고 저쩌고 하던데... 주유소가 어디 있다는 거여? 하고 투덜투덜하며 걸었는데... 거의 두시간을 걸어서야 나오는 거라고 말좀 해 줬으면 그렇게까지 초조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다만, 시골분들의 거리감이랄까, 시간감은 도시사람들 같지 않아서... 아마 30분쯤 가면 나올거여~ 라고 해 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그렇게 말했다면 더 당황했겠죠. 가도가도 주유소가 안나오니 내가 잘못온건가, 하면서... 그래도 주유소가 보이니 잘못오진 않았구나, 하고 조금쯤은 마음이 놓입니다. 마침 이 주유소가 산을 넘어가는 길의 딱 고갯마루에 있기도 하니 이제부턴 내리막입니다...

는 훼이크다 이 병신들아!

이 곳이 최대의 고비였어요. 산 정상의 주유소를 지나고나니 갈래길이 있는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행선지가 안쓰여있는겁니다! 이미 두시간 가까이를 왔기에 더더욱 분명히 느껴지는건, 여기서 만약 길을 잘못 들 경우 "시간단위로 길을 헤메게 될 것이다" 라는 것... 아예 엉뚱한 곳으로 빠져 밤새 차도 행인도 인가도 없는 산 속을 헤멜수도 있다는 것이죠. 물도 떨어진 상황이었는데... 정말 막막하고, 당황스럽더라구요. 이거 이러다 조난당하는거 아닌가... 절로 집생각 나고 엄마아빠 생각나고... 집에다 전화해야하나 싶다가 집에 전화하면 오히려 걱정만 할테니 관두자, 하는 등 잠시... 말 그대로 공황상태에 빠져서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이 근처의 지리를 아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네요. 이 생각이 왜 안들었는지... 다름아닌 하동역의 직원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거였죠. 그런 단순한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크게 당황했었네요. 현실은 김전일이 아니기에, 통화권 이탈 같은 일은 잘 벌어지지 않죠잉~~

 근데, 웃긴게 하동역 전화번호를 물어보기 위해 114에 전화를 하는데 연결이 안되는 겁니다. 자꾸 눌러도 안되기에... 진심레알 멘붕상황에까지 이르렀는데... 휴대전화로 114를 하려면 "지역번호" 를 눌러줘야 한다는 것 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겁니다. 전회에 반달가슴곰 이야기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반달가슴곰 만났으면 저 물어갔을 듯.

 02- 114를 또박또박 눌러, 저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유일한 사람인 114 직원에게 하동역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연결을 했는데... 하동역 직원한테, 지금 북천에서 양보역으로 가는 길인데 산 정상에서 표지판이 없는 삼거리를 만났다, 여기서 어느길로 가야하냐? 라고 물어보니 그 양반 하는 말이

"거기 삼거리가 있다구요?"

우와 진짜 울고 싶었네요... 한고비 넘으니 또 한고비 그 고비 넘으니 두고비 세고비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느낌... 정말 허탈했는데... 자꾸 이야기하다보니 옆에 있는 다른 직원들도(하동역은 큰 역이라 경전선의 다른 역들처럼 1인근무가 아니거든요) 옆으로 와서 웅성웅성하는 거 같더군요. 그러더니 직진이 아니고, 옆의 샛길로 빠져야 한다, 라고 말해주는데... 이거 마음이 불안하다보니 맞게 알려준건가... 만약 알려준 사람이 헷갈린거면 나는 조ㅈ되는 건데...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그 상황에서 내 자의적 판단보다는 안내를 따르는게 당연히 낫기에 가라는대로 갔는데...




또 삼거리가 나오더군요. 털썩 주저앉을 뻔 했음... 윗 문단과 이 문단사이의 엔터는 저의 낭패감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인데, 생각같아서는 한 세페이지쯤 엔터키를 누르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더랬습니다...

 그 때 기적같은 일이 하나 벌어졌는데... 그나마 그 삼거리는 근처에 마을이 좀 있었어요. 그러나, 이 오밤중에 누가 나와 돌아다니랴 했는데, 누군가가 물 틀어놓고 다라를 씻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우왕 굿굿굿굿굿굿굿~~~~~~~하면서 더펄더펄 달려가 말씀좀 여쭙겠는데요~ 했더니

"에그머니!!!!!!!!!!!!!!"

하며... 그 아지매 정말 귀신이 튀어나오기라도 한 듯 놀라더군요. 정말 제가 여태까지 접해본 가장 "원초적인" 감정의 분출이었던 듯... 하긴, 그 밤중에 사람이 지나가리라고 누가 생각하겠습니까. 그 밤중에 그 길을 걸어서 지나가는 게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거나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는게 정상이죠... 아지매의 반응이야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달까나...

물론 놀래킨 것이 되었기에 정말 미안해서 백배 사과하고, 길을 물었더니 아랫길로 내려가라는 겁니다. 아지매를 안만났다면... 아지매 정말 고맙고 놀래켜서 죄송해여... 저 때문에 놀라서 수명이 3분은 줄으셨을 듯...

그렇게 길을 따라 내려간 끝에...



이게 몇 문단만에 올라오는건지 모를 사진.jpg 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시련은 있어도 시련은 있다? 라는 말도 있듯이 여기도 양보역이 있는 마을이 아니더군요. 마을 끝까지 가 봤는데도 역같은 것도 없는... 이제는 후쿠시마급 멘붕이 줄줄이 몰려오다보니 빠질 힘도 없는 상태인데... 정말 염치불구하고, 아무집이나 붙잡고 처 들어가, 문을 두드렸네요. 물론 마당에서 다라 씻다가 갑자기 나타난 미친놈을 본건 아니지만,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있을리 없는데 누가 문을 두드리나, 해서인지 굼뜨게 나온 아지매한테 이래저래 사정을 설명하니... 그기 찾아가기 힘들텐디... 하면서 마을 밖의 길을 따라 죽 가라는 겁니다. 가라는데 까야죠. 일단 줄창 가는데... 가는 중에도 산속의 불빛하나 없는 오솔길이더군요... 낮이라면 틀림없이 호젓했을... 그러나, 이제는 열차시간이 40분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 그냥 마음이 급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저 집에 사는 아지매한테 길을 물었더랬지요. 아지매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그렇게 죽 길을 따라가니



또 다른 마을에 도착했네요. 이 곳은 말 그대로 깊은 산골이고... 제대로 된 차량용 도로도 들어오지 않는 곳인지라, 마을들도 점점히 흩어져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이 마을끝에는 제발 역이 있기를... 하고 마을 끝까지 갔는데... 저수지 하나하고 논밭밖에 없더군요. 이왕 한번 베린 몸 또 아무 집이나 붙잡고 처들어갔습니다. 마당의 개느님이 어지간히 시끄럽게 짖던데... 오히려 개가 짖어대니 뭔 일인가, 하고 아지매가 금방 나와봐주시더군요.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여기서 가깝긴 한데, 찾아가기가 힘들다, 라기에 또 한번 털썩 하려는 순간! 아지매가 잠깐 기다리라며 자기가 안내해준다고 하시면서 옷갈아입고 무려 손전등까지 들고 나와주시더군요! 그 아지매는 정말... 길 잃은 어린양에게 하늘이 내린 천사가 아니었나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럴때는 신이란게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마저도 들 정도였네요...

아지매의 인도에 끌려 간 그곳에는



줄창 같이 왔기에 몇시간 밖에 안되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본것같은 철길과...



깊은 산속 간이역이지만 깨끗하게 깔려있는 승강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의 안도의 한숨이 들리십니까?



한 밤중의 간이역에 조명같은 것도 없습니다. 경전선의 역사 운영 원칙은

"대체교통수단이 있는가 없는가"

입니다. 유수역이나 다솔사역같은 경우는 대체교통수단의 확보가 원활하기에 역의 영업이 중단된 것이지요. 반대로 역이 운영되고 있다면, 그것은 교통상의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대체교통수단의 확보가 곤란할 정도로 외진 곳, 이라는 의미가, 경전선상의 역들에는 더 큽니다. 양보역의 인근마을들은 정말... 제대로 된 지방도조차 찾기 힘든 그런 곳이더군요. 적어도 걸어서, 노선버스를 탈 수 있을곳까지 가는게 상당히 곤란해 보였습니다. 물론, 밤중에 길을 잃고 헤멘 저의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요...



이런 힘든 길찾기는 양보하고 싶네.



열차가 도착할 시간은 10여분 정도 남았습니다. 역사의 의자에... 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주변을 돌아봅니다. 역의 창밖으로 멀리 어딘가의 빛이 비추어옵니다.



ㅤㅇㅢㅇ? 갑자기 불이 들어옵니다?



열차가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니, 안전상의 이유로 불을 키는, 조명을 다루는 입장에서야 극히 사무적인 조치겠습니다만...

길 잃고 헤메다 간신히 안식처를 향한 길을 찾은 나그네에게는... 이 또한 수고로움을 달래는 광명의 불빛과도 같습니다...



카메라 빠떼리도 다 떨어져가던 차에 플래쉬쓸 에너지가 모자라 몇장 안찍은 사진을, 이 참에 찍어둬야 합니다! 하야꾸하야꾸~~



조명을 받으니 근사한 양보역삽니다. 밝을때에 보면 어떤 모습일까요. 낮의 양보역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 길은 반드시 다시 와 봐야 합니다.



행선판도 새로 한번 찍어주고~



모든 뒷태는 숨막힙니다.

아, 제 뒷태는 물론 시각공햅니다만...--



낮의, 지나가는 길이었다면, 이 길을 통해 들어왔거나 나갔겠지요.



분위기가 유수역과 조금 비슷한거 같은데... 다만 이 곳은 영업을 하고 그곳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겠지요. 역으로서는 엄청난 차이지만... 쓸쓸한 작은 역으로서의 모습에 대해서야 그런건 부질없는 차이일 뿐입니다.



방송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뭐, 방송이 안나온대도, 이 고요한 산길에 디젤기관차같은 시끄러운 놈이 들어온다는 자체가 방송이겠습니다만...



보이실지 모르겠는데...

신이란게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장면이랄까나요... 비가, 그것도 폭우가 쏟아지더군요. 역에 도착하자마자... 오는길에 만약 비까지 왔다면... 저의 간당간당하던 사기는 완전히 소진되었을지 모릅니다... 어딘가에서 주저앉았을지도...



이런 조화가... 라며 감탄... 이라는 말 만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온갖 감회를 느끼는 동안...



이것은 구원의 불빛이다...


아 눈물이...ㅜㅜ 이 때의 감격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차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양보역을 보셔야 합니다. 유리창에 비친 다리 보시지 마시구요. 잇힝~



새삼, 열차라는 것이, 얼마나 편한 교통수단인가를 느낍니다. 하동으로 가는 15분간의 여정은 단순한 열차타고 가는 길이 아니었어요...



눈은 충혈되고, 뺨은 홀쭉하고, 얼굴은 여기저기 불그스름한... 아까 제가 길 물어본 아지매가 이런 얼굴인걸 알았으면 더 놀랐을 겁니다...



그렇게 하동에 도착했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아마 섬진강의 동쪽이라 하동이라 불리는게 아닐까 싶네요. 섬진강은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 곳을 동쪽에 끼고 흘렀을까요...



별들이 소근대는 하동의 밤거리.

이제는 길었던 하루를 마치고 쉬러갈 시간입니다.
이 하루가 제 인생에 어떤 의미일지, 나는 아직 가늠하지 못할거 같습니다.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게시물은 (ZDR) 중인배님에 의해 2012-08-07 09:01:30 불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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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나콘 슈퍼크루저 12-07-27 21:57
 115.♡.♡.220  
하동 구례 산청 . . . 지리산이 지척인 동내죠. ㅋㅋㅋ
묵은지 돼지고기 구이가 유명 ㅋ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12-07-27 22:04
 219.♡.♡.57  
말 그대로 지리산 권이더라구요
퍼스나콘 자라자라 12-07-27 21:58
 121.♡.♡.101  
사진 잘 봤습니다. ^^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12-07-27 22:04
 219.♡.♡.57  
사실 이번편은 사진이 다른 편에 비해 비교적 부실한 편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쁘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12-07-27 22:15
 219.♡.♡.57  
7월 11일에 반성, 진성역편을 시작으로 6월 26일자 여행분을 올리기 시작했으니 오늘까지 꼬박 17일에 걸쳐 올렸군요. 저에게는 정말 너무나도 많은 것을 남긴 하루였...
뫼르소해변 12-07-27 22:31
 121.♡.♡.3  
하---------------------------------
그야말로 수펙타클어메이징한 밤길의 양보역 찾아 구만리... ㅠ.ㅠ
겁나게 고생 많으셨을듯... 정말 심장이 간당간당하셨을듯 싶네요...
길 찾아 친히 나서주신 그 분은 정말... 수호신이 현생하신듯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12-07-27 22:43
 219.♡.♡.57  
그 아지매가 정말 고마웠어요~
퍼스나콘 ▦[초딩]불펜아이돌[훈남] 12-07-27 22:49
 115.♡.♡.190  
오늘 답사기는 긴박하네요 +_+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12-07-27 22:57
 219.♡.♡.57  
사진이 좀 부족한건 아쉽지만... 저런 급박한 상황에 느긋하게 사진이나 찍을 여유가 없더라구요... 그나마 몇장 건진게 중간께의 사진들...
퍼스나콘 [아이유]깊은슬픔 12-07-27 23:48
 121.♡.♡.168  
레알 긴 하루를 보내셨네요 +_+

유리창에 비친 다리 잘 봤습니당? +_+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12-07-27 23:53
 219.♡.♡.57  
매끈하더라긔~
퍼스나콘 김거울 12-07-28 06:45
 206.♡.♡.251  
캬~~ 힘드셨겠지만 나름 이런게 재미 아니던가요.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12-07-28 13:05
 219.♡.♡.57  
오히려 그래서 진짜 재미가 있었던게 된거 같더라구요~
멍멍 12-07-28 17:31
 222.♡.♡.196  
하... 정말 보는 제가 손발이 오그라들었다능뇨.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12-07-28 18:12
 219.♡.♡.57  
사진이 좀 더 있었으면 그때의 긴박함이 더 잘 전해졌을텐데... 오히려 그만큼 긴박했기에 사진을 못 찍은거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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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 [감독EP 1]루키리그 1차전 [5] 퍼스나콘 김플오 03-18 23856 2
757 [감독EP-0]처음이자 마지막 팀훈련,, 그리고 선수 소개 [17] 퍼스나콘 김플오 03-10 22313 3
756 [감독EP 마이나스 1] prologue 우리는 어떻게 약팀이 되었나.. [12] 퍼스나콘 김플오 03-03 22369 2
755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끝 [10]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8-04 27634 6
754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23 [6]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8-03 26424 3
753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22 [10]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8-02 26034 4
752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21 [4]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8-01 22451 6
751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20 [10]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7-31 22068 3
750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19 [6]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7-29 22810 3
749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18 [10]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7-28 21019 6
748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17 [15]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7-27 20471 8
747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16 [15]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7-26 19708 4
746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15 [10]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7-25 20589 10
745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14 [26]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7-24 19650 6
744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13 [7]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7-23 17287 4
743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12 [23]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7-20 19358 9
742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11 [18]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7-16 17153 8
741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10 [15]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7-15 23425 5
740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도의 마지막 모습 - 경전선 답사기. 9 [14] 퍼스나콘 앙겔루스노부스 07-13 1283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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