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5. 꽉. 잡아욧.)

옆자리에 앉은 동갑내기 남자동료 옆구릴 살며시 찌르면서 바람좀 잡으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래 연주씨. 멜치씨가 수원에서 오래살았으니까 한번 부탁해봐요.  혹시 알어.  복덕방비 절약되고...”

나도 한마디 한다.

“수원은 크게 동수원과 서수원으로 나뉘고요. 서수원은 구 수원이고 우리 회사가 있는 이곳이 새로 개발된 곳이지요.  인계동을 주변으로 매탄동, 권선동, 곡선동쪽이 신도시인데, 일반주택 원룸을 찾으실려면 권선동 3차 아파트 인근이 깔끔합니다.   그리고 저희 어머님 친구분이 공인중계사분이 계셔서 그분 통하면 복비도 저렴할 수도 있구요”  

어!  전혀 관심도 없었던 수원의 주택상황이 줄줄줄 나오고, 유령의 어머님 친구까지 등장한다. 

김연주씨 주위의 부추김과 뭔지 미덥지는 못하지만 도와주겠다는데 거절하기도 좀 미안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 그래주시면 고맙죠...”

그후로는 일사천리.   일요일 13시에 수원역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 당시에는 이런 신 역사가 세워지기 이전 낡은 역사였다.> 

토요일은 아주 바빴다.  오전 근무를 끝내고(그때는 주 5일근무 시작전이다) 일단 우리집 근방 복덕방을 뒤졌다. 일단 근처에 살아야 출퇴근이라도 같이하고 자주 만날것이 아닌가.

예산은 1,500만원 정도라니, 그 금액에 맞는 집들을 보러 다녔다. 집이 낡지안고, 반지하가 아니고, 통풍이 잘되고, 보안성이 있는집.  물론 집주인 인상도 중요하다.

복덕방만 일곱곳. 본집만 10집이 넘었다. 10집중 3-4곳정도가 괜찮기는 했지만, 썩 내맘에 드는 곳이 없었고 해가 뉘억뉘억 넘어갈 때쯤 되니 근 6시간의 긴 행군으로 장마가 시작될려는 6월 중순의 무더위 때문에 녹초가 되어버렸다.

일요일.  그녀와 만나기로 한 날.  아침부터 오늘도 더운날이라고 일기예보가 알려준다.

그런들 어쩌랴.  그녀와 단둘이 데이트(?)인데...

한시 정각에 김연주씨는 도착했다.  시간관념도 착하다.  반팔 티와 아이보리색 바지를 입고 통굽 구두를 신었다.  출근 차림새와 비슷하다.   나도 뭐 캐주얼로 예의를 차렸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최대한 복덕방업자처럼 객관적으로 그녀를 대했다.   내 사심이 들어나지 않도록 필요없는 이야기는 가급적 줄이고 찍어두었던 집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한 두집 정도 보았을까 무더위로 등줄기에서는 땀이 흐르고, 기운이 빠진다.   어디가서 쉬었으면 하는데, 김연주씨가 물꼬를 튼다.

“아.... 너무 덥네요.”

“많이 덥지요?  그럼 우리 어디 들어가서 냉커피나....”

“커피는 됐구요.  어디 시원한 맥주나 한잔 하러가죠.......”

허걱!  맥주를 먹잖다.  이제 오후 3시인데....

주변을 둘러보니 경양식집이 문을 열었다.  이른 오후 경양식집은 손님이 없다.  좀 구석진 자리를 찾아 마주앉은 후 메뉴판을 보니 생맥주도 판다.

500 두개와 화채를 시키고는 한모금을 마신다.

“크아............”  목젓을 따라 차디찬 맥주를 넘기니 뒷골까지 냉기가 확 전달된다.

연주씨는 그냥 꼴깍 한모금 마시더니, 화채 그릇에 숟가락 두개가 있으니 종업원을 불러 앞접시를 달라고 한다.   그래 침 섞이기에는 아직 이르지...

술 한잔 들어가니 짜리리 하면서, 입이 나불거리기 시작한다.

먼저 호구조사.  1남 2녀의 막내.  아버님은 수협에 다니시고 어머님은 전업주부.  오빠는 기아자동차 다니고, 수원에서 신혼 살림시작한 언니는 학원영어강사란다.  형부는 한화 다니고..

그냥 평범한 서민과 중산층의 중간정도.  우리집과 경제적인 면은 비슷하다.  다행이다.

더위가 좀 가실 시간에 다시 방을 보기로 하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학생때이야기, 군대이야기, 직장이야기, 가족이야기(장남으로써의 책임감 등), 그리고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 까지...

주로 내가 이야기 하고 그녀는 잘 들어준다,  근 세시간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니 나는 2,000cc를 마셔서 취기가 알딸딸하고 그녀는 500cc가 아직 조금 남아있다.

그러더니 한마디 한다.  “그런데 사귀시는분 없으세요?  아무리 동료지만 일요일 여친 있으면 이렇게 시간 내기 어렵잖아요...”

3년전에 있었고, 그 친구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 헤어졌다고 담담하게 이야기 해줬다.  더 이상 자세히 안물어봐서 나도 그정도로 이야기를 접었다.

그래! 이여자.

3년전 여친과 어딘가 비슷한 면이 있다.  침착하고, 이지적이고, 다소곳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연약해 보이지만 가슴속에 강단이 있는 느낌.  체형이랑 그런 것도.....  그래서 처음 연수원에서 봤을때부터 그리 친근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 이후 난 1000cc를 더 마셨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 해져서....  엷어져 가는 옛 추억이 이여자로부터 되살려 나오고 있다.

방 구경은 더 이상 무리였다.  내가 취기도 있었고 그녀도 피곤해 한다.

“어떻게 다음주에 좀 더 보실래요?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지만, 제가 좀 죄송해지네요.  제가 다음주는 점심이나 저녁을 살께요....”

1주일 후 다시 또 만났다.  날이 덥기전 아침에 방을 보기로 하여 오전 9시에.

걸어다니기 어려운 날씨여서 학교다닐때 타고다니던 125cc짜리 오토바이를 끌고 나왔다.

내가 오토바이를 끌고 나오니, 연주씨 깜작 놀란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왔기 때문이다.

아무말 없이 헬맷을 그녀에게 씌워주고, 뒷자리에 다리를 벌려 앉게하고 치맛자락을 허벅지 밑으로 구겨 넣어 펄럭거리지 않게 한다음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건다.

이 여자 나의 속전속결 적인 행동에 거부도 못하고 그냥 하라는대로 한다.

“꽉 잡아요”

그런데 연주씨 내 옆구리 옷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잡고 있다.

오토바이를 도로로 내리고는 살짝 엑설레이트를 당긴다.  “까악..”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그녀가 내 등 뒤로 확 붙으면서 가슴의 촉감이 등에 전해져온다.  뭉클하다.

어느새 그녀의 팔은 깍지를 껴 내 허리를 감싸고 내 등에 얼굴을 묻고 있다.

6월말 어느 일요일 아침 그녀를 태우고 주택가 반대쪽 교외로 핸들을 돌린다.

오토바이의 진동과 함께 그녀의 약간 떨린 호흡이 전해온다.

귀 옆으로 스치는 아침 바람이 상쾌하다.....   이.제...  시.작.이.다.

(계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