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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야구 분업화 가속

“야구는 9명이 하는 경기인가, 10명이 하는 경기인가.”

1973년 3월6일 야구계에는 새로운 논란거리가 등장했다. 이날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시범경기에서 투수 대신 수비를 하지 않고 타격만 하는 공격수 한 명을 라인업에 넣었다. 이른바 ‘지명 타자(DH)’가 야구의 공식 경기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DH를 도입하게 된 배경은 흥행이었다. 타격이 약한 투수 대신 공격만 전담하는 강타자를 한 명 더 넣음으로써 공격적인 야구를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아메리칸리그 구단주들은 DH 도입에 합의했다. 중요한 찬스에서 타격이 약한 투수의 타순이 돌아오면 맥빠지게 경기의 흐름이 끊기는 현상을 막고 관중들의 흥미를 배가시키겠다는 것이 본래의 의도였다. 농구의 3점슛 제도와 일리걸디펜스 규칙이 만들어진 것과 유사한 배경이다.

이날 역사상 첫 보직에 ‘지명’된 미네소타의 래리 히슬은 혼자 홈런 2방을 때리고 7타점을 올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의 활약을 지켜본 AL 구단주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누구도 ‘10명이 하는 야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제도는 본래의 의도와는 다른 효과를 낳았다. DH는 나이가 들어 수비에 부담을 느끼는 노장선수들의 선수생활 연장책이 됐고 수비가 약한 선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또한 피칭에 전념하게 된 투수들이 신종 구질을 속속 개발하면서 공격력 강화라는 본래의 취지도 무색해졌다. DH는 야구의 분업화와 전문화를 가속화시키는 촉매가 됐다.

DH 제도는 야구의 대세가 됐다. 일본과 한국에도 DH가 도입됐고 올림픽 공식종목으로서의 야구도 DH를 인정하고 있다. 야구월드컵으로 불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도 DH를 인정한다.

그러나 DH는 여전히 ‘반쪽 선수’ 취급을 받는다. 이들의 성적을 다른 ‘풀타임 선수’들과 차별화해 ‘최우수 지명타자상’을 따로 신설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DH가 없는 내셔널리그와 일본 센트럴리그의 고전적 야구를 고집하는 많은 팬들은 지금도 의문을 제기한다. “진정으로, 야구는 9명이 하는 경기인가 10명이 하는 경기인가.”

<유신모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51902435&code=10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