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개인적인 감상 좀 주절 거리겠습니다.


제가 캐나다로 온게 2000년도 였네요.

장남이라는 놈이 공부는 안하고 집에 돈 좀 있으니 떠밀려온 로또성 도피유학 이었습니다.

한국 학교 중퇴와 유학원을 통해 현지 학교 선정, 유학 비자 수속, 비행기표 발급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지만 중요한 건 제 자신이 준비가 안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는 그렇다 치고 영어 듣기 평가 80점을 넘긴 적이 없는 녀석이 영어로 수업을 들으라니요. 님하 재미없어요. 허허..


그렇게 던져지듯 제 유학생활이 시작했습니다.

수업도 힘들었고 제가 처해진 상황에 짜증이 났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더군요.

TV를 틀어도 들리는건 하나도 없고, 스포츠를 봐도 농구는 원체 관심도 없었고 아이스하키는 아직 규칙도 모르겠고 그나마 야구 하나는 알아겠더군요.

그렇게 저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인연이 시작했습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경기를 보게 됐고. 그러다 로이 할러데이 라는 선수를 알게 됐죠.

그때만 해도 애송이 였습니다. 특급 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2-3선발급 유망주 였습니다. 성적도 지지리 못 나오더니 사라지더군요.


그리고 1년 뒤 그가 돌아왔습니다.


홀로 어떤 고생을 겪었는지 자신을 능가하는 유망주로 평가되던 크리스 카펜터 / 켈빔 에스코바를 훌쩍 뛰어넘는 슈퍼 에이스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때 쯤 부터 제가 학업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고 대학 타겟을 정해서 나가고 있었지요.

그리고 제가 대학에 입학한 해.. 할러데이는 싸이영상을 타며 리그 특급 에이스로 우뚝 서게 되더군요.


리그 특급 에이스가 되서도. 그는 양키스와 레드삭스를 넘어 플옵 진출을 위해 고군분투 했습니다.

팀이 원할때는 4일 등판을 마다하지 않았고.. 스텟 관리 따위는 마다하고 양키스/레드삭스 전에 출전할 것을 팀에 요구했습니다.

그야말로 로져스 센터의 투신이었습니다. 그와 함께라면 전성기 싸이영이 돌아와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이놈의 역마살 낀 인생에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닐 때도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응원했습니다.
 
로이 할러데이 라는 선수와 제가 그에게서 느끼는 동경, 동질감 때문이었겠지요.


웃기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이 3명 있다면 할러데이가 그중에 들어갈 겁니다.

그의 화려함은 없지만 묵묵한 경기를 좋아했고.. 인터뷰에서 풍기는 겸허함을 사랑했고.. 돈보다 명예를 중시 여기는 자세를 존경했습니다.

토론토 팬으로 그저 할러데이의 모든 것이 감동이었네요.


시험 기간인데 학교 lab에서 할러데이의 트레이드 소식을 듣고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흐르더군요.

공부 할 의욕이 싹 사라졌습니다. 야구 시즌 5일 마다 당신의 경기를 보는게 인생의 낙이었는데. 그게 사라지는군요. 무척 보고 싶어질 겁니다.


이건 뭐 완전 신앙고백이 되어 버렸네요 ㅋ

필리스 팬님들 복받으신 겁니다. 할러데이는 유망주 몇명으로 따질 수 있는 그런 선수가 아닙니다.

팀의 심장이자 영혼이 될 수 있는 선수에요. 토론토는 그런 선수로 부터 버림 받았고요.


다음 야구 시즌 시작해도 예전 처럼 5일 마다 티비 앞에 각잡는 그런 열정은 없어질거 같군요.

내년 필리스 유니폼을 입고 있을 교수님을 어떻게 보려나. 벌써부터 가슴이 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