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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룸바는 현대의 마지막 외국인선수이자 우리 히어로즈의 첫 외국인선수다. 현대와 히어로즈에 대해 브룸바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사진 김수홍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사라졌다. 옛 현대선수들 모두는 ‘히어로즈’라는 새 유니폼을 입기까지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바다 건너 미국 플로리다에 있던 클리프 브룸바(34) 역시 그랬다. 브룸바는 현대의 마지막 외국인선수이자 4번 타자다.

그는 3월 14일 우리 히어로즈의 첫 외국인선수가 됐다. 지난해 홈런 29개, 타율 3할8리를 기록하며 제 몫을 다했지만 연봉은 오히려 낮아졌다.

삭감된 계약서에 사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와 히어로즈에 대한 브룸바의 진심을 들었다.

“마지막이라기보다 또 다른 시작이라고 믿어야죠.” 지난해 10월 5일 수원구장. 쌀쌀한 가을바람이 그라운드를 스치고 지나가자 현대 김시진 감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날 열린 한화전은 프로야구단 현대 유니콘스의 고별전이었다. 12년 구단 역사의 마침표를 찍는 경기를 앞둔 감독의 표정이 밝을 리 없었다. 한숨이 자주 나왔다.

이때 수비훈련을 하러 그라운드로 향하던 클리프 브룸바(34)가 김감독에게 다가왔다. “오늘 꼭 홈런을 보여 드릴게요.”

브룸바의 진심 어린 말에 김감독의 굳은 표정이 잠시나마 환해졌다. 김감독은 브룸바의 등을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대화를 엿들은 것일까. 이날 수원구장을 찾은 1,444명의 관중은 브룸바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브룸바, 홈런”을 외쳤다.

그러나 8회까지 브룸바의 홈런은 나오지 않았다. 안타 1개와 볼넷 1개를 기록했을 뿐이었다. 현대가 2－0으로 앞선 8회 1사 뒤 브룸바가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다. 한화 투수 문동환과 8구까지 가는 긴 승부가 이어졌다.

‘딱’ 소리와 함께 배트가 크게 돌았다. 중전안타였다. 순간 브룸바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배트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목표였던 시즌 30개 홈런 달성에 실패한 데다 김감독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난 뒤 김감독은 “브룸바는 마지막 경기에서도 팀의 4번 타자 구실을 제대로 했다”고 칭찬했다.

브룸바는 지난해 국내프로야구 최고의 타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부진했다. 오른쪽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4월 타율은 2할3푼9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하며 타격감을 되찾았고 126경기 전 경기에 출전하는 집념을 보였다. 지난 시즌 타율은 3할8리, 홈런은 29개로 심정수(31개)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지난해 100개 이상의 볼넷을 고른 타자는 브룸바가 유일하다. 브룸바는 일찌감치 국내 무대에서 검증된 타자다.

2003년 마이크 프랭클린의 대체선수로 한국 땅을 밟은 브룸바는 그해 70경기를 뛰며 타율 3할3리, 14홈런, 51타점을 기록했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는 25타수 8안타(타율 0.302), 10타점으로 맹활약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듬해에는 타율 3할4푼3리, 장타율 6할8리, 출루율 4할6푼8리로 타격부문 3관왕에 오르며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브룸바는 한국에서 거둔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2005년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에 입단했다. 첫해 124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6푼3리, 19홈런을 쳤다.

구단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 2006시즌 성적은 더욱 좋지 않았다. 47경기에 나서 타율 2할2푼3리, 5홈런으로 부진했다. 브룸바는 “나카무라 가즈히로 감독과 뜻이 맞지 않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국 땅을 다시 밟은 브룸바는 올해로 한국프로야구 4시즌째를 맞는다. 신생팀 우리 히어로즈의 브룸바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높다.

이광환 히어로즈 감독은 브룸바와 계약을 하기 전부터 “올해 우리 팀의 4번 타자는 브룸바”라고 밝혔다.

히어로즈 구단은 홈인 목동구장 외야의 그물망 높이를 브룸바의 타구에 따라 조정할 계획까지 갖고 있다.

그러나 브룸바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다. 지난해 뛰어난 활약을 했지만 올 시즌 연봉에서 보상을 받지 못했다.

브룸바의 지난해 연봉은 옵션을 빼고 30만 달러(구단 발표액)다. 브룸바는 올해 옵션을 빼고 연봉 40만 달러에 계약금 등 55만 달러를 요구했다.

그러나 인상은커녕 동결조차 되지 않았다. 브룸바도 박노준 히어로즈 단장의 연봉 거품 빼기 작업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박단장은 계약 전부터 “브룸바는 검증된 선수지만 그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브룸바는 올해 계약금 3만 달러와 연봉 22만 달러 등 25만 달러를 받는다.

브룸바는 “미국에서 현대 문제를 지켜보다 지쳐 메이저리그나 멕시칸리그 진출을 알아보려고 하는 데 구단에서 연락이 왔다”며 “말도 안 되는 계약이지만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계약서에 사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3월 18일 대전 리베라호텔에서 브룸바를 만났다.

우리 히어로즈의 브룸바에 대한 기대는 매우 높다. 사진 김수홍

유니폼이 잘 어울린다.

고맙다. 색깔이 마음에 든다. 로고 디자인도 괜찮고.

일본프로야구 라쿠텐 이글스의 유니폼과 비슷하다.

많이 비슷하지만 우리 팀 유니폼이 더 좋다. 유니폼 상의 중앙에 있는 ‘WOORI’라는 팀 로고가 너무 큰 것만 빼면. 팀 로고가 너무 크고 두껍다. 운동할 때 불편하다.

야구는 몸을 구부리거나 빨리 움직여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방해가 될 것 같다. 위에 점퍼를 걸치면 가슴이 답답할 것 같기도 하다. 팀 동료들도 같은 생각을 한다. 투구때 몸을 움츠렸다 펴야 하는 투수들이 특히 그렇다.

유니폼을 지급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현대 시절 생각이 조금 났을 뿐이다. 오프시즌 동안 현대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계약을 맺은 히어로즈 구단에 대한 예의상 그러고 싶다. 나는 외국인선수다. 내 발언으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제는 앞만 보고 달려야 할 때고.

지난해로 기억을 되돌려보자. 현대의 고별전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친 뒤 배트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는데.

정확히 기억한다. 30개 이상의 홈런을 치는 것이 2007시즌 목표였다. 그런데 29개에 그쳐 내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다.

그날 모든 타석에 홈런을 의식하고 들어섰는데 한화 투수들의 실투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정말 홈런을 칠 수 있었는데 답답했다.

그래도 지난해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나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 하나의 목표를 세운다. 나 외에도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는 모든 외국인선수가 그럴 것이다. 나는 주로 홈런을 몇 개를 칠 것인가를 목표로 삼는다.

지난해 성적과 별개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이것은 분명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시즌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현대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 뒤 어떤 기분이 들었나.

한 시즌을 마쳐 뿌듯했지만 대체적으로 우울했다. 팀이 없어지는데 기분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더군다나 나는 그동안 현대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괜찮은 성적도 기록했고.

선수들 모두와 친하게 지냈다. 현대는 내게 좋은 인연을 많이 맺어 준 팀이다. 강팀이기도 했고. 2003년과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 기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 팀을 떠나보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프로야구는 비즈니스다. 수익구조 등을 생각하는 구단을 이해한다. 물론 선수들은 불행을 겪고 있다.

하지만 야구를 하면서 이보다 더한 일도 겪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이제 새로운 팀이 생겼으니 이곳에서 선수들 모두 하루 빨리 적응하고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

현대는 당신에게 어떤 구단으로 기억되나.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준 구단이다. 아시아에서 야구를 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준 구단이기도 하고. 현대는 나와 내 가족에게 최선을 다했다. 내 야구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따지자면 절반 이상이다. 아니 그보다 더 높을 것 같다.

처음 현대와 인연을 맺었을 때를 기억하나.

시카고 화이트삭스 트리플A에서 뛰고 있을 때였다. 캐나다로 원정경기를 갔는데 엄홍 당시 현대 스카우트와 정명원 투수코치를 만났다. 내게 “한국에서 뛰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다. 한창 마이너리그에서 잘 치고 있던 때라 조금만 더 하면 메이저리그로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단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데 좋은 성적을 올려도 메이저리그에서 부르지 않았다. ‘이렇게 마냥 기다릴 수 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 끝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로 결정했다.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어땠나.

긴장이 많이 됐다. 한국은 가 본 적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족을 두고 홀로 떠난다는 것도 내심 불안했다. 그럴 때마다 ‘이미 마음먹은 거니까 잘해 보자’라고 혼자서 몇 번을 중얼거렸다. 돈을 벌어야 가족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했다.

오랫동안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는데 아쉽지 않았나.

어디 아쉽기만 했겠나. 나는 트리플A에서 매 시즌 타율 3할 이상을 쳤다. 홈런도 꽤 때렸다. 팀 동료들 모두가 메이저리그에 갈 실력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선택 받지 못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쉬움을 접고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을 잊기로 했다.

마이너리그에서 8년 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1995년 드래프트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에 13라운드로 뽑혔을 때만 해도 정말 행복했다. 메이저리그 진출은 모든 야구선수들의 꿈이 아닌가. 바로 가족,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 파티를 열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에서 부르지 않았다. 열심히 훈련하고 좋은 성적을 낸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닌 듯 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운도 조금은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2001년 텍사스에서 메이저리그로 올라갔지만 당시 팀 안에 후안 곤살레스를 비롯해 나보다 좋은 외야수가 많았다. 기회가 주어질 리 없었다. 콜로라도 로키스로 팀을 옮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콜로라도에서 메이저리그에 올라 14경기에 출전해 안타 10개, 2루타 2개, 홈런 1개를 비롯해 타율 2할7푼8리를 기록했다. 나쁘지 않은 기록인데.

그때 성적이 괜찮았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왜 메이저리그에서 14경기만 치르고 내려왔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콜로라도 트리플A 팀이 선정한 최우수선수(MVP)로 뽑히기도 했다. 아쉽지만 그때 일은 잊어 버렸다.

처음 메이저리그에 올랐을 때를 기억하나.

물론이다. 생생히 기억한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치른 원정경기였는데 어머니께서 경기를 보셨다.

어머니는 내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기쁜 나머지 울음을 터뜨리셨다. 그런데 그날 나는 안타를 때리지 못했다. 다음날 나는 어머니의 눈물에 자극을 받아 안타를 때렸다. 그것도 홈런으로.

현대 유니콘스

2003년 현대에 입단한 뒤 치른 첫 경기도 기억하나.

피곤한 상태에서 타석에 나섰던 걸로 기억한다. 야구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이 전혀 없을 만큼 바빴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구단 직원, 선수, 코칭스태프와 인사를 나눴고 다음날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비자를 발급받았다.

그리고 이틀 뒤 KIA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때 KIA 선발이 김진우였는데 생각보다 변화구를 많이 던져 애를 먹었다.

경기를 하면서 무엇이 가장 인상 깊었나.

적은 관중이다. 경기마다 3만 명 이상이 들어오는 메이저리그를 보다 텅 빈 관중석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기운이 빠졌다. 그나마 롯데가 관중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었다.

현대는 평균 관중수가 가장 적은 팀이었다.

알고 있다. 홈경기인 데도 원정팀 관중이 더 많은 경우도 있었다. 삼성과의 경기가 그랬다. 홈은 현대인데 관중은 늘 삼성이 더 많았다. 그렇다고 삼성 팬들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오히려 고맙다.

수원구장의 입장수입을 늘려 줬으니까(웃음). 사실 ‘이렇게 인기 없는 팀에서 뛰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관중이 많아야 선수도 경기를 할 맛이 나지 않겠나. 그런데 관중수는 내가 홈런을 몇 개씩 쳐도 늘지 않았다. 원래 강팀에 많은 관중이 몰리는데 현대는 우승을 해도 늘지가 않았다.

동료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리그나 우승을 하는 구단이 가장 인기가 많지 않나. 내가 자꾸 신경을 쓰니까 나중에 팀의 베테랑들이 신경을 쓰지 말라고 했다.

팬이 적어도 늘 최선을 다 하자고 했다. 그 말이 이제 와서 생각하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2004년 타율 3할4푼3리를 기록하며 타격왕에 올랐고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그러나 최우수선수의 영광은 삼성 배영수에게 돌아갔다. 아쉽지 않았나.

그렇지 않았다. 나쁜 의미가 아니고 나는 외국인선수다. 여기는 한국이고. 나와 배영수가 비슷한 성적을 냈다면 배영수가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나 기자들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한다. 더군다나 배영수는 좋은 투수다. 메이저리그에 가도 통할 만한 선수에게 밀렸는데 억울했겠나.

부상으로 지난 시즌 초반 부진했는데.

한마디로 ‘비참한 출발’이었다. 걱정을 정말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끔찍할 정도다. 올해는 그런 악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시 구단 내에서 외국인선수를 교체한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알고 있다. 나도 귀가 있는데(웃음). 팀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나라도 잘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소문이 나도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구단주라면 기회를 주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구단은 끝까지 나를 믿었다.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2003년과 2004년의 성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근거 자료가 있었기에 언젠가 페이스를 찾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힘든 시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도와 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리고 싶다. 특히 김시진 감독에게 고맙다.

김시진 감독은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나.

은인이다. 김감독이 믿어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거다. 김감독은 2003년부터 코치로 이미 알던 사이라 나에 대해 잘 안다.

그렇게 한 선수에 대해 믿음을 주는 감독은 보기 드물다. 김감독과 한 시즌을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야구 인생에서 복을 받은 거라고 생각한다.

올해 한국에 돌아와 김시진 감독을 만난 적이 있나.

시범경기 때 한번 만났다. KBO 경기운영위원이 돼 있었다.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나를 보고 계속 웃으셨다.

김감독은 웃는 얼굴이 참 매력적이다. 보는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조만간 다시 팀을 맡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시진 감독과 전임인 김재박 감독의 차이가 있다면.

야구스타일이나 성격이 모두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김시진 감독은 투수 출신이라 그런지 투수진에 더 신경을 쓴다.

불펜 운용이나 투수 기용이 매우 뛰어나다. 김재박 감독은 선수 전체를 이끄는 카리스마가 있고 상황 판단이 매우 뛰어나다. 결국 둘 다 뛰어난 감독이다(웃음).

브룸바는 지난해 29홈런을 쳤다. 목표에는 1개가 모자랐다. 사진 김수홍

불합리한 계약

지난 시즌이 끝나고 현대 인수 문제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미국에서 지켜보면서 불안하지 않았나.

당연하다. 농협, KT의 인수 이야기를 듣고 기뻤다가 무산 소식을 듣고 바로 절망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으니 그저 답답했다.

어디서 2008년을 보내야 할지 불안했다. 현대는 그동안 플로리다주 브래든턴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나는 미국에서 바로 합류했는데 이번엔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으니까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긴다.

무엇이 웃기는 일인가.

구단이 없는 상태인데 나에 대한 보류권은 풀어주지 않았다. 정말 웃기는 일 아닌가. 만일 보류권을 포기했다면 내 거취에 대해 좀 더 신중하고 올바른 결정을 했을 거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센테니얼도 그렇다. 보류권을 갖고 있다면 내게 어떤 회사인지 정도는 알렸어야 옳다. 그런데 나는 누구에게서도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현대 문제가 제때 해결되지 않아 따로 대비를 했을 것 같은데.

메이저리그와 멕시칸리그를 알아봤다. 나에 대한 보류권이 풀리기 만을 바라면서. 하지만 가장 바랐던 것은 팀이 어딘가에 하루빨리 인수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대비를 한다고 해도 구단이 공중분해 된다면 나 역시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으니까.

한국의 나머지 7개 구단은 이미 외국인선수들을 모두 영입한 상태였다. 이러다가 야구를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정신적으로 많이 괴로웠겠다.

말도 못할 만큼.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편했다. 휴식은 물론 발목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시간도 늘었기 때문이다.

당시 접촉한 구단을 말해 줄 수 있나.

보스턴 레드삭스다.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 우리 히어로즈의 창단 소식을 들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한국에 오지 못할 뻔 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이미 8년 동안 고생했다. 다시 미국프로야구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나이도 적지 않고.

미국에서는 어린 나이다. 한국과 미국의 나이 계산이 틀리지 않나. 더군다나 미국선수들은 한국선수들보다 선수 수명이 길다. 나는 아직 유망주다(웃음).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자신도 있었다.

당장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인가.

지난 시즌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힘이 더 세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실력으로만 본다면 지금이 나의 전성기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계속 주전으로 뛸 수 있다는 확신은 없다. 하지만 기회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그대로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대신 우리 히어로즈와 계약한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었다. 도전에는 늘 위험 부담이 따른다.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한 것이지 내 의지로 도전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만일 보스턴과 계약했다면 내게 베스트 시나리오는 두 가지였다. 중간에 한국의 다른 프로팀과 계약하거나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거나.

그런데 지난해 연봉보다 낮은 금액에 사인을 했다.

솔직히 우리 히어로즈의 제시액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 한국의 한 신문에서 내가 역대 외국인타자 베스트5에 들어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런 선수다. 그런데 연봉을 어떻게 깎을 수 있나. 이건 말도 안 된다. 왜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계약서에 사인을 한 이유는 뭔가.

야구를 해야 했다. 내가 한국에 온 목적은 돈도 중요하지만 야구 인생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다. 정말 어쩔 수 없이 펜을 들었다. 내 야구 인생을 지키기 위해서.

구단에 많이 서운할 것 같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현대를 인수하는 구단에서 계속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프시즌이 시작되고 김시진 감독을 비롯한 현대 관계자들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다른 팀으로 떠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지난해 그렇게 못했나. 난 부상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성적을 냈다. (잠시 말을 멈췄다가) 정말 슬프다.

당신 외에도 많은 선수가 피해를 봤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러 동료들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민감한 사안이라 자칫 팀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

(잠시 말을 멈추다)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왜 나서지 않는 건가. 많은 선수가 올해 KBO와 구단주에게 피해를 본 걸로 알고 있다.

군 보류수당도 없어진 걸로 알고 있다. 나와 지난해 함께 뛴 감독, 코치들은 실직자가 됐다. 구단이 예산을 줄이고 구조조정을 하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이런 일들을 적절하게 조율해서 선수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야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든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해 보인다. 현재 상황을 그대로 놔두면 더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신이 구단에 제시한 연봉은 옵션을 제외하고 55만 달러로 알고 있다.

구단에 처음부터 그 금액을 주장했다. KT에서 40만 달러를 준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해했다. 그런데 이번 계약은 너무 불합리하다.

25만 달러(계약금 5만, 연봉 20만 달러)에 계약했는데.

이대로는 안 된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다. 이런 상황에서 움츠리고 있으면 나중에 더 크게 당한다. 메이저리그처럼 파업은 아니더라도 항의를 계속해야 한다.

외국인선수지만 한국프로야구에 대한 사랑이 대단해 보인다.

나는 한국에 돈만 벌기 위해 온 게 아니다. 모든 한국선수가 내 동료다. 야구장에서 내 가족이나 다름없다. 걱정은 당연하다. 내가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는 한 이런 걱정은 계속하게 될 거다.

아시아 리그


일본프로야구에서 뛸 때도 마찬가지였나.

당연하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웃음).

2005년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에 입단했다.

한국에서 좋은 성적을 내 자신감이 생겼다. 일본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릭스가 많은 돈을 쥐어주기도 했고.

첫 시즌은 무난했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19개의 홈런을 쳤다. 타점도 팀 내 2위였다. 그러나 2006시즌은 나카무라 가즈히로 감독 때문에 망쳤다.

나카무라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유가 뭔가.

사이가 좋지 않은 게 아니다. 이유 없이 나를 싫어했다. 홈런을 친 다음 타석에서 나 대신 대타를 내보낸 적도 있다. 나중에는 출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팀 내 다른 선수, 코칭스태프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1군에서 3경기 연속 홈런을 때렸는데 다음날 2군에 내려간 적도 있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프로에서 10년을 넘게 뛰었지만 감독과 불화를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카무라 감독이 이상한 사람인 셈이다.

카림 가르시아(롯데)와 함께 항명을 하기도 했는데.

나카무라 감독이 처음에는 가르시아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싫어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오릭스에서 뛰는 모든 외국인선수를 싫어했다. 항명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나.

두 번째 2군 통보를 받았을 때 너무 억울해 일부러 연습을 하지 않았다. 나카무라 감독이 2군 경기장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카무라 감독은 우리에게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코치들을 통해 이야기할 뿐이었다. 김시진 감독을 보라. 지난 시즌 초반 부진했지만 끝까지 믿었다. 나는 좋은 성적으로 믿음에 보답했다. 일본에서 기회를 얻지 못해 실패했을 뿐이지 분명 성공할 수 있었다.

오릭스에서 나온 뒤 사령탑이 LA 에인절스 출신 테리 콜린스 감독으로 바뀌었다. 아쉽지 않나.

그렇진 않다. 나카무라 감독이 오릭스의 단장이 됐기 때문에(웃음).

올해 가르시아와 한국프로야구에서 같이 뛰게 됐다.

그는 좋은 선수지만 나처럼 슬로 스타터다. 한국프로야구에 적응하는 데 약간 시간이 걸릴 거다. 롯데가 믿고 기다릴 줄 안다면 가르시아의 진면목을 보게 될 거라 확신한다.

지난해 한국프로야구에서 함께 뛰었던 다니엘 리오스가 올해부터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데.

알고 있다. 오프시즌 때 리오스에게서 자주 전화가 왔다. 내가 일본에서 뛴 경험이 있다 보니 그곳 생활에 대해 물었다.

지난해 리오스는 정말 대단했다.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할 자격이 있다. 반면 나는 지난해 성적으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한국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외국인선수는 누군가.

한화에서 뛴 제이 데이비스다. 한화와 경기가 있는 날이면 밥도 같이 먹고 술도 같이 마셨다. 속 깊은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그 친구가 좋아하는 신라면을 나도 무척 좋아한다. 불고기와 갈비가 더 맛있지만(웃음).

아시아 리그에서 뛰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다. 다른 선수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문화의 차이를 좁히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구단 덕도 많이 봤다. 현대는 외국인선수가 뛰기 매우 편한 팀이었다. 승리를 고집하는 팀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과 같은 팀은 다르다. 선수, 코칭스태프 모두가 우승에 목말라 있다.

그런 팀에서 외국인선수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어느 팀에서나 이같은 부담은 한 가지 이상 있다. 결국 부담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중요하다.

많은 외국인선수들이 이런 점을 알면서도 아시아 리그에서 실패한다.

적응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야구장 안팎에서 모두 적응해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야구를 아무리 잘해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지난해 현대에서 함께 뛴 미키 캘러웨이는 한국에 적응하려고 한글을 배우기도 했다. 리오스도 그랬고.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난 매일 출전하는 타자다. 그들처럼 여유가 많지 않다.

지난해 리오스는 같은 질문에 “리그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했다.

맞는 말이다. 많은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들이 아시아 야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시아 리그에 진출하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그렇지 않다는 걸 뛰어 보면 알게 될 거다. 생각보다 아시아 리그가 뛰어나다는 것을. 얕잡아 보고 진출했다가 정신적 충격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선수를 많이 봤다.

아시아 리그에 적응하는 당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능력을 믿는다. 세부적인 면까지.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하나하나 따지면 선수생활을 할 수 없다.

가령 아시아에선 메이저리그와 달리 호텔에 가도 짐을 직접 싸고 옮겨야 한다. 그런 일에 짜증을 낸다고 해결될 게 없다. 짜증을 받아 줄 사람도 없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왔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라고 생각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일본프로야구와 한국프로야구의 차이가 있다면.

평균 실력으로는 일본이 한국에 앞선다. 선수층부터 다르니까. 하지만 베스트 선수들을 뽑아 놓으면 비슷하다. 야구 스타일도 거의 같다.

한국이나 일본이 출전하는 국제경기도 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비롯해 많은 경기를 봤다. 한국투수들의 실력은 수준급이다. 각 팀의 에이스들은 모두 메이저리그에 진출해도 5선발 안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승엽의 타격도 매우 인상적이다.

한국과 일본에 대한 당신의 관심이 상당해 보인다.

휴일이면 집에서 TV를 주로 보다보니 그렇게 보일 뿐이다. 원래 외향적인 성격인데 아시아에서 야구를 하면서 많이 변했다. 대화가 안 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물론 나보다 가족이 더 많이 고생한다.

가족

지난해 아내 타냐 브룸바와 자녀들이 경기마다 수원구장에서 응원하던데.

아내에게 미안하다. 아내는 나만 믿고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나. 아이들도 혼자 힘으로 키운다. 내 인생에서 아내를 만난 것은 최고의 행운이다.

아내를 어떻게 만났나.

아내는 백화점 직원이었다. 쇼핑을 하러 백화점에 갔다가 첫눈에 반했다.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웃음). 3년 동안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야구선수라서 시즌 중에는 데이트를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즌이 끝나면 거의 매일같이 만났다. 그 덕에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가족과 여행도 자주 가나.

한번 집에 들어가면 집밖으로 거의 나서지 않는다. 집에 있는 걸 워낙 좋아해서(웃음). 오릭스에 입단했을 때는 집을 두 채나 갖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경기를 하면 연고지에 있는 집에 가지 못한다.

그래서 집을 하나 더 장만했다. 물론 오릭스가 돈을 많이 줘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나도 여행을 가고 싶지만 아이들을 키우느라 그럴 수 없다.

힘들고 피곤하다. 집에서 얼마든지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있겠나. 여행을 가게 되도 타냐하고만 갈 거다.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맡기겠다.

어머니(데비맥 브룸바)가 소프트볼선수 출신인 걸로 알고 있다.

팀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렸을 때 어머니 팀 동료들과 캐치볼을 했다. 어머니는 운동신경이 매우 뛰어나셨다.

야구는 언제 시작한 건가.

6살 때 동네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소속팀이 생긴 건 8살 때였다. 특별히 야구를 하고 싶었다기보다 우리 동네의 많은 아이들이 야구를 즐겨했다.

배트를 잡은 순간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스포츠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그 기분만 믿고 야구를 배웠다.

아버지와 이혼한 뒤 어머니가 당신을 혼자 키운 걸로 안다. 야구선수가 되기까지 어머니의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다.

어머니는 지금의 나를 만드신 분이다. 없는 살림에도 내가 배트를 놓지 않도록 모든 걸 지원해 주셨다. 어머니는 야구를 참 좋아하셨다. 주말이면 오클라호마 인근 방송국에서 텍사스 산하 트리플A 팀의 중계방송을 도우셨다.

당신은 어머니의 강인한 면을 많이 닮은 듯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일찍 헤어진 뒤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 물론 모든 걸 혼자 이겨내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야구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혹시 불량학생이었던 건 아닌가.

운동밖에 모르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모범생은 아니었지만(웃음).

아들 케이든이 야구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야구를 가르치고 있다. 집에 배팅 케이지를 설치했다. 요즘 훈련을 열심히 한다. 타격하는 걸 보면 나보다 더 잘할 것 같다.

나중에 메이저리그에서 내 아들을 보게 될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 둘째인 칼슨도 운동을 시킬 생각이다. 덩치가 커 미식축구선수로 키울 계획이다.

아이들에게 운동을 시키는 이유가 있나.

둘 다 운동 재능이 뛰어나다. 나는 야구선수다. 운동 재능을 보는 눈이 있다. 케이든을 보면 어렸을 때 나를 보는 느낌이다.

처음 배트를 잡았을 때 ‘이거야’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케이든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지난해 SK 마이크 로마노는 아들 조셉에게 배트 보이를 시키기도 했다. 당신은 그럴 생각이 있나. 없다.

아직 어리고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할 거다. 박노준 단장이 설마 배트보이에게 돈을 주겠는가.

가족은 언제 한국에 오나.

4월 중순께 올 것 같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녀야 하는데 걱정된다. 전에는 강남역 근처에 집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목동이다. 목동의 교육환경이 좋은지 모르겠다.

개인 과외를 시키는 건 어떨까. 돈을 많이 모으지 않았나.

생각 좀 해봐야겠다. 수입의 대부분을 여기저기 투자하는데 지난해 손해를 봤다. 서브 프라임 때문에. 미국의 집값도 떨어졌다. 크게 걱정하지는 않지만 경기가 빨리 회복됐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즌

2008년, 우리 히어로즈 4번 타자 클리프 브룸바. 사진 김수홍

늦어진 계약으로 뒤늦게 구단에 합류했다. 걱정되지 않나.

아주 많이 늦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지난해에도 발목 부상으로 시범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좋은 성적을 거뒀다. 지난해 노하우를 살려 하루빨리 제 컨디션을 찾겠다.

(잠시 말을 멈추다) 만일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와 구단에서 뭐라고 한다면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것이다. 지난해에는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한 내 잘못이 있었지만 올해는 아니라고.

물론 그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야구를 한 지 1, 2년 된 것도 아닌데. 나 혼자 몸 만드는 법쯤은 알고 있다.

제이슨 스코비와 함께 뛰게 됐는데.

그를 잘 모른다. 지난해 KIA 원정경기를 갔을 때 밥을 먹은 적이 있어 서먹하지는 않다. 앞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친하게 지내겠다.

현대에서 함께 뛴 외국인선수 가운데 누구와 가장 친했나.

마이크 피어리다. 그 친구와는 말이 잘 통했다. 호흡이 잘 맞아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피어리를 만나면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겠다.

한국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내는데.

126경기를 함께 뛰어야 하기 때문에 내 성격대로 행동하지 않는 편이다. 모두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도 나를 편하게 대하고. 일본선수들보다 한국선수들이 친화력이 강하다. 팀 내에서는 이숭용, 송지만과 자주 이야기한다.

나이대가 비슷하다 보니 말이 잘 통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팀 안에 싫어하는 선수가 몇 명씩 꼭 있었다. 그런데 우리 팀에는 그런 선수가 한 명도 없다.

심정수와 가장 친한 걸로 안다.

팀은 다르지만 이전에 함께 뛰면서 친해졌다. 지난해 부상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냈다. 그와 홈런 경쟁을 해 매우 기뻤다.

심정수는 한국에서 홈런을 가장 많이 칠 수 있는 타자다. 달걀을 많이 먹기 때문인 것 같다(웃음). 그를 ‘에그맨’이라고 부른다. 나한테도 달걀을 많이 까서 건네줬다.

지난해 심정수와 함께 뛰는 양준혁 때문에 당신의 활약이 가려진다는 생각을 한 팬들이 있다.

그런가. 괜찮다. 양준혁은 대단한 선수가 아닌가. 그는 오랜 시간 꾸준하게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나와 비슷한 성적을 내도 나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올 시즌 당신에게 희소식이 있다.

무엇인가.

당신이 가장 싫어하던 임창용이 올해부터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뛴다.

진짜인가. 와, 정말 행복하다. 고맙다. 고맙다(웃음).

타격 폼이 체중 이동부터 폴로스루까지 깨끗하다. 임창용에게 약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신기한 자세에서 신기한 공이 나온다. 타격자세 때문에 임창용의 공이 어려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타격자세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연습했다.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다. 스스로 연구하고 완성했다. 웨이트 트레이닝 방법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부터 홈런을 많이 치는 타자가 되려고 장타가 나오는 타격에 대해 많이 공부했다.

도움을 준 스승이 없다는 말인가.

특별히 도움을 받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 아니겠나.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많은 걸 배웠다. 메이저리그 코치들은 언제나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한국이나 일본은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부진할 때만 이야기를 한다. 좋을 때는 아무 말이 없어 아쉽다.

2008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다. 특별한 목표가 있나.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부상 없이 한 해를 멋지게 보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좋은 성적에 대한 보상을 꼭 받고 싶다.

나는 한국프로야구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도 연봉이 줄어든 최초의 외국인선수다. 이런 사례가 올해로 끝이길 소망한다.

야구선수로서 남은 목표는 무엇인가.

좋은 성적을 올려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아이들이 풍족하게 살 수 있다. 지금 그라운드에 나서는 건 아버지로서 구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당신을 응원한 현대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사실 나와 현대에 애정을 보내 주신 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서운하기도 했지만 나를 사랑한 소수의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뜨거운 감사를 보낸다.

이제 팀은 바뀌었다. 하지만 계속 지켜봐 달라. 야구장에서 좋은 활약으로 꼭 보답하겠다.

SPORTS2.0 제 96호(발행일 3월 24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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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길군요..


브룸바 박노준 전 단장 참 싫어했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