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할 땐 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 작성일
- 13-11-28 12:39
감독을 경질할 거였다면 포스트 시즌 끝나고 바로 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너무 끌었다. 경질 타이밍을 보면 아무리 봐도 성적에 대한 책임을 묻는게 아니라 그 이후 선수단 구성에서 감독과 의견이 안맞으며 넘어서면 안되는 선을 넘어버린 느낌이 강하다.
기본적으로 시즌 종료 후 프런트와 감독이 내년 전력 구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의견 합의를 본 다음, 그에 맞춰 스토브 리그에서 움직이는게 상식적이고, 그게 아니면 감독 경질을 먼저 하고 나서 새 감독과 내년 시즌에 대한 의견 조율을 하는게 맞다. 그런데 두산은 내보낼 선수 다 내보내고 나서 감독을 경질한 후, 후임을 바로 2군에서 끌어 올렸다. 그렇다고 새 감독이 프런트가 말하는 '승부사 기질이 있는 감독'으로는 보이지 않는게 감독 경력이 - 일본쪽 경력을 포함해도 - 전혀 없다... 아무리 봐도 프런트가 '감독은 그냥 인형이고, 우리가 현장까지 지휘한다'라고 대놓고 얘기하는 형국이다. 삼성이 그렇게 하고도 우승했는데 우리는 못할쏘냐... 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착각이라고 얘기하고 싶은게, 삼성이 후임으로 선임한 류중일 감독은 삼성 내부에서 오래 전부터 차기 감독감으로 키워오던 사람이었고, 삼성 내부의 누구나 '이 사람은 언젠가 감독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과연 두산이 선임한 송일수 감독이 그런 사람인가? 송일수 감독이 두산에 들어온 것은 불과 1년 전이다.
선수단 분위기는 분위기대로 망가졌고,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텝은 야구 이전에 프런트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 내년에 과연 팀이 제대로 돌아갈까? 이런 식으로 일처리를 했는데 감독이 선수단을 장악할 수 있을까? 지금 두산의 움직임은 2002년 김성근 감독을 '이건 LG 야구가 아니야'라고 내치며 시작된 LG의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을 연상케 한다. LG의 잃어버린 10년은 김성근의 저주도, LG 팜의 붕괴에도 원인이 있는게 아니었다. 선수들이 '언제라도 잘릴 수 있는' 감독을 무시하기 시작하고, 코칭 스텝이 야구 보다는 '윗 선'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시작되었다.
지금 두산 프런트의 수장인 김승영 사장과 김태룡 단장이 KBO 프런트 중에 그 누구보다도 야구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의아스럽다. 내 판단으로는 사장이나 단장 레벨에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윗 선에서 움직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만약 그렇다면 두산의 윗 선에 상당히 실망이다.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댓가를 치루는 법이다.
그렇지 않고 만일 이 일이 순수하게 두산 프런트가 주도해서 움직인 것이라면, 충고 하나 해주고 싶다. '화수분'은 두 사람 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현장의 힘 없이도 우리가 끌어갈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착각에서 빨리 깨어나는게 좋다. 선수는 야구하는 기계가 아니고, KBO는 프로야구 매니저가 아니다. 두산이 이룩해낸 구단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나름 찬사를 보내지만, 그것을 맹신한 채 고집을 부린다면 향후 두산의 가을은 10년 간 쓸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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