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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장원삼 사태’가 벌어졌을 때, 김시진 넥센 감독은 피해자로 비춰졌다. 어려운 구단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비운의 스승이자 아버지. 그게 각종 보도와 팬들 눈에 비친 김 감독의 초상이었다. 

이 후 몇 건의 말 같지도 않은 트레이드가 계속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택근이 떠나고, 이현승이 가고, 마일영과 황재균이 연달아 유니폼을 바꿔 입을 때마다 사람들은 히어로즈의 운명과 김 감독의 아픔을 걱정했다. 구단의 어이없는 운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된 운 나쁜 지도자. 선수들과 팬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비빌 언덕. 김시진 감독의 이미지는 그랬다. 

하 지만 지난해 12월 롯데에 고원준을 주고 이정훈과 박정준을 받는 트레이드가 성사된 뒤에는 조금 달랐다. 당시 김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무리 공백을 메울 경험 있는 선수의 영입을 구단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마무리 공백? 손승락이 있는데 무슨 마무리 공백? 답은 그 발언 조금 앞에 나와 있었다. “내년 시즌 구상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1, 2선발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발진 강화를 위해 마무리 손승락을 선발로 전향시킬 것이다."  

김 시진 감독의 발언에는 심각한 모순이 있었다. 선발진 강화가 필요하다는 팀이 선발투수로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준 고원준을 다른 팀에 내준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세이브왕을 차지한 투수를 선발로 돌리겠다는 구상은, 짝귀가 보는 눈앞에서 밑장빼기를 하겠다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었다. 또 손승락이 빠진 마무리 자리를 ‘이정훈’으로 메우겠다는 발상은 ‘내 건강을 위하여’ 라면을 먹는 CF보다도 황당했다. 때문에 많은 관계자들은 “김 감독의 발언이 진심은 아닐 것”이라며, “논란의 트레이드로 인해 구단이 비난받는 상황이라 한 발언일 것”으로 여겼다. 손승락 선발 전향 구상은 몇 달 뒤 없던 일이 됐다. 고원준은 롯데 마운드에서 중용되고 있다. 이정훈과 박정준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넥센은 플로리다로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김시진 감독은 시즌 초 3년 임기의 재계약을 보장받았다. 

지 난 트레이드 마감일 직전, 문제의 트레이드가 또 터졌다. 이번에는 LG에서 심수창과 박병호를 받고, 송신영과 김성현을 내주는 트레이드였다. 송신영은 지난 겨울 김 감독이 말했던 “마무리 공백”을 메워준 “경험 있는 선수”다. 김성현은 넥센 선발진의 한 축이자 미래 에이스감이다. 둘 다 넥센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선수들이다. 반면 심수창은 17연패 중인 투수고, 박병호는 군에 다녀온 뒤에도 끝내 터지지 않은 ‘불발탄 거포’다. 언제나 그랬듯이 “현금 거래는 없었다.” 물론 이 말을 믿느니 지난 2주간 전국에 비가 한 방울도 안 내렸다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깝겠지만. 그리고 정말로 현금 거래가 단 한 푼도 없었다면, 이 트레이드를 주도한 담당자의 판단 능력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봐야 한다. 야구 시뮬레이션 게임에 막 입문한 초등학생도 다른 유저에게서 이런 제의가 들어오면 코웃음을 치며 거절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런 트레이드를 현금이나 추후 지명권 같은 대가 없이 저지르는 책임자는 100% 문책을 당한다. 박병호나 심수창 정도 잠재력을 갖춘 선수는, 넥센에도 많이 있다. 

과 연 이 트레이드에 대한 김시진 감독의 반응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김 감독은 트레이드가 “내가 원해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구단과 충분히 상의해서 한 트레이드”라며 “지금 멤버로는 힘들다. 앞으로의 팀 성적을 위해 필요한 트레이드였다”고 말했다. 박병호는 주전 5번타자로 꾸준하게 기용할 것이고, 심수창도 선발로 기용하겠다는 게 김 감독이 밝힌 계획이다. 지금까지 숱한 비정상 트레이드에 한번도 ‘No'라고 말한 적이 없던 김시진 감독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Yes'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다.  

고 원준 트레이드 때처럼 김 감독의 이번 발언 역시 모순투성이다. 그는 “지금 멤버로는 힘들다”며“우리 팀 방망이를 갖고는 남은 임기가 어렵다”고도 했다. 왜 힘들까. 지난 몇 년 동안 넥센을 떠난 선수와 들어온 선수들을 한데 적어놓고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온다. 매번 아이폰을 주고 시티폰을 받는 식의 트레이드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넥센을 떠난 선수는 장원삼, 이현승, 이택근, 마일영, 황재균, 고원준에 송신영, 김성현이다. 그 대신에 박성훈, 김상수, 금민철, 강병우, 박영복, 마정길, 김민성, 김수화, 박정준, 이정훈에 박병호, 심수창이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팀 전력에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마다 김 감독은 ‘......’로 일관했다.  

김 감독은 또 “우리 팀에 유망주들이 많지만 가능성만으로는 힘들다”고 말했다. 당연한 일이다. 넥센이 워낙 좋은 선수를 전부 내줬으니 그 빈자리를 신인급 선수들로 채우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인들이 성장하는데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무조건 1군에 올려놓고 기회를 준다고 해서 자라는 게 아니다. 2군에서 기본기를 닦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시간도 필요하고, 1군에서 백업이나 중간계투로 경험을 쌓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런데 넥센에는 유망주들이 성장하는 동안 시간을 벌어줄 선수가 없다. 그래서 유망주를 곧장 1군 실전에 투입해야 한다. 사람들이 ‘화수분’이라고 칭송하는 넥센의 유망주들이 생각보다 훨씬 성장이 더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넥센이 지금처럼 구단 운영을 하는 이상, 넥센의 리빌딩은 ‘영원히 계속되는’ 리빌딩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힘든’ 상황은 물론 비정상적인 트레이드를 반복한 넥센 수뇌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한번도 ‘No’라고 말하지 않은 김시진 감독도 이제는 자유롭지 못하다. 

SK 김성근 감독의 예는 좋은 비교가 된다. 1989년 태평양 사령탑 당시, 김 감독은 신예들을 중용하며 팀을 창단 첫 60승과 플레이오프 진출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해 겨울 구단은 노장 임호균의 방출을 추진했고, 이에 반발한 김 감독은 유명한 ‘임호균 5승 각서’로 구단과 맞섰다. 다음 시즌에 임호균이 5승을 따내지 못하면 감독직을 그만두겠다는 각서를 쓴 것이다. 임호균은 이듬해 좋은 투구를 보였지만 구단의 조직적인 방해로 등판 기회조차 갖지 못했고, 김성근 감독은 자진해서 옷을 벗었다. 그는 자리에 연연하느라 야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구단 수뇌부의 압력을 그냥 감내하지 않았다. ‘No’라고 해야 할 때는 거리낌 없이 ‘No'라고 말했다. 태평양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가는 팀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됐고, 김 감독은 그때마다 미련없이 자리를 내놨다. 하지만 그는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프로야구 감독을 하고 있다.  

김 시진 감독은 “남은 임기 3년”을 말했다. 앞으로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트레이드로 인해 넥센의 앞날은 더욱 어두워졌다. 남은 3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까지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송신영의 빈 자리는 누군가 2군 선수가 올라와서 메울 것이다. 김성현의 빈자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때가 되면 또 다시 누군가가 팔려나가고, 누군가가 들어올 것이며 김 감독은 “필요한 트레이드였다”고 말할지 모른다. 아마 넥센은 내년 시즌에도 계속해서, 결코 끝나지 않을 리빌딩을 거듭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야구팀이 넥센 말고도 있다. 3학년이 졸업하면 1학년이 입학하는 고교야구 팀이다.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도 피터 드러커를 읽는 세상에, 언제까지 '프로'라는 팀의 비상식적인 운영을 참고 견디기만 할 것인가. 김시진 감독은 이제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아닌 것에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