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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골프를 가리켜 ‘멘탈(Mental, 심리) 스포츠’라고 합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야구도 같습니다. 제아무리 타율 3할과 40홈런을 치는 기술과 힘이 있어도 정신력이 부족하면 그저 그런 타자로 머물게 마련입니다. 현역시절을 돌아보면 참 사소한 일 때문에 슬럼프에 빠지는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대체로 기혼 선수들은 가정불화, 미혼 선수들은 이성문제로 골머리를 앓더군요.

그러나 당시만 해도 선수들은 정신력과 경기력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잘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술을 마시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면 그만’이란 생각들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프로야구에선 정신적인 문제가 곧 경기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굳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상담 전문가를 멘탈 코치(Mental Skills Coach)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심리분야의 전문가지만, 야구를 따로 공부해 야구 지식이나 경기 이해도가 수준급입니다.

멘탈 코치는 구단에 상주하진 않습니다만, 언제든 선수들을 만나 그들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고민에 귀를 기울이며, 어떤 플레이가 문제인지 정확히 진단하고서 적절한 조언과 대처법을 들려줍니다.

그래서일까요. 선수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포지션 코치를 찾듯 스스럼없이 멘탈 코치를 찾습니다. 대면 상담이 어려울 땐 전화로 상담을 하더군요. 여기서 중요한 건 비밀유지입니다. 멘탈 코치와 선수가 나눈 대화는 절대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습니다. 꼭 필요할 때, 선수들이 동의할 때 다른 누구도 아닌 감독에게만 보고됩니다. 따라서 선수들은 비밀이 새나갈 걱정을 뒤로 하고, 더 적극적으로 상담에 임합니다.

한국 프로야구에도 멘탈 코치 역할을 하는 심리 상담전문가가 있습니다. 제가 현대에서 뛸 때 중앙대 한덕현 박사님이 선수들의 심리상담을 해주셨는데요. 미국의 멘탈 코치처럼 팀에 상주하진 않으시지만, 스프링캠프에 오시거나 시즌 중 한 번씩 선수들을 만나 정말 정성껏 상담을 해주셨습니다. 저 역시 한 박사님께 상담을 받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은 바 있는데요. 무척 도움이 됐습니다.

특히나 타자들은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서 꼭 슬럼프에 빠집니다. 홈런이나 도루가 그런데요. 가령 개인 통산 100홈런에 홈런 한 개만 남겨둔 타자들은 홈런이 나오지 않으면 몹시 쫓기는 기분을 느낍니다. 이것이 경기력 저하의 원인이 되지요.

그럴 때면 한 박사님은 “목표를 100홈런으로 정하지 말고, 103개로 잡아봐라. 그런 마음으로 준비하면 100홈런 고지를 무난히 밟을 수 있다”고 조언하셨습니다. 단순한 조언 같지만, 선수에겐 크나큰 힘이 됩니다. 야구나 인생이나 생각을 단순하게 할수록 도움이 될 때가 있는 법이고, 그 단순한 원리를 타인이 지적해줄 때 더 빨리 길을 찾곤 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