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퇴고도 안 거친 즉석 글이라 많이 허접합니다만, 쓸까 말까 꽤 고민한 것을 감안해서 애정을 갖고 봐주시길 바랍니다
**이대진 선수가 이 글을 볼리는 없겠지만(사실 보면 더 쪽팔리..;;) 이대진 선수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에이스 오브 에이스

KBO 역사상 유일한 10타자 연속 삼진의 주인공

그리고 끝없는 부상과 재활의 연속, 고행, 고통

...

보통의 경우 그정도 상황까지 내몰리면 돌아오기 힘듭니다.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과 현실과의 지독한 괴리감, 뼈를 깎는 고통, 깊은 터널에 갇혀 빛이 보이지 않는 나날들.
하지만 이대진은 돌아왔습니다. 왕년의 에이스 오브 에이스는 아닐지라도, 너무나 눈부시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캄캄해보였던 100승에도 다다르기 직전입니다.

타이거즈 팬도 아니고, 아직 100승을 달성하지도 못했으며, 그의 감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없는 제가 이대진을 찬양하는 글을 써야겠다 생각한 것은 너무나 눈이 부셔서 였습니다. 지금의 이대진은 36살의 노장 투수이자 140km를 던지기도 힘든, 그래서 직구 위주 피칭을 사실상 금지당한 '퇴출될만한 기대치'의 선수이지만 그의 투구를 보면서 꽤나 진한 감동을 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거든요.

부활을 언급할만한 작년시즌부터 현재까지, 24경기 등판, 21경기 선발에 방어율 4점대 후반의 그리 좋은 투구를 한 것은 아니었건데 왜 그의 투구에 감동하고, 전율하며, 찬양하게 만들었는가 하면 그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제약을 갖고 있음에도 그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을 완벽하고 아름답게 펼치고 있다!"



이대진의 직구는 150은 커녕 140을 던지는 것도 때로는 버거워하기도 합니다. 자연스레 변화구 구사 비율이 늘어날 수 밖에 없지만 타자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줍잖은 어린 투수들에 비해서 훨씬 능숙하게 막아내고 한계 투구수 안에서 이닝을 무난히 마무리짓곤 합니다. 그것은 순전히 이대진 본인과 현실과의 타협이며, 야구의 기본에 굉장히 충실한 그의 의지가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타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까다롭게 여기는 코스는 몸쪽 높은 직구와 바깥쪽 낮은 직구입니다. 그 코스를 노리려면 '정상적'인 스윙의 궤적으론 불가능하기 때문에 스윙을 '만들어내야'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바깥쪽 위주의 승부는 타자의 모든 포커스를 그쪽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공, 심지어 볼을 던져도 안타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승부는 적절한 배합이 중요한 것이고 이는 너무나 많은 변수로 인해 정해진 정답이란게 존재하지 않죠.

그래서 경기를 하나하나 보면서 일구 일구 고민하고 혼을 실어서 던지는 이대진의 투구는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끼게 됩니다. 포수 뒤에서 경기를 보거나 티비 화면으로 볼 때 어느 정도는 투수와 타자의 노림수를 예상하게 됩니다. 얼핏 느껴지는 타자의 노림수를 역으로 찔러 손도 못쓰게 만들거나 약올리듯이 살짝살짝 비켜가는 공으로 범타를 만들어내는 이대진의 수싸움은 정말 하나의 예술의 경지와도 같아 보였습니다. 실투가 들어가면 어김없이 장타를 허용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상태와 공을 보고 있노라면, 비록 실점을 하더라도 그의 투구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어쩜 저렇게 공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혼을 실어서 던지는지...

낮게 제구되는 공, 존을 살짝살짝 스쳐 지나가는 변화구, 높고 낮게, 안과 밖을 조화롭게 넘나드는 것은 투구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뚜렷이 정해진 정답은 없을지라도 '이 상황에서 던져야할 정석'은 어떤 것인지는 선수 뿐만 아니라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정석대로 던지는 것은 너무나 힘듭니다. 혹시 실투가 나오면 어쩌나, 제구가 안되서 빠져버리면 공 하나만 버리는건데, 내가 이 공을 던져서 막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이런 저런 심리적인 불안이 가장 큰 원인이겠죠.

하지만 이대진은, 구위가 부족하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던지고 있습니다. 실투가 나오더라도, 실점을 하더라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공이 마음껏 던져지지 않더라도 마운드에 서 있는 순간 그 자체를 집중하고 즐기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분명 그의 구위가 엄청나게 무너져있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물론 이대진이 폭발적인 구위로 에이스 오브 에이스 칭호를 받아가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미 10년의 세월도 더 지났습니다. 너무나 긴 암흑의 세월 속에서 모든 의욕과 자신감을 상실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견뎌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전과 같은 강한 승부욕과 자신감은 아닐지라도 모든 공에 최선을 다하는 인간 승리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찌 눈부시지 않겠습니까?

지금의 이대진에게 최상의 공이 무엇인지, 승부구가 무엇인지, 구속이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4점대 후반~5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그렇게 이닝을 많이 먹어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대진은 팀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라고 봅니다. 공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고 집중하는 이대진의 투구는 그 자체가 팀을 이기게 만들어주는 위닝샷이니까요.

이대진의 프로 통산 100승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