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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어떻게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되었는가?

8888577. 아마 한국프로야구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숫자일 것이다. 아니 굳이 야구팬
이 아니라 하더라도 오며가며 한두어 번 쯤은 들어본 숫자일게다. 마치 어디의 전화
번호 같기도 하고, 혹은 도어락의 비밀번호 같기도 한 저 숫자는 롯데 자이언츠의 팬
에겐 오랜 실망과 좌절, 아픔 그리고 엷은 희망이 베어있는 숫자다. 가수 윤하의 비밀
번호486이란 노래에 빗대어 롯데의 비밀번호라 희화화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면 열혈
롯데팬에게서도 자조 섞인 웃음이 되어 베어나오고 만다.

롯데가 8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08년 한국프로야구 정규 시즌 3위의 성적
으로 8개팀 가운데 4위까지 주어지는 가을야구의 티켓을 확보한 것이다. 부산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아니 롯데팬들은 난리가 났다. 어쩔 수 없는 롯데팬인 나 역시
추석 연휴에 부산으로 귀향했을 때 역시 열혈 롯데팬인 아버지와 나눈 첫 이야기가
요즘 야구 보는 맛으로 산다는 것이었다. 고작 8개팀 가운데 4등 안에 들었다고 이렇
게 생 난리냐는, 썩 그달리 롯데팬이 아닌 동생의 핀잔처럼, 따져보면 이리 열을 내며
좋아할만한 일일까 싶기도 하다. 다른 어떤 팀들은 몇년을 연속 4강에 들고,  왠만한
팀이면 못해도 3,4년에 한 번 쯤은 가을야구에 나가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다. 누군가 그 깟 공놀이에 열을 내냐고 핀잔을 주던
말던, 또 누구가 겨우 8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 가지고 거들먹 거린다고 초를 치
던 말던, 롯데 자이언츠의 8년만의 가을야구가 가슴 속에 좋아 미칠 것 같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깟 공놀이, 겨우 8년만의 4강. 그래 사실 롯데가 야구를 잘해봐야 내게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8년만의 4강 진출이 썩 대단한 성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기는 것 하나 없음에도 아침 출근 길 신문 가판대의 제목을 훑으며 롯데 경기 소식을
찾고, 얼큰한 회식자리 한 귀퉁이에서 핸드폰으로 그 날의 롯데 경기 결과를 조회하는 것
처럼 그 건 논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그냥 그렇게 되어있는 무엇인 것이다.

나는 왜 롯데팬이 되었는가? 그리고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비생산적일 수도 있고, 유치해
보일 수도 있는 어떤 들뜬 상태에 있게 하는가? 이유를 찾아야겠다면 결국은 그 것의 시작
으로 돌아가 살펴볼 수 밖에 없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했다.  MBC청룡(현 LG), OB 베어스(현 두산), 삼미 슈퍼스타즈
(현 히어로즈), 삼성 라이온스,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 롯데 자이언츠. 모두 6개 팀이 각각
서울, 대전, 인천, 대구, 광주, 부산을 연고로 한국에 프로야구란 것을 시작했다. 당시 초등
학교 6학년이었던 내게 프로야구 원년 당시의 기억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시골 초등
학교를 다니던 내게 야구란 생소한 운동이었고 프로야구란 더더욱이나 낯선 것이었을 것이
다. 기억에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개막전에서의 이종두 선수의 첫 홈런과 원년 한국시리즈를
결정지은 OB 베어스 김유동 선수의 만루홈런이다. 삼성과 OB의 한국시리즈를 TV로 아버지
옆에서 보면서 난 OB를 응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롯데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프로야구 원년 당시까지만 해도 난 지역 연고팀인 롯데의 팬이 아니었거나 또는 적어도 
열혈 팬은 아니었나보다.  

어쨌든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이후부터 동네 친구들이나 학교 친구들과 야구를 한
기억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내가 프로야구에 영향을 받아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기억은 한 뭉텅이가 통체로 비어버린다. 프로야구에 대한 기억이나 롯데에 대한 
어떤 장면들이 머리에 남아있지 않다.

다만 경기와 다른 몇가지 기억이 남아 내가 그 때 당시 이미 롯데 자이어츠의 팬이 되어 있었
음을 증명해준다. 부산 외각에서도 좀 더 떨어진 시골 마을이었던 우리 마을에선 부산 사직
구장까지 차로 1시간 30분여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다. 마을 어른들에겐 이미 프로야구와 롯데
자이언츠가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주말이면 마을의 젊은 축에 드는 어른들이 9인승 봉고
차를 대절해 사직구장으로 야구 구경을 가곤했다. 거기엔 가끔 우리 삼촌이 끼어있곤 했다. 내
기억의 한자락을 차지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사직행 봉고차의 출발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다. 삼촌이 혹시 나도 그 봉고차에 태워 사직구장에 데려가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주말마다
찾아왔지만 삼촌은 한 번도 나를 그 봉고차에 태워준 적이 없었다. 하긴 9인승 봉고차에 이미
어른들만으로 열댓명이 차버린 자리에 열네댓살 아이가 끼어들어갈 자리가 있을리 만무하긴
했지만 말이다. 주말마다 사직구장으로 가는 봉고차 이야기에 들떠서 설레여하고,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떠나는 봉고차를 바라보던 기억이 롯데 자이언츠 팬으로서의 나의 첫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당시 롯데의 성적과 경기 모습은 마치 지워진 듯이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지금 시점에서 되돌이켜봤을 때 롯데팬으로서의 내 첫 감정이 바로 안타까움이었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 참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정말 이후 롯데팬으로 산다는 건 안타까움을 늘 짊어
지고 사는 것이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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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프로야구에 대한 기억의 편린이 이어지는 시점은 롯데의 첫 우승이 이뤄졌던 1984년이다. 
기억의 시작 점은 롯데를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삼기위한 삼성의 져주기 의혹에 대한 TV 스포츠
뉴스의 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