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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을 준비하던 KIA 김기태 감독은 20일 오후 훈련을 마친 뒤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 서재응이 구단 관계자와 미팅을 했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였다. 김 감독은 스포츠서울과 전화통화에서 “전화기에 불이나기 시작해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베테랑들의 은퇴기사가 나왔다. 구단이 등 떠밀어 내보낸 것처럼 됐다. 이건 아니다”며 허망해 했다.

같은 시각, 오전에 서재응을 만난 오현표 운영실장과 노대권 운영팀장 역시 강도 높은 항의에 시달렸다. 서재응에게서 “1년 더 뛰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받은 뒤 그 자리에서 “알았다”는 답을 하고 구장으로 돌아온 터였다. 오 실장은 “서재응과 두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구단의 상황과 내년 계획 등을 얘기하면서 건설적인 대화가 오갔다. 거취에 대한 얘기는 5분도 채 나누지 않은 것 같다. 최희섭이나 서재응 같은 선수는 구단이 은퇴얘기를 입밖에 꺼내기 매우 조심스럽다. 선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주는 게 맞다. 그 자리에서 서재응이 ‘1년만 더 하고 싶습니다’고 하길래 ‘알았다’고 얘기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뭔가”라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서재응이 “앞에서는 알았다고 해놓고, 뒤에서 언론과 짜고 나를 몰아내려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최희섭의 은퇴소식도 구단과 감독, 선수 본인이 원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김 감독은 지난 7일 스포츠서울과 전화통화에서 “마음속으로는 (최)희섭이가 내년에도 팀 전력에 큰 도움이 안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코치들의 생각도 들어야 하고, 구단 입장도 들어야 한다. 매우 예민한 문제라, 심사숙고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날(20일) 오전 최희섭이 직접 찾아와 “몸이 안될 것 같아 염치불구하고 은퇴해야겠습니다”고 말했을 때에도 “최대한 예우를 갖춰, 박수 받으며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하자”고 격려했던 터다. 올시즌 후 2차 드래프트 등 대규모 선수이동이 예정된 터라 구단도 전략 수립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터였다. 김 감독은 “이번 주말까지 충분히 고민한 뒤 은퇴발표 시기 등을 고려할 생각이었다. 이런 식으로 외부에 알려진 게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포스트시즌이 진행 중이고, 이날 오후 삼성이 도박파문과 관련한 중대발표를 할 예정이라, 리그 전체가 예민한 시기다. 최희섭의 은퇴소식이 집중된 이슈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낼 수도 있는 민감한 시기이기도 했다.

구단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주역인데다 국내 최초 메이저리그 타자라는 상징성, 최희섭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고려하면 은퇴발표 시기와 이 후 예우 문제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최희섭과 은퇴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했을 뿐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머리를 맞대 보자”며 보류한 상태였다. 최희섭도 “구단도 회사라는 조직이기 때문에 절차와 규정이라는 게 있을 것이다. 의견을 주고 받았고, 오늘(20일) 감독님 이하 코칭스태프와 인사를 나눴기 때문에 주말까지는 행정적인 절차(구단주 보고 등)와 향후 거취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나도 나대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내년부터 어떤 인생을 살지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온하던 오후가 불난 호떡집이 된 KIA다.

이번에도 기사가 아니라 소설을 쓴 조선찌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