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1. 야구팬의 성향은 응원하는 야구단의 성향을 많이 따라간다.

제가 좋아하는 야구는 김인식 감독 + 김경문 감독 야구 입니다.

그러다 보니 호쾌한 야구, 선수를 믿는 야구를 좋아하지요.

하늘에 계신 으니누나가 한 번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야구팬의 성향은 자기가 응원하는 야구단의 성향을 많이 따른다"구요.

저도 맨날 질때, 팬질 하기 시작해서 인지... 지는 것 그리 대수롭지 않고, 이기는 것 외에 재미를 많이 찾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김인식 김경문 감독 거치면서 선수들 쑥쑥 크고 어메이징한 일들이 벌어지는 감동적인 야구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은 것 같습니다.

FA 데려왔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좋겠다는 생각, 용병 없어도 대충 되겠지라는 생각...

제가 주체적으로 야구관을 만들었다기 보다는 두산 야구단의 성향을 많이 따른 것 같아요.



2. 야구단의 소유는 구단이다.

야구단의 소유주는 구단입니다. 레너드 코페트도 이런 말 했지요. 결정적인 순간에 구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야구단의 생리라구요.

저도 이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두산 야구팬들은 이런 것에 많이 익숙하지요. 그래서 구단이 욕을 먹건 말건 그리 크게 신경 안써요.

물론 즉각적으로는 쫌 반응하긴 하지만, 시간이 약간 흐르면 내가 잘못했냐. 구단이 잘못했지. 라고 생각을 하고

그냥 잊습니다. 그리고 그라운드의 선수들만 보는 것이지요.

저도 90년대까지는 정말 일희일비하고 엘지팬이 "오비 꼴지"라고 말하면 정말 가서 싸우고 싶었던 적 많았는데,

두산 구단과 제가 별개라고 느낀 건 선수협 파동으로 심정수를 트레이드 시켰을 때 였던 것 같네요.

두산이라는 구단, 내 거 아니다. 지들 멋대로 하고, 이 사실 변함 없을 거다 라는 걸 깨달았어요.

물론 왜 아직 두산이 좋으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야구가 좋아서요"라고 답하는 수 밖에 없네요.


3. 이기는 것 야구만이 재밌는 야구는 아니다.

앞서 1번에서 얘기한 것과 비슷한 얘기일 수 있겠습니다.

요즘 두산 잘나가니 배부른 소리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기는 것만이 야구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오늘 한 경기 지긴 했지만, 전 재밌었습니다.

흥겨운 응원들, 어여쁘신 두산 누나 팬들, 핑크 유니폼 입은 귀여운 두산 선수들, 야구장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좋은 사람들

시원한 바람과, 목젖을 적시는 야구장의 맥주 등 기본적으로 야구장에 가면 느낄 수 있는 재미들이 가장 먼저 일 겁니다.

그리고 김현수의 홈런, 고영민의 재치있는 병살 플레이, 최준석의 빨랫줄 같은 타구, 정수빈의 선구안, 이종욱의 놀라운 수비, 김동주의 뚝심, 손시헌의 믿음직스러움,  금민철의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호투, 진야곱이 겪었던 신인의 곤혹 스러움, 성영훈의 성장통 등 그라운드 안에서 일어나는 플레이 하나하나가 저에게 재미를 줍니다.

물론 김명제의 한심한 투구, 민병헌의 어이없는 스윙, 김진수의 허약한 어깨 등이 제게 실망감을 안겨주긴 했지만, 그래도 이것 또한 저의 즐거움에 비하면 작은 요소이며, 사실 이러한 실망감이 없으면 재미도 없을 겁니다.

만약 두산이 허약하고 매일 지는 무기력한 팀이라도, 히어로즈의 김일경 선수와 같이 2루로 열심히 달려가는 선수가 있다면 저는 욕을 입에 달고 살겠지만, 두산을 계속 응원할 겁니다. 야구장엔 선수의 플레이가 있으니까요.

야구의 재미는 또 있습니다. 감독의 선수 운용과 시즌 구상입니다. 김경문 감독은 지금 머리 속이 바삐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구멍난 선발은 어떻게? 나태해지는 선수는 어떻게? 용병 처리는 어떻게? 등등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 속을 떠다니고 있겠지요?

오늘 그 생각들의 단초가 살살 보이며, 팀이라는 것이 어떻게 운용되어 승리를 위해 싸우는지를 보는 묘미가 있습니다.

진야곱의 선발 등판, 사실상 선발이라기 보다는 첫번째 투수라고 봐야하죠. 4이닝 이상 던지기 어려우니, 어차피 오늘 경기는 지는 경기였습니다. 상대 선발이 김광현이었다는 걸 감안하면요. 그렇다면 두 가지가 결정된 겁니다. 진야곱의 선발 테스트와 김명제의 중간계투로서의 효용 테스트.

진야곱은 2이닝은 잘 막았지만 3이닝째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김명제의 중간 투입은 대단히 실망스러웠지요. 경기를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한 김경문 감독은 피로한 이재우, 임태훈, 고창성 승리조 대신 금민철을 투입합니다. 2군에서 올라온지 얼마 안되 중요한 순간에서 시험하지 못했으니 오늘 경기에 넣으므로써 시험한 것이지요. 이 테스트를 거쳐 금민철의 보직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금민철은 위기 상황을 관리하진 못했지만, 이후 4이닝을 깔끔히 막았습니다. 이제 금민철의 다음 보직은 결정된 것입니다. 5선발 땜빵 혹은 패전 처리 롱릴리프. 작년과 유사한 역할을 다시 맡게 된 거죠.

이제 남은 일은 투구 폼 교정 중인 성영훈의 실전 훈련. 1이닝 2실점 무자책으로 아쉬운 성적이지만, 성적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지요.

달감독의 머릿 속을 저는 이렇게 따라가며 야구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상상은 틀릴 가능성이 많겠지요.

결국은 승리를 위해 싸우는 일에 참여하는 과정의 재미이므로 결국 우승으로 끝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야구는 지더라도 훌륭히 재밌는 스포츠라는 것 저로썬 부정하기 힘드네요.

그래서 전 승리를 추구하지만, 승리에  매몰되지 않는 야구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