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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은 흔히 ‘프로무대 적응에 실패한 초고교급 선수’의 대명사로 기억되곤 한다. 실제로 그는 고교야구사에 길이 남을 역대 최강팀 중의 하나인 ‘97년 신일고’의 4번 타자였고, 그 해 각종대회에서 공수 주요부문의 개인상을 휩쓸면서 팀에 3개의 전국대회 우승컵을 안겼었다. 그가 ‘이끌었던’ 후배 봉중근 뿐 아니라, 라이벌이자 대개는 조역이었던 최희섭, 이현곤, 박용택 같은 이들의 이름에 기대서도 안치용의 고교시절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는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잔인하기 하지만 ‘고교시절 명성에만 기대어 대학과 프로무대에서의 10년을 버틸 수 있었던 선수’라고 하는 쪽이 그를 설명하는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안치용의 전성기는 97년이 끝이었고 길고 긴 하락세는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는 시점에는 이미 고교시절의 ‘특급’ 이미지를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으며, 고교시절 보여준 잠재력의 값으로 그나마 억대의 계약금을 받고 들어선 프로무대에서도 남긴 것은 실망과 숱한 의문부호들뿐이었다. 그는 프로에서도 6년 동안 통틀어 100여 경기 남짓 출장해 단 한 개의 홈런도 없이 1할2푼에도 미치지 못하는 타율을 기록했고 나이 서른이 되도록 연봉은 달랑 3천만 원에 묶여 있었다.

타격이 떨어지더라도 수비가 견실하거나 작전수행능력이 좋으면 먹고는 사는 것이 프로선수다. 하지만 외야수로서 수비범위가 넓지 못한 그는 수비 면에서도 별다른 매력이 없었고, 그렇다고 작전수행 능력을 높이 평가하기도 어려웠다. 빠른 발을 가지고도 수비범위가 좁고 작전수행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좋게 평가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것은 재능의 한계라기보다는 자기계발의 실패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정하게 평가하자면, 그가 유별나게 게으르고 문란한 선수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꾸준히 도전하고 극복해가며 최고의 선수로까지 올라서는 몇몇의 ‘유망주 출신 대선수’들과, 그 수십 배는 될 ‘추락한 신동들’ 사이의 경계선상에 서있었을 뿐이다. 다만 마지막 미련을 버리지도 못하고 한 단계 훌쩍 뛰어 올라서지도 못한 채 2군밥을 씹으며 냉랭한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에 유난히 눈에 띄게 된 것일 뿐이다.

너무 이른 성공, 너무 늦은 자각

하지만 2008년, 그는 야구팬들을 묘한 감상에 빠지게 만들며 돌아왔다. 박용택이 손가락 부상으로 이탈한 뒤 심하게 삐걱거리기 시작한 팀이 10연패의 위기에 빠져있던 5월 11일, 난공불락이던 류현진에게서 역전홈런을 뺏어내며 기사회생의 1승을 만들어낸 묘한 인상의 선수 등에 적힌 ‘안치용’이라는 글자를 읽으며 많은 야구팬들은 그가 아직 그라운드에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홈런은 그가 7년 만에 기록한 프로무대 첫 홈런이기도 했다.

그리고 6월 27일에는, 또다시 팀이 9연패에 빠진 상황에서 프로통산 13호 사이클링히트를 작렬시키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20-1의 대승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그가 얻어낸 별명은 ‘난세의 영웅’. 그리고 연달아 당장은 2할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던 그가 3할을 오르내리며 부상으로 이탈한 옛 라이벌 박용택의 절대로 메워질 수 없을 것 같던 빈자리를 꾸역꾸역 메워냈던 것이다. 시즌의 대부분을 주전으로 뛰며 기록한 성적은 .295의 타율에 7홈런, 52타점. 그 해 결국 꼴찌로 시즌을 마감한 LG 트윈스에서 팬들을 위로한 것은 신일고 후배 봉중근과 더불어 안치용 뿐이었다.



또 하나의 고비, 더 험해진 도전

하지만 그는 누구나 ‘진정한 부활의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2009년에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튀며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말았다. 스프링캠프에 이어 4월까지도 절정을 달렸던 그의 타격감은 공교롭게도 박용택이 복귀하던 시점부터 급격한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고, 한 순간에 2007년까지의 안치용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시즌 타율 역시 2할3푼대로 ‘도루묵’.

게다가 주변 상황은 더욱 고약해졌다. 기존의 이대형에다가 박용택이 타격왕이 되어 돌아왔고 지난 시즌 FA로 합류한 ‘국민우익수’ 이진영이 가세한데다가 팀의 상징적 존재였던 이병규마저 일본에서 복귀했다. 어떤 기준으로든 안치용보다 앞에 놓일 외야수의 이름이 네 개나 된다. 그리고 젊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매력을 가진 ‘작은 이병규’를 비롯한 유망주들도 있다. ‘체질개선’을 슬로건으로 내걸 수밖에 없으면서도 ‘최소한의 성적’ 앞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신인감독이 들어섰다는 것도 그에게 유리할 것은 없다. 안치용은 ‘당장의 성적’이라는 면에서도, ‘내일의 가능성’이라는 면에서도 그다지 내세울 것이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결국 주전 외야수들의 줄부상 속에서 잡았던 기회는 그 주전들이 복귀한 데 이어 새로이 수혈되고 보강된 요원들에 의해 사라져버렸고, 그 사이에 완전한 주전급으로 자리를 굳히지 못한 안치용은 다시 08년 이전처럼 거친 경쟁을 이겨내야만 하는 처지에 처하게 되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안치용에게 주어진 도전과제는 ‘1군급 실력’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 최강의 외야수와 1루수들을 보유한 팀 LG 트윈스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 역시 국내 최고 수준의 외야수 혹은 1루수로 올라서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에 사실상 생애 처음으로 분석과 견제의 대상이 되며 ‘2년차 징크스’를 경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희망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맞히는 능력’과 스피드는 일단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확실하고, 성격이 다른 두 번의 ‘풀시즌’을 경험하며 스스로 점검할 여지를 가졌다는 점도 기대를 걸만 하다.

하지만 한 번 찾은 기회를 또다시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특별한 집념까지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 조금은 불안하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시즌 경기 중 종종 집중력을 잃는 플레이로 팀웍을 망가뜨리는 모습은 전형적인 ‘만년 2군’의 것이었다. 1승, 한 타석, 한 개의 공을 향한 집념이야말로 그에게 흘러 넘쳐야만 하는 미덕이다.

프로야구경기에서 한 점 앞선다고 해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것처럼, 한 해의 성과가 프로야구선수의 인생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결코 수월해보이지 않는 과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시즌 후 그는 트레이드 매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만약 작년보다도 오히려 뒤로 밀려나는 모습을 보인다면 방출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될 수도 있다. 여전히 그런 절벽 앞에 서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깊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는 언제든지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떨어져 사라져버릴 수 있다.

흘러간 시간을 아쉬워하는 모든 이들의 희망이 되기를

이른 시기에 이룬 과한 성공과 과한 찬사는 사람을 흔히 주춤거리게 하고, 그 주춤거리는 짧은 순간은 경쟁의 거친 급류 속에서 모든 것을 잃게 만들곤 한다. 대학 1,2년생 시절 시작된 한두 해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한 고비를 넘기지 못한 것은 안치용 자신의 책임이며 평생 반성해야 하는 지점이다. 그는 주춤거림이 너무 길었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너무 나른했고 너무 길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특별한 기대를 걸고 특별한 응원을 보내는 이유가 있다. 누구나 그처럼 흘려보내지 말았어야 할 시기를 흘려보내지만 또 다시 주어진 시간을 움켜잡기 위해 힘을 내야하고, 누구나 그처럼 눈물젖은 빵을 씹는 곤난과 수모를 당하지만 끝내 견뎌내며 삶의 엄숙함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가끔은 꼭 자신들처럼 눈물겨운 재기의 몸부림 끝에 ‘제 2의 전성기’를 열어 보이는 이의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안치용이 올 시즌, 또 하나의 고비를 넘어 부활의 신화를 완성한다면 그는 단순한 ‘대기만성’ 이상의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어금니를 악물고 가슴을 쥐어뜯게 만드는 순간, 방심한 마음의 틈으로 몰아닥친 세월의 급류 속에서 놓쳐버린 기회들을 돌아보고 후회하며 쓰린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안치용이라는 이름이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잠깐 잊고 있었네요. ㅠ_ㅠ

2008년에 우리를 5일에 한번이 아닌
매일 야구장으로 이끌었던 건 아저씨였단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