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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말 6:6 상황

모두가 투수가 바뀔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미 3이닝 동안 45개의 공을 던졌던 정재훈을 대신하여 탄탄한 두산의 불펜진 중 한명이 등판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어제 23개의 공을 던졌던 임태훈이 1이닝 정도 던질 수도 있었고, 오랜 기간 등판을 안했던 이용찬도 있었습니다. 어제 던진 1이닝 던진 고창성도 있었고 우완 루키 조승수를 시험할 수도 있었습니다. 왼손 불펜 지승민 또한 오늘 나오면 3연투였지만 등판 가능했습니다.

이에 반해 정재훈은 건초염으로 인해 2군에서 오랜 기간 쉬었습니다. 지난 주 1군에 복귀한 후 단 0.2이닝만을 던졌을 뿐이었습니다. 긴 이닝을 완벽히 소화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정재훈은 3이닝을 훌륭히 던져주었습니다. 오랜 휴식이 힘이 되었는지 그의 속구와 슬라이더는 완벽히 제구되었습니다. 3이닝 동안 단 1안타만 허용을 하며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상 막기는 힘들었습니다. 4이닝을 완벽히 막는 다는 것은 선발투수에게 주어질만한 임무이지, 불펜투수에게 주어질 만한 임무가 아닙니다. 더구나 9회말의 긴장감을 견뎌내기에는 적당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다시말해 정재훈의 등판은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기 보다는 패배의 가능성을 더 높이는 선택이었습니다.

김경문 감독은 패배를 선택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승리 대신 패배를 선택한 것이 아닌, 연장 대신 패배를 선택했습니다.  정재훈의 등판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정상적이지 않은 등판이었습니다. 만약 정재훈의 컨디션이 좋아 9회에 등판시켰다면, 박종호에게 안타를 내준 시점에서 불펜 투수가 몸을 풀었어야 합니다. 타자를 윽박지를 만한 투수가 두산에 남아있었습니다. 2사 1,3루의 위기에서 삼진 또는 내야 플라이로 타자를 잡을 만한 투수가 두산에 두 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연장 대신 패배를 선택했습니다. 이로써 기아가 극적인 승리를 하여 두산이 질 경우 선두와 2게임 차가 되는 것을 감수했습니다.

김경문 감독이 선택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임태훈과 이용찬을 아낀다. 9회말을 정재훈이 무너질 경우 임태훈과 이용찬의 등판 기회가 자체가 없어지고, 정재훈이 잘막아낼 경우 초 공격에서 득점이 날 경우에만 임태훈와 이용찬을 등판시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1승 대신 임태훈와 이용찬 두 젊은 불펜 투수의 소모를 최소화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이용찬의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 또한 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2. 주전들의 체력 소모를 줄인다. 두산의 백업들 모두 준수한 실력들을 갖춘 준주전급 선수들입니다. 그렇지만 주전들은, 특히 1~6번 타자들은 국대라인업이라해도 될만한 실력을 가진 선수들입니다. 이들의 체력 소모를 줄이며 시즌 막판을 대비하는 것입니다. 한시즌을 풀타임으로 출장하고 있는 손시헌, 김현수와 잔부상이 많은 김동주 등에게 휴식을 주는 것입니다. 연장 3이닝의 긴장감으로 인해 소모되는 체력은, 특히나 한 주간 격전으로 인해 지친 선수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3. 여기에 SK와 롯데의 패배로 인해 2위 수성에 여유가 생겼다. 한 경기 지더라도 SK와 롯데가 패했기 때문에 넉넉한 경기차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비록 기아와 두 경기 차가 되었지만 기아와 맞대결기 7경기나 남은 만큼 맞대결에서 벌충할 수 도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최근 선발진이 안정되고 있고, 타선과 수비진이 건재, 불펜진도 막강한 이 전력을 8월말까지 온존한다면 기아와의 맞대결에서 승산이 있을거라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김경문 감독은 9회말 정재훈을 등판시키는 패배를 감수하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