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2012년 상반기 영화 베스트
- 작성일
- 12-07-07 09:19
2012년 상반기 영화 베스트
올 개봉 영화들을 별로 챙겨보지 못했지만, 기억에 남는 좋은 작품들이 많았기에 상반기 결산을 해봅니다. 아래의 작품들은 연말 결산에서도 언급될 가능성이 있는 영화들이기에, 단평은 되도록 간략하게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주로 고전 영화들을 많이 봤기에 고전 영화들에 대한 짤막한 정리도 올립니다. 순서는 개봉일순입니다.
데이빗 핀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이제는 영화의 리듬을 분석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핀처의 뛰어난 세공술이 역시나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에 이어 평행하여 나아가던 두 이야기를 교차시키는 유연한 서사 구축은 핀처의 또 다른 장기가 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론 스웨덴판보다 감독의 스타일과 세기가 흥미롭게 농축되어있는 핀처의 미국판이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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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 <자전거 탄 소년>
저에겐 다르덴 형제의 최고작입니다. 음악의 삽입 같은 형식적인 변화도 주목할만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들의 넓어진 영화적 시선과 태도지요. 비극적으로 열어둔 채 끝나던 다르덴의 전작들과 달리 속죄하는 순간을 넘어 페닯을 밟는 소년 시릴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온갖 고난을 겪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면서도 꿋꿋이 현실을 향해 나아가는 소년은 저에게 굳센 삶에 대한 '염'을 전이시켜줬으니까요. 그리고 이를 무한한 연민으로 보듬는 사만다라는 캐릭터에서 연민을 가장 크게 다루는 다르덴 형제의 넓어진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올 상반기 단 한 작품을 꼽자면 저는 주저없이 이 영화를 선택하겠습니다..jpg)
스티븐 스필버그 <워 호스>
상반기 개봉작 중에 반드시 대형 스크린으로 관람해야 할 영화는 무엇일까요? 저는 <워 호스>를 선택하겠습니다. 사라져가는 필름 화폭의 진경을 그려내는 이 작품은 스필버그의 가장 느슨하면서 우직한 감동이 깃든 영화입니다. 엔딩의 익스트림 롱숏은 바라보는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감동을 만들어내는 기적같은 순간을 창출해내지요. 스필버그는 여전히 전진하고 있는 능란한 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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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타르 <토리노의 말>
벨라 타르의 은퇴작인 이 작품은 카오스적이면서 코스모스적인, 위대한 영화적 종결의 막을 장식합니다. 시공간을 단절시켜 인물을 따라가거나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 공간을 중점으로 구획하던 그의 스타일이 집약되어 압도적인 이미지가 구현된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우리가 응시하는 건 인간의 실존에 대한 타르의 비관적으로 닫혀져있는 시선입니다. 그의 영화 세계는 막을 내렸지만 저는 타르가 남긴 위대한 유산들 (특히 <사탄 탱고>)을 차츰 감상해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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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휴고>
조르주 멜리어스 혹은 영화사에 대한 스콜세지의 존경이 깃든 오마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판단되어서도 안되고,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휴고라는 캐릭터를 마치 자신인양 끈질기게 따라가고, 그 안에서 영화를 보는 소년의 순수한 호기심에 집중하는 인물을 다루는 스콜세지의 시선은 기묘한 감정을 불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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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 메츠 패더슨 <아르마딜로>
이렇게나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주관적임에도 전쟁에 대한 시각의 균형이 잘 잡혀있으며, 영화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 (왜 참전병들이 다시 전장으로 돌아오게 되는가?)에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는 전쟁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을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전쟁의 리얼리즘'이 아니라 '전장의 리얼리티'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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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 <멜랑콜리아>
못 말리는 우울증 괴짜의 정점은 여기에 있는 듯 싶습니다. 영화 자체가 창작자의 '무의식'의 세계처럼 그려졌기에 영화에 대한 자의적인 터치를 없애고 더없이 자유롭게 축조된 이 종말론적 세계관은 더욱 트리에의 진언이 진실적으로 담긴 풍부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모 평론가의 홍상수-트리에를 동시에 좋아하는 사람은 아크로바틱하게 느껴진다는 말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작품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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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다른나라에서>
제게 홍상수의 영화들은 형용사적인 리듬이 느껴집니다. <다른나라에서>는 굉장히 이상하면서도 귀엽지요. 외국어의 사용으로 가뜩이나 소통의 부재에 시달리던 홍상수의 인물들은 더욱 더 우스꽝스럽게 과장됩니다. 그런 상황과 대사들이 점층적으로 쌓이고 쌓여가면서 심지어 무성영화적 리듬감까지도 느껴지지요. 전작들과 또 상이한 작품을 들고 나온 홍상수 감독의 차기작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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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시엔프렌스 <블루 발렌타인>
80년대생 남녀 배우들 중에서 제가 가장 신뢰하고 좋아하는 라이언 고슬링과 미셸 윌리엄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현실과 환상처럼 보이는 현재와 과거의 상반된 부부의 모습을 교차시키면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균열을 차분히 증폭시키다 마지막에 두 이야기가 봉합되면서 마무리되는 이 영화에서 마주하게 된 건 이야기의 현실적 리얼함에서 오는 서늘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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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아놀드 <폭풍의 언덕>
너무나 잘 알려진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지만, 이를 구현하려는데 있어서 전혀 틀에 박힌 형식과 스타일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대사가 많고 연극적인 (대표적으로 윌리엄 와일러의 영화) 영화들과 다르게 오로지 인물의 심리적 궤적만을 따라가는 듯한 이 작품은 감각적인 시점 숏과 화면비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마음 속 파동을 그려냅니다.
고전영화
자크 타티 <윌로씨의 휴가><나의 아저씨><플레이타임>
타티가 위대한 건 그가 '웃긴 코미디언'이어서가 아니라 근대 문명 속 소외되는 인간을 그려내면서도 경쾌한 희망의 비전을 잃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적 태도와 세계를 지지합니다.
버스터 키튼 <우리의 환대><셜록 주니어><제너럴><카메라맨>
스턴트 코미디의 리듬을 탁월하게 직조해내는 키튼의 솜씨는 정말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거기에 <셜록 주니어>는 항상 온갖 꿈의 망상에서 해메는 저에게 마술 같은 환상의 위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루이스 부뉴엘 <세브린느>
성적인 위선과 통념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얼마나 병적으로 내재되어있는지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영화 역사상 가장 악랄한 천재 부뉴엘의 신기에 가까운 직관력이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이마무라 쇼헤이 <복수는 나의 것>
영화 속에서 이보다 더 악랄하고 예측불허한 악질 범죄자가 또 있을까요. 그런데 이런 범죄자와 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나 맨 손 주무르듯 매끈하게 연출할 수 있을까요. 완벽한 걸작이면서 괴작.
피터 위어 <행잉록에서의 소풍>
영화 자체가 환몽처럼 느껴지는, 제가 본 가장 아름답고 아찔하고 서늘하고 섬뜩한 미스터리 걸작. 피터 위어는 <트루먼 쇼><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니라 반드시 이 작품으로 기억되어야합니다.
장 비고 <라탈랑트>
사랑의 원형을 한 전형에 국한시키지 않은 넓은 사랑 영화입니다. 거기에 일부 보여지는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시로 발화시킨 실로 탁월한 탐미적 우화지요.
빔 벤더스 <베를린 천사의 시>
이 영화의 트래킹, 앙각 숏등은 마치 천사의 날개를 단 카메라의 환영(幻影)처럼 느껴집니다.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와 함께 저의 로드무비의 걸작선의 일순위 목록에 오를 것 같습니다.
나루세 미키오 <흐트러지다><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자각하면서도 나아가는 나루세 여인들의 강인함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