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어느날...
- 작성일
- 12-07-02 23:34
오늘 새벽 스페인이 이번 대회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여 주면서 처음으로 대회 2연패를 한 국가가 됐습니다.
사실 예선부터 그렇게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진 못했고 토너먼트에 올라와서도 인상적이기 보단
뭔가 빠진 느낌이 강한 경기력을 보여서 정작 결승에서는 과연? 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나 라는 결론으로 깔끔하게 이탈리아를 이기면서(교체카드의 부상의 불운이 크기도 했지만)
스페인은 스페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지만 이 스페인 이전에 2연패를 넘어 3연패를 할 수 있었던 국가가 생각나서 한번 끄적여 봅니다.
76년 유로본선(본선 참가국이 4개인 마지막 대회였다)에 참가한 독일은 자신 만만했다.
54년 베른의 기적(지금으로 보면 약물파동이 일어날 결승)이후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아쉬운 준우승(잉글랜드와는 이 결과로 아직도 팬들이 싸운다.)과 70년 월드컵 4강으로 세계의 강호로 떠올랐고,
이 기세로 72년 유로 대회에서 첫 앙리 들로네컵을 안음으로서
명실상부한 유럽과 전 세계를 아우르는 패자로 대회를 맞이한 독일은 우승을 자신했다.
월드컵 챔프와 전대회 디펜딩 챔프라는 영예를 안고 시작한 대회는 독일에겐 거침이 없어 보였다.
비록 예선에서 하마터먼 그리스에 밀려 참가 하지 못할뻔 한 것은 흠이었지만
(그래도 무패로 예선을 통과하고 8강에서 벨기에를 저멀리 보내서 체면치례는 했다.) 본선에 오른 4팀중에 가장 전력이 강했던건 독일이었다.
72년 유로와 74년 월드컵 우승 멤버인 프란츠 베켄바우워, 베르티 보그츠, 헤르베르트 비머, 제프 마이어, 울리 회네스 같은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남아있었고 득점기계 게르트 뮐러는 은퇴했지만
이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디터 뮐러(뮐러는 이 대회를 끝으로 국대 은퇴를 했다)가
신인으로서 인상적인 활약을 했고 베테랑 울리 회네스도 있었기에 파괴력이 충분한 공격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독일에게 유로 2연패는 그냥 허풍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처럼 비춰졌다.
그에 비해 체코슬로바키아는 이 대회 이변중에 하나였다.
비록 2번의 월드컵 준우승(34,62년)과 첫 유로대회 3위를 기록한 국가였지만 이미 과거의 영광이었고
국내 소요문제(프라하의 봄)로 오랫동안 스포츠가 침체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들은 예선부터 험난한 여정을 거쳤는데 축구 종가 잉글랜드와 같은 조였던 것이다.
당시 잉글랜드는 케빈 키건과 이언 맥도날드를 비롯해 믹 캐논과 같은 강력한 공격과 미들진을 가지고 있었던 팀으로
유로를 충분히 재패할 수 있는 팀이었다. 예상대로 첫 경기는 잉글랜드 홈에서 3-0으로 패하면서 본선 진출은 힘들어 보였으나
이후 무패로 승승장구 했고 결국 홈에서 종료직전 네호다와 갈리스의 기적같은 연속골로 역전해 조1위로 8강에 올랐다.
기세를 탄 체코는 당시 최강 팀중 하나였던 소련도 1승1무로 꺾고 본선에 진출해 당시 축구 관계자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이렇게 험난한 과정을 거친 체코였지만 우승희망은 없어보였다.
그들이 본선에서 싸울 상대는 바로 독일과 더불어 최강의 전력으로 평가받던 네덜란드 였기 때문이었다.
74년 월드컵에서 독일에 아깝게 지긴 했지만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전술적 변화를 이끈 리누스 미헬스 감독이 이뤄놓은 업적은
아직 팀에 충분히 살아있었고 요한 크루이프를 비롯한 니스켄스와 렌센브링크, 크롤같은 기라성같은 선수들이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강팀중에 강팀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팀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고 있었는데
원인은 미헬스 감독을 이어 팀을 물려받은 노블감독과 크루이프간의 문제였다.
괴짜기질과 독선적인 모습이 강한 크루이프는 노블의 지휘를 달갑지 않아 했고
이런 문제는 선수간의 팀웍도 흐트러트릴만큼 안좋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도 그들은 강팀이었다.
이런 가운데 열린 본선 경기는 역대 유로대회에서 최고 또는 최악의 경기로 회자되는 경기가 됐다.
시작부터 퍼붓는 비는 정교한 패스웍을 자랑하는 네덜란드의 장기를 희석시켰고 결국 체력싸움과 거친 몸싸움이 동반되는 경기로 흐르게 했다.
체력전에는 자신있었던 체코는 네덜란드를 거칠게 밀어 붙여 초반에 골을 넣어 네덜란드를 당황시켰고 이는 후반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거친 싸움으로 인한 경고는 계속 늘어났고 후반전에 폴락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급격하게 경기는 혼돈의 양상으로 돌입했다. 결국 선제골을 넣은 수비수 온드루스가 자책골로 동점을 헌납해 승부는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하지만 후반 막판에 니스켄스도 거친파울로 퇴장당해 연장전은 10대10 되었고
날선 공방전 끝에 네호다가 천금같은 역전골을 넣고 교체된 바슬리가 쐐기골을 넣으면서 체코는 극적으로 네덜란드를 꺽고 결승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양팀에선 3명의 퇴장과 5장의 옐로카드가 나오면서 결승에 오른 체코나 떨어진 네덜란드나 큰 전력상 손실을 입었다.
이 경기를 끝으로 크루이프는 무단으로 팀을 이탈해 집으로 가버렸다.(그래도 3,4위 전에서 유고를 이기고 3위를 했다...응??)
어렵게 결승에 오른 체코와 달리 쉽게 올라갈것으로 생각된 독일이었지만 개최국인 유고가 쉽게 결승을 허락하진 않았다.
첫 유로대회 준우승을 비롯 68년 대회에서도 준우승을 한 유고는 쉽게 꺽을 수 없는 팀임을 보여줬다.
당시 유고에는 발칸의 마법사라는 애칭을 가진 드라간 자이치를 중심으로 한 탄탄한 미들을 가지고 있는 팀이었고
대부분 자국에서 뛰고 있어서 조직력도 매우 잘 갖춰진 팀이었다. 거기에 홈이라는 이점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런 강력한 조직력을 가졌던 유고를 독일은 간과했고 이는 초반 실점으로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파피보다와 자이치가 필드골과 프리킥으로 한골씩 넣으며 전반전을 2-0으로 끌려간 독일은 후반 중반까지 제대로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없었고
결국 선수교체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교체해서 들어간 하인츠 플로에와 디터 뮐러가 각각 한골씩 넣어 연장전에 돌입했고
이미 체력적 문제가 있었던 유고는 연장전에서 뮐러에게 해트트릭을 헌납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자이치의 인터뷰를 보면 플로에에게 골을 먹은 뒤 동요했다고 한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결승에 오른 두 팀이었지만 다들 독일이 우세하다고 믿고 있었고 독일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는 체코의 초반 광속 선제골로 체코가 리드한 상황에서 도비아슈의 그림같은 중거리 슛으로 추가골까지 넣으며
승부가 급격하게 기울어 진듯 했다. 그러나 이런 역경은 이미 본선 첫경기에 겪었고
월드컵과 전 대회 우승이라는 큰 경험을 가진 독일에겐 큰 동요가 되지 못했다.
이런 침착한 경기운영은 후반전 이 대회에 득점왕인 뮐러가 골을 넣으면서 빛을 발했고
결국 종료직전 공격수 횔첸바인이 그림같은 헤딩골을 넣으면서 원점으로 돌려놓으면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양팀 다 연장전에선 득점없는 공방전이 이어졌고 결국 지금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인 승부차기로 우승을 가리게 됐다.
승부차기도 한치 앞을 예상 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양팀 키커가 모두 성공한 가운데 4번째 키커인 회네스 까지 왔고 회네스는 자신있게 찼으나
공은 골 포스트를 넘어가(라...라모스.....) 노골이 되었다.
체코의 마지막 키커인 페넨카는 그 유명한 페넨카 킥을 차서 제프 마이어를 벙찌게 만들고 우승을 매조지 하는 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이렇게 승부차기에서 칩슛 형태로 차는걸 페넨카 킥이라고 불리게 됐는데
아마도 처음으로 승부차기로 결정난 대회기도 하고 당시에 우승후보가 아니었던 팀이 최강팀을 꺽는데
마지막 장면이기도 해서 그렇게 불리우는게 아닌가 한다.(페넨카 킥은 양날의 검이기도 한데 타이밍만 읽히면 그냥 망했어요...가 된다.)
이렇게 드라마를 쓰면서 우승한 체코는 앙리 들로네를 드는 모습도 후대에 이야기 거리를 남겼다.
경기가 끝나고 독일 선수들과 유니폼 교환을 한 체코 선수들은 그대로 시상대에 올라가
우승팀 유니폼은 준우승팀이 입고 침울한 상태로 메달을 받고
준우승 유니폼을 입은 우승팀은 신나서 앙리 들로네컵을 드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당시 선수들은 자신들이 독일 유니폼을 입은줄도 몰랐다고 한다. 워낙 정신도 없었고 진짜 이긴건가...라는 생각도 들만큼 놀랐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래서 76년 대회 우승컵을 든 사진은 독일 유니폼을 입은 체코선수들의 모습만 있고
체코 유니폼은 우승세레모니 할때 볼 수 없었던 결과가 연출됐다.(사진으로는 독일이 3연패...ㅎㅎㅎㅎ)
아직까지 유일하게 유로에서 3대회 연속으로 결승에 오른 독일은 그 다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자신의 위상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재밋는건 80년 유로에서 독일, 네덜란드, 체코가 같은 조로 묶여서 본선을 치뤘다는 점이다.
여기서 독일은 루메니게의 골로 체코를 이겼고 체코는 네덜란드와 비기면서 3,4위 전에 올라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를 꺽고 3위를 차지해 전대회 우승팀의 체면을 지켰다.
(80년 대회부터 8개 팀이 4팀씩 2조로 묶어 대회를 치뤘는데 이때는 4강전 없이 각조 1위팀이 결승으로 직행했고 2위팀은 3,4위전을 치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