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조선시대 내시는 궁녀와 함께 궁중 업무를 담당한 주요 인물이었지만, 우리는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그램 등을 통하여 내시에 대해 뭔가 정상인과는 다르고 행동거지나 목소리가 이상한 사람일 것이라고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내시도 엄연히 품계와 관직이 있는 전문직 공무원이었다. 내시의 품계는 종2품인 상선(尙膳), 정3품인 상온(尙?)ㆍ상다(尙茶)ㆍ상약(尙藥)에서, 종9품인 상원(尙苑)까지 직책이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최고직인 상선 내시의 경우는 종2품이었으니 오늘날 차관급에 해당하는 고위직이었다. 왕의 행차에서도 말을 타고 왕을 수행하는 내시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가 있다.


  궁궐 안에는 내시들이 업무를 보는 관청인 내반원(內班院)이 있었다. 내반원은 임금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내시의 업무 성격상 왕이 계시는 처소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궁궐지』에 의거하면, 내반원은 경복궁에서는 경회문(慶會門) 서쪽에, 경희궁에서는 흥정당(興政堂) 남쪽에 자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시의 숫자는 『경국대전』에 140명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대전통편』에 가서는 그 수효가 일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왕의 뜻에 따라 정하도록 변동되었다. 내시의 근무 형식은 비교적 장기간 궁궐에 머물면서 근무하는 방식인 장번내시(長番內侍)과 교대로 궁궐을 출입하면서 근무하는 방식인 출입번내시(出入番內侍)가 있었다.


  15세기의 학자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성종의 전교를 받아 내반원의 연혁과 기능을 기록한 「내반원기」를 남겼다. 『성종실록』에 “승정원에 전교하여, 내가 일찍이 「대루원기(待漏院記)」와 「내반원기」로써 여러 신하와 내관(內官)을 경계시키려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성종이 내시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 이 글을 짓게 했음을 알 수가 있다.

  궁신(宮臣)의 국(局)을 둔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대체로 천문 상(象)을 본떠 임금의 곁에서 시중을 들면서 궁문(宮門)의 출입을 금하는 일을 맡고, 내외(內外)의 말을 상통시키며, 임금의 음식을 요리하고, 궁궐의 뜰과 출입구를 청소하는 일들을 맡았다. 그러니 그 소임은 비록 낮을지라도 관계된 바는 매우 중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궁정(宮正), 궁백(宮伯)이란 칭호는 주(周)나라에서 시작되었고, 황문(黃門), 상시(常侍)란 칭호는 한(漢)나라에서 비롯되었으며, 내시, 급사(給事)란 칭호는 당(唐)나라에서 나왔고, 내반(內班), 전두(殿頭)란 칭호는 송(宋)나라에서 부르던 것이다. 그런데 관호(官號)는 시대마다 변경이 있어 일정하지 않으나, 그 거처하는 곳이 지극히 엄밀하고, 직분이 전일(專一)함은 역대로 다 같았던 것이다. 『서경』에 이르기를, “복신(僕臣)이 바르면 다른 신하는 감히 바르지 않을 수가 없다.”하였으니, 설어(褻御)1)의 신하도 오히려 그러한데, 더구나 중관(中官)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예로부터 충성하고 삼가서 스스로 자신을 바르게 가진 자는 모두 복을 받았고, 은총을 믿고 교만한 자는 모두 앙화(殃禍)를 입었다. 나라도 여기에 따라서 융성하거나 교체되었으니, 심히 두려운 일이다.


[宮臣之有局。其來尙矣。蓋取象於天文。而傍侍乎宸極。于以掌閨?之禁。通內外之言。調劑膳羞。掃除庭戶。其爲任雖褻。而其所關不旣重矣乎。宮正宮伯。始於周。黃門常侍。昉於漢。內侍給事。見於唐。內班殿頭。稱於宋。雖官號之因革不一。然其居之密而職之專。則歷代皆同。書曰。僕臣正。罔敢不正。其在?御之臣。猶然。?中官乎。自昔。忠謹自持者。未嘗不獲福。驕傲?寵者。未嘗不罹禍。國亦隨之以隆替焉。深可畏也已。]

1) 설어(褻御) : 가까이 모시어 친압하는 신하를 말한다.

  김종직은 내시의 임무에 대해, ‘임금의 곁에서 시중을 들면서 궁문의 출입을 금하는 일을 맡고, 내외의 말을 상통시키며, 임금의 음식을 요리하고, 궁궐의 뜰과 출입구를 청소하는 일들을 맡았다.’고 그 임무를 기록한 후, 중국 주나라로부터 비롯되어, 한?당?송나라에 이르기까지 내시의 제도가 이어왔음을 기술하고 있다. 이어서 조선시대 내시의 연혁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본조(本朝)에서는 처음 국도(國都)를 정한 이후로 내시부를 영추문(迎秋門) 밖에 두고, 또 액정서(掖庭署)의 영항(永巷) 곁에 내소방(內小房)을 만들어서 심부름하는 내시들이 밤낮으로 임금의 명을 받드는 곳으로 삼았었다. 그런데 우리 성상(聖上:성종) 때에 이르러 비로소 거기에 내반원이라고 이름을 내렸으니, 이는 송나라의 옛 제도를 따른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외정반(外庭班)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외정반에는 삼공 육경(三公六卿)으로부터 백집사(百執事)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기에 있다. 그러나 공경(公卿)과 백집사들은 대궐 뜰에 모여 알현(謁見)하는 것이 때가 있고, 일을 아뢰는 것도 정해진 날이 있으므로, 특별히 면대하라는 명을 내려 계책을 논의하는 기회가 아니면 청규(靑規)2)에 엎드려서 임금의 안색을 바라보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내반원의 중관들이 조석으로 임금을 대하여 전후좌우에서 빙 둘러 모시고 있으면서 임금의 일동일정(一動一靜)을 낱낱이 친숙하게 받들 수 있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대체로 이처럼 미천한 자격으로 대궐 안의 깊고 엄숙한 곳에 있으니,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의당 어떻게 하여야겠는가. 충성되고 정직한 이와 아첨하고 간사한 자가 시대마다 각각 있었으니, 그 중에서 착한 사람을 가려 본받고, 착하지 못한 자를 경계로 삼는 것이 가하다.


[本朝自建都以來。置內侍府于迎秋門外。又於掖庭永巷之側。闢內小房。爲承侍給事者夙夜??之所。逮我聖上。肇錫名以內班院。所以復宋氏之舊也。所以別外庭之班也。外庭之班。則三公六卿。下至百執事。皆在焉。公卿百執事。廷見有時。奏事有日。自非賜對陳謨。則伏靑規而望淸光。爲日不多矣。非如內班朝夕?閑。環侍於前後左右。君上之一動一靜。罔不親慣焉。夫以側微之資。處深嚴之地。其秉心持身。宜何如也。忠?邪正。代各有人。擇其善者而體之。其不善者而戒之。可矣。]

2) 청규(靑規) : 어전(御前)에 청포석(靑蒲席)을 깔아놓은 자리를 이른다.

 

  이어서 김종직은 중국 역대의 내시로서 모범적으로 활동한 인물들로 한나라의 사유(史游), 후한의 양하(良賀)와 여강(呂强), 당나라의 구문진(俱文珍)과 마존량(馬存亮), 송나라의 장무칙(張茂則)과 풍세녕(馮世寧) 등을 소개하였다. 또한 김종직은 ‘충성되고 정직한 내시와 아첨하고 간사한 내시가 시대마다 각각 있었으니, 그 중에서 착한 사람을 가려 본받고, 착하지 못한 자를 경계로 삼는 것이 가하다.’고 하면서 중국 역대로 모범적으로 활동한 내시들의 사례를 든 후에, 내시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언급하였다. 특히 내시의 권력화는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다는 점과 이에 대한 경계도 잊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참소하고 아첨하여 임금을 유혹하고, 비위를 맞추고 간사함으로써 은총을 받아서, 자기 당류(黨類)를 끌어들이고 충량(忠良)한 사람들을 시기하여 해치며, 성색(聲色)과 기교(技巧)를 베풀고 재리(財利)를 긁어모으는 등 무릇 임금의 욕심을 맞추는 데에 못할 짓이 없는 경우에 있어서는, 임금이 불행하여 한번 그 마수(魔手)에 빠져들기만 하면 환관의 지위를 빌어서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고서, 방자하고 거만하여도 감히 막을 자가 없게 되어, 눈 한 번 흘긴 혐의도 반드시 갚으려 하고, 자기 본가의 족속들까지도 영화롭고 귀한 지위를 도모하게 된다. 그리하여 출척(黜陟)과 형상(刑賞)의 권한이 남몰래 그들에게로 옮겨져서, 끝내는 국가가 위란(危亂)하게 되고 자신의 몸이 칼날에 잘리게 되는 것이니, 제(齊)나라의 수초(?貂)로부터 한ㆍ당ㆍ송나라의 여러 환관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같은 법칙인 것이다. 아, 엎어진 전철(前轍)의 감계(鑑戒)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至若讒諂媚主。?邪?寵。援引黨類。妬害忠良。聲色技巧。辜?財利。凡所以中人主之欲者。無所不至。人主不幸。而一爲所中。則假貂?之飾。握樞機之重。放溢偃蹇。莫能禁禦。??之嫌。必期報復。螟?之族。亦圖華貴。於是。黜陟刑賞之柄。潛移於下。卒之國家危亂。而身伏歐刀。自齊之竪貂。以至于漢唐宋之諸。皆一律也。嗚呼。覆轍之鑑。其不在玆乎。]

  마지막으로 김종직은 내관들이 마음가짐을 더욱 확고하게 다질 것과 역대 내관의 전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지금은 임금의 성명(聖明)함이 중천(中天)에 뜬 해와 달과 같아 아무리 그윽한 곳도 비추지 못하는 데가 없으므로, 중외의 신하들에 대한 착하고 착하지 못함을 반드시 다 알 것이니, 더구나 내반(內班)의 친근한 신하에 대해서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처소는 비록 대궐 안의 금밀(禁密)한 데라 할지라도 실로 열 손가락이 가리키고 열 눈이 지켜보는 곳이니, 진실로 털끝만큼이나마 태만하고 소홀한 마음이 있으면 앙화가 미치지 않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비와 이슬처럼 적셔주는 임금의 은택을 어찌 구차하게 기대할 수 있으며, 천둥 벼락 같은 임금의 위엄을 어찌 구차하게 면할 수 있겠는가. 대체로 이와 같은 것이니, 지금 이 내반원에 있는 사람들 중에 옛날의 어진 환관을 본받아 복받는 것을 어길 자가 누가 있겠으며, 나쁜 환관을 본받아 엎어진 전철의 위험을 탐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옛사람의 좌우명은 참으로 헛되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므로, 삼가 윤지(綸旨)를 받들어서 기(記)를 쓰는 바이다.


[厥今日月中天。靡幽不燭。中外之臣。臧否必聞。?內班之近且習者乎。居雖禁密。實十手十目所指視之地。苟一毫有怠忽之心。鮮不及矣。雨露之澤。烏可以苟?。而雷霆之威。烏可以苟免矣。夫如是。則今之居是院者。孰有違伐柯之福。而貪覆轍之患者哉。然而古人座右之銘。誠非?設。故謹承綸旨。而爲之記云]

  내시는 임금의 최측근에서 온갖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오늘날로 치면 청와대 직원과 가장 가깝다. 『경국대전』에는 내시의 임무에 대해 ‘궁궐 안의 음식물을 감독하고, 왕명을 전달하고, 궐문을 수직(守直)하고, 청소하는 임무를 담당한다’고 규정하여 내시의 임무가 크게 네 가지임을 설명하고 있다. 법으로 규정된 내시의 업무는 정치에 관계되는 측면이 적으나, 「내반원기」에서 언급한 대로 왕의 측근임을 빙자하여 당류를 끌어들이거나 재물을 긁어모으고,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고서 방자하고 거만하게 굴면 감히 막을 자가 없게 되었다. 내시의 권력화를 경계한 이 글이 결코 낯설지만은 않는 것은, 현대사에서도 역대 정권마다 대통령 측근들의 부정과 비리가 끊이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글쓴이 : 신병주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주요저서
-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램덤하우스, 2003
- 조선 최고의 명저들, 휴머니스트, 2006
-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책과 함께, 2007
- 이지함 평전, 글항아리, 2008
-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새문사, 2009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