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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얘기가 떠오르는 가운데...

'전통적인 방식의' 젓가락질 못하는 저도 한마디 안끼어들 수가 없네요.



1. 전 X형의 젓가락질을 합니다. 어려서부터 해오던 방식이 걍 몸에 굳어버려서.. 지금은 X자형 젓가락질로도 전혀 불편함 없이 식사를 하는데요.

'전통적인' 젓가락질 못하시는 분들은 대개 경험하셨겠지만... 어르신들 중에서는 제가 하는 방식의 젓가락질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시죠. 저희 부모님.. 특히 아버지가 제 젓가락질을 고쳐주기 위해 노력하셨지만... 제 고집(?)이 더 셌다능... --a

여튼 그런 어르신들중 제일 기억나는건 저희 할머니의 남동생 되시는 할아버지셨는데...

아마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쯤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시골에 사시던 삼촌(?) 할아버지께서 저희 할머니를 보러 서울 올라오셔서 저희집에 며칠 묵으셨는데... 그 집 큰 아들이던 제가 젓가락질을 하는 것을 보시더니... 제 젓가락질을 고쳐놓을때까지 시골에 내려가시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죠.

삼촌 할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수많은 아해들의 잘못된 젓가락질을 바로잡아오셨다는 설명도 덧붙히시면서 말이죠.


결국..

실패하셨습니다. 일주일만에 GG를 선언하시고 시골로 내려가셨죠.


그 이후... 저희집에서는 그 누구도 저의 젓가락질을 고치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에 제가 고집 부렸던 이유는 이렇게 기억해요.

'난 이렇게 젓가락질 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데.. 왜 힘들게 고쳐야 하나?'




2. 세월이 흘러 지금의 와이프님하와 사랑에 빠졌고... 그렇게 지내던 어느 구정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평범한 날 와이프님하가 저에게 이 한마디를 전해 주시더군요.

'울 부모님이 널 보고 싶으시대'

그전까지 여친을 사귀면서도 여친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던 경험은 없으신지라.. 저는 극도의 긴장상태에 빠짐니다. 제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무언가 미래의 장인어른, 장모님께 책 잡힐 것이 없는 지 하나하나 체크해 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것.

바로 나의 젓가락질...


허거걱.. 장인어른께서 내 젓가락질을 보시고 '이런 젓가락질도 못하는 사내놈을 보았나. 내 딸을 자네에게 줄 수 없네!' 이렇게 하시면 어떻하지???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십수년전.. 삼촌 할아버지께서 일주일 합숙하시며 제 젓가락질을 고쳐 놓으시겠다고 했을때 얌전히 말을 들을껄.. 후회도 해 봅니다.


결국.. 그 날부터 추석날까지 맹렬하게 젓가락질 연습을 해 봅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진정성을 가지고 시도해 보지 않았던 젓가락질이...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X자 젓가락질에 길들여져 있는 나의 손가락들이...

쉽게 새로운 젓가락질에 적응을 해내지 못합니다.
 
그래도 맹렬히 연습합니다.

그리고는 미끄럽지 않고 가벼운 물체 정도는 들어서 입에 넣을 수 있는 정도까지는 젓가락질을 완성시킵니다.



추석 당일날...

여친의 집으로 향하면서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 봅니다.

'가능하면 숟가락을 이용해서 먹을 수 있는 반찬만 먹자. 그렇다고 젓가락질을 안할 수는 없으니.. 반찬중 들기 쉬운 반찬만 젓가락을 애용하자. 무거운 반찬은 먹고 싶어도 참자. 하지만 편식한다는 인상은 주지 않도록 가능하면 골고루 먹는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자. 먹고 싶은게 있다면 부모님이 한 눈 파시는 틈을 타서 재빨리 엑스자 젓가락질을 이용해 해당 반찬을 밥위에 올려놓자. 그 이후는 숟가락으로 밥과 함께 떠 먹으면 되니깐.'



그리고 긴장속에 맞이한 여친 부모님 앞에서의 식사 미션을..

저는 나름 성공적으로 클리어 해냅니다.



그 이후 결혼전에 상견례를 포함한 몇차례 여친 부모님 앞에서의 식사기회가 더 있었는데...

이 역시 그때의 추석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수 없이 미션 클리어 해냅니다.




3. 그리고 결혼 후...

저는 처가집에 가면 여전히 X자 젓가락질로 식사를 합니다.

그걸 가지고 장인어른도 장모님도 단 한 번도 뭐라고 하신 적이 없네요.




프롤로그 :

어찌됐든 그 때의 피나는(?) 연습 덕분이었는지.. 지금은 어느정도 전통적인 젓가락질을 할 수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여전히 X자 젓가락질로 식사를 하지만..

가끔은 생각나면 재미삼아 전통적인 젓가락질로 반찬을 집어먹어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