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뻘글] 신량역천인
- 작성일
- 12-06-25 23:06
한국사에 보면
법적으로는 양인인데 실제 대우는 천민같은 사람들로 신량역천인이라고 있죠.
대표적인게 백정이고요. ~~척, ~~간이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수군, 조례, 나장 같은 새로운 직군이 추가가 되지요.
제가 좀 의외였던 것은 나장입니다. 포도청(의금부?)의 수사담당인데, 이게 천역입니다.
봉수꾼 뭐 이런 것처럼 국가의 말단 사무를 보지만 일이 고되다보니 천시되는 것 같아요.
근데 포졸보단 위에 있었다고도 하고 ..
흥미로운 사람들은 재인, 양수척, 백정입니다. 연원이 같은 부류인 것으로 생각되고요.
상당히 개방적이었던 고려 시대에 북방에서 들어온 (유목민?) 떠돌이 집단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재인(才人)은 광대, 양수척은 버드나무 가지로 바구니같은 걸 만드는 직업을 의미하는데, 광대 집단이 떠돌아다니며 부업으로 하는 거죠.
(사당패의 기원이 여기인 것 같기도 하고)
조선 초기에 이들을 농민으로 정착시키려고 백정이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얘들이 정착생활을 안하면서 자연스럽게 천시되는 이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양수척을 보면서 제가 든 생각이 '천역에 오르지 않으면 일단 양인'이라는 거 아닌가 하는 겁니다.
말로 써놓으니 이상한데 ..
일본과 비교를 좀 해야겠네요.
한국과 중국도 세세하게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적이 '전근대 왕조'의 관념으로 보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은데
일본은 같은 동양 3국이라고는 하지만 굉장히 다르거든요.
어느 일본사 교수의 말을 빌면 '막부 정치의 운영과 가장 흡사한 것이 야쿠자 조직'이라고 하더군요.
요컨대, 일본에는 왕토, 신민 이런 관념이 없습니다. 어차피 천황은 통치하는 자가 아니니까 ..
최고 통치자인 국왕에 해당하는 게 막부인데, 막부는 신민들을 다스리지 않아요.
막부는 다이묘들과 계약을 합니다. 그리고 다이묘가 일정한 상납을 계속하는 한 해당 다이묘가 지역에서 뭔짓을 하건 상관이 없죠.
(대충 서양 중세의 봉건제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다이묘 밑에도 작은 영주들이 있는데, 얘들은 다이묘와 거래할 뿐 막부랑 연결이 되지 않아요.
막부와 직접 거래하는 자들을 고케닌이라고 해서 특별히 우대되죠.
이런 이유로 일본에는 신민을 통치하는 법이 없습니다. 법이라고 몇 개 있는 조항은 막부와 고케닌의 관계를 규정한 것뿐이죠.
** 이와 관련하여 좀 우스운 일도 있는데, 여몽연합군이 일본에 쳐들어갔을 때,
막부에서 다급한 나머지 이놈저놈(=고케닌이 아닌 영주)에게 소집령을 쫙 돌렸거든요.
그러니까 고케닌은 티껍다고 군사 동원을 안하는 경우도 있었고 ..
고케닌이 아닌데 소집령을 받은 영주는 '아싸 나도 이제 막부랑 거래를 트고 고케닌이 되나보다'해서 열심히 달려갔죠.
전쟁 끝나고 이들 사이에 분쟁이 벌어져서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는 원인의 하나가 됩니다. **
그러니까 일본에는 '백성'이라는 게 없습니다.
야쿠자에 비유하자면, 조직의 관리를 받는 마을 사람들 + 조직원 + 조직 대장 -> 대장들의 보고를 받는 고케닌 -> 고케닌의 보고를 받는 막부
이런 식으로만 구성되어 있죠.
그 외의 사람은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길게 돌아왔는데, 이에 비해 중국이나 한국에는 '왕토 사상'과 '왕의 신민'이라는 관념이 있어요.
남쪽 제주도부터 백두산까지 (그 이북까지?) 있는 땅은 기본적으로 다 왕꺼고,
거기에 사는 사람은 왕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이다 .. 라는 거죠.
여기에 양수척처럼 떠돌아다니는 신원불명의 사람이 나타났을 때, 일단 기본은 왕의 신민인데 천적에는 기록이 없으므로 양인 ..
이렇게 되서 신량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일본의 경우라면 귀신으로 보고 죽였겠죠. ㅡ.ㅡ
뭔가 재미없는 글이 되었는데 ...
쬐끄만 고려 시장에서 밥벌어먹겠다고 들어왔다가 정치적 변화 등등으로 인해 조선에 갖혀서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북방민족 출신 양수척, 사당패 님들의 운명을 생각하니 좀 애잔한 마음이 들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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