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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휴가를 내고 영화 '노무현입니다 '를 관람했습니다.

영화는 다들 아시다시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경선을 큰 줄거리의 축으로 가져가며, 중간중간에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를 끼워넣어 인간 노무현에 대한 에피소드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저는 99학번입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안 건 2002 대선 때였는데 마침 군복무중이었습니다.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때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니, 저는 정확하게 이 영화의 주요내용인 민주당 경선 결과 이후 시점부터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거죠.

군대에서 노무현 후보를 찍고 당선되는 것을 봤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복학후에는 그리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는데 정치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딱 대통령선거에서의 투표권만 행사한 후 정치에 무관심하던 일상으로 돌아갔던 거죠.

한창 탄핵소추가 의결되어 시끄러울 때에도 헌재에서 기각된 결과와 이후의 상황(열린우리당의 총선 압승)등만 알았지 자세한 이유나 배경 등은 잘 몰랐습니다.
그때가 복학한 뒤 공대 2차 시험때 였던 거 같은데, 다른 학생들은 학생식당 티비에 중계되는 탄핵소추관련 뉴스를 보면서 대화가 한창이었는데, 저는 무관심 했지요.

남들처럼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한심합니다.

그 유명한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라던가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등의 발언은 들어보았으나, 그마저도 수구언론의 "대통령으로서의 권위가 너무 없다" 또는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다" 등의 편향된 비판을 통해 들은 것이었습니다.

그밖에 노무현 대통령 임기중에 생각나는 것들은 이라크파병, 글로벌호크, 대통령전용기, 홍상어 등 단편적인 것들뿐이었습니다.

희한한 것은..... 노 대통령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가족들 모임에서 나이 많으신 분들이 그를 무턱대고 욕할때는 왠지 제가 노 대통령을 두둔하기도 했다는 겁니다.
대체 특별한 이유없이 사람들이 그렇게 그를 싫어하는 이유가 뭘까... 하고 궁금하기도 했지만, 또 그런 사람들을 설득할만큼의 확고한 정치관을 갖고 있지도 못했기에, 어물거리다가 대화가 끝나기 일쑤였죠.

그리고 나서 노 대통령이 퇴임했는데, 제겐 청와대에 있을 때의 노무현보다 봉하마을에서의 노무현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임기중 국정운영의 방향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퇴임후의 소탈한 모습을 여러 경로로 접하고는 참 감동 받았었지요.
그런 이미지로 각인되어서였는지, 노 대통령이 부정부패에 연루되었다는 언론의 기사는 믿지 않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어쩌면 그때가 제가 언론 기사의 진위에 대해 처음으로 의심을 시작한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는 정치에 무관심했고, 2007 대선때는 투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같은 사람 때문에 대한민국의 지난 10년이 괴로웠음을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입사했고, 하루하루 똑같은 나날을 보내던 2009년 그날 아침에 후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노무현이 죽었대.."

아마도 노대통령이 서거하셨대...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은 그 녀석이 노 대통령을 평소에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냥 저와 같은 부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저희들에게 있어 평소에 존경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존경받을만한 사람이 없다고 저도 모르게 생각해왔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별다른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강남역에 볼일이 있어서 갔는데 근처에서 노무현 서거 1주기를 기념하는 전시회가 있다는 현수막을 봤습니다.
시간이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심심해서 잠시 다녀오기로 했던 거죠.

그 때만해도 추모의 목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수많은 그림과 글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다보니 어느 한 쪽 구석에 "노 대통령 서거 후 메이저 언론의 1면 기사 변화" 내용이 걸려있더군요.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노 대통령 서거 후 4일만에 노 대통령에 대한 기사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 있는지..... 지지자가 아닌 제가 보기에도 정말 이상했습니다.

그러다가 인터넷의 각 게시판에 그를 추모하는 글들을 통해, 오히려 그가 살아있을 때보다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마음속에 무엇인가 자라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흔히 노 대통령을 얘기하면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부채의식" 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감정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해 전혀 몰랐으니까요.

그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저렇게도 상식적이고 불의에 항거할 줄 알고 권위를 벗어던지고 어려운 사람을 위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었구나."

"그리고 그와 같이 공감하고 새 시대를 열고자 노력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구나."

"그런데 나는 어리석게도 게으르게도 뻔뻔하게도 그들을 그들의 노력과 이상을 알아차리지도 못했고 귀기울여 듣지도 않았었구나."

"저사람의 죽음의 아니었다면 나는 끝까지 민주주의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하고 쳇바퀴의 다람쥐처럼 살았겠구나"

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미안함 때문에 울었고, 고마움 때문에 울었습니다.

노사모야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이고 노 대통령이 어려울 때 두둔해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자격도 있는 사람들이지만, 저는 너무도 무지해서 노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미안했습니다.

평소에 나름 합리적인 생각으로 상식적으로 행동하려 애쓰긴 했지만 언론,정치권력,재벌의 술수는 전혀 깨닫지 못한 상태였고, 정치에 대한 관심보다는 내게 닥쳐있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정치가 바로 내게 닥쳐있는 문제중 하나인줄 모르고 말이죠.

그들이 원하고 만들어가고자 했던 세상이 내가 원한 세상이었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나중에 노 대통령에 대해서 알고 나서도, 저는 제가 그를 제 손으로 뽑은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려했는지, 그리고 그와 그의 지지자들이 어떤 이상을 공유했었는지 전혀 모르고 그냥 생각없이 뽑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생각하면 군대에서 투표를 했던지라.... 아들 병역문제가 이슈였던 이회창 후보를 뽑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다만 나를 잠에서 깨우고, 깨어있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도와준 노 대통령과 노사모에게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이 들 뿐입니다.

노 대통령이 돌아가신 해에 투병중이시던 저희 어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영화에서 유시민 씨가 얘기했듯이 돌아가신 분을 보낸다고 보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때가 되고 그분을 놓아드릴수 있는 여건이 되면 자연스럽게 떠나보낼 수 있게 되지요.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님을 보내드리기가 힘들었지만, 아내를 만나고 아이들과 행복한 생활을 하면서 많이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아직 보내드리기가 힘드네요.
제가 그분과 일면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분이 임기에 계실때 관심을 가졌던 것도 아니고, 노사모도 아닌데.....

영화 말미의 인터뷰에 나오신 분이 하신 말씀처럼, 다만 저와 제 가족이 정의롭고 공정하게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사람사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분을 보내드리는 날을 기다리며, 이쯤에서 감상을 마치겠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