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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갈수록 한류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나 노래를 좋아하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는데 관심을 가지고, 한국을 알고 배우려는 학생들이 외국 대학에 개설된 한국학 강좌를 신청하거나 아예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국내에서도 비슷하다. 서점가에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서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TV 드라마에서 사극의 인기가 높아 하나가 끝나기가 무섭게 새로운 사극이 등장한다.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시민강좌도 활발하다. 각급 박물관이나 문화원 같은 공공기관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현장을 답사하는 강좌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평생교육의 시대’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한국학을 전공하는 필자로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국내외의 뜨거운 관심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선배 연구자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이룩한 성과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폭증하는 수요를 따라가는데 급급하여 부실한 콘텐츠를 양산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때도 있다. 뿌리와 줄기가 튼튼해야 꽃이 좋고 열매도 좋은 법인데, 화려한 꽃을 피우는 데만 신경을 쓰다가 줄기와 뿌리가 시드는 줄은 모르는 것 같아서이다.


  필자는 앞으로도 한류 열풍이 계속되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한류 열풍이 계속되려면 우리는 한국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계속해서 발굴하고 알려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문화 콘텐츠는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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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까지 한국 문화에 관한 문헌 자료는 대부분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한문 자료를 해독할 능력을 갖추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문화 콘텐츠를 활용하려는 사람이 직접 자료를 읽으면서 자기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거나 번역가가 한글로 번역해 놓은 글을 통해 콘텐츠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문 해독이 가능한 사람이라도 초서로 작성된 난삽한 자료를 읽고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초서를 정자로 바꾸는 탈초(脫草)를 하고, 원문에 표점이나 현토를 붙이면,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자료를 이해하는 정도도 높아진다. 여기에 제대로 된 번역본까지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그러면 현재 우리는 한문 자료를 다룰 수 있는 인력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을까? 앞으로 한문 자료를 처리할 인력을 지금 충분히 양성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한문 자료를 정리하거나 번역할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은 대학교에 소속된 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고, 자료를 번역하는 작업은 한국고전번역원을 비롯한 수개의 기관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자료를 발굴하여 정리하고 번역하며 전산화하는 전 과정을 고려한 시스템은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늘날의 한류 열풍이 지속되게 하려면 그 뿌리나 줄기에 해당하는 문헌자료의 정리와 번역이 착실히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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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문헌자료를 발굴하여 정리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제일 먼저 각지에 산재하는 자료를 조사하여 수집하고 목록을 작성하는 기초 작업이 필요하다. 이 단계에서 자료의 내용과 특징을 간략히 소개하는 해제 작업이 이뤄질 수도 있다. 다음으로 연구자가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자료를 편집하거나 정본화하는 가공 작업이 있다. 자료를 편집한다는 것은 특정한 주제에 해당되는 자료를 모아서 편집하는 작업을 말한다. 또한 자료의 정본화는 원문을 탈초하고, 다수의 대본을 대조하여 원문을 교감하며, 원문에 표점이나 현토를 부가하고, 주석을 붙이는 작업을 포함한다. 정본화 단계를 거친 자료는 조판하여 책으로 인쇄하거나 전산화하여 이용자에게 제공된다.


  이런 작업을 수행하려면 한문 해독이 가능하고, 문헌학에 해당하는 문자학, 음운학, 훈고학, 목록학, 판본학, 교감학에 대한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 또한 자료의 성격에 따라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전공별 지식이 필요하다. 가령 고대 천문학에 관한 자료를 읽으려면 한문 해독이 가능하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 사정은 이를 동시에 해결할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연구소에서는 수집한 자료를 별다른 가공 없이 그대로 영인하고, 학과에서는 전공별로 필요한 자료를 읽으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으로 한문으로 된 문헌자료를 번역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번역 작업은 앞서 언급한 정본화된 자료를 대본으로 하고, 자료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전공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이 번역하고 주석을 붙이는 것이 좋다. 그러나 현재의 번역 작업은 자료의 정본화 단계가 없고, 분야별 전문 번역가를 양성하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다.


  가장 이상적인 방안이라면 문헌자료를 정리하고 번역하는 일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배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작업을 단독으로 완수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기란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보다는 이런 작업을 순차적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각 단계별로 적합한 인력을 배치하여 역할을 분담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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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헌자료를 정리하는 작업과 번역하는 작업을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번역 작업의 시스템이 더 체계화되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정비되어 있다. 그동안 번역 사업과 번역가 양성을 주도한 기관은 한국고전번역원(이하 ‘번역원’이라 약칭함)이다. 1965년에 설립된 민족문화추진회의 후신인 번역원은 지금까지 30년 이상 번역가를 양성하고 번역서를 출간하는 일을 계속해 왔다. 최근에는 한국문집총간에 수록된 문집을 번역하는 다수의 권역별거점연구소가 선정되어 번역 작업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번역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도 다수가 있다. 성균관대와 고려대에는 고전번역협동과정이 개설되어 석박사 학위과정을 운영하고, 한림대의 태동고전연구소 한문연수원, 전통문화연구회의 고전연수원, 성균관의 한림원, 한국국학진흥원의 고전국역자 양성과정에서도 번역을 할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관의 커리큘럼을 비교하면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고, 어느 기관의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고 다른 기관에서 그 자격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가령 번역원에서 주관하는 권역별거점연구소 협동번역사업을 보면 한국학 분야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과 고전번역교육원(구 국역연수원)의 연구부 과정을 수료한 사람에게 번역 사업에 참여할 자격을 준다, 그렇지만 여타 기관을 수료한 사람은 번역원에서 실시하는 검증시험을 통과해야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 번역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과정은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타 기관에서 보면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때 부여된 자격은 문집을 번역하는 사업에서만 인정되지 다른 사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가령 번역원에서 ‘국고문헌’이라 부르는 연대기 자료를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려면 어떤 과정을 이수하고 어떤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가? 현재까지 우리는 합의된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문헌자료를 번역하는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한문 자료를 한글로 번역하는 것만 언급했고 한글로 번역되거나 한글로 된 자료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경우만 해도 전문 용어의 번역, 한글의 영문자 표기 등 산적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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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한문으로 된 자료를 정리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거론해 보았다. 생각나는 대로 적다가 보니 문제점은 많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몇 가지 기본적인 방향은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문헌자료를 정리하는 작업과 번역하는 작업을 긴밀하게 연결시켜 진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두 과정을 분리하여 별개로 다루었고, 정리 작업의 핵심에 해당하는 정본화 사업에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를 감당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본이 부실하면 번역이 부실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연구 결과도 부실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현재 번역원에서는 실록 번역의 오류를 수정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기왕에 나온 실록 번역본을 대본으로 하여 영문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두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기 보다는 번역본의 오류를 수정하는 동안 실록에 나오는 전문 용어의 번역어 사전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문헌자료의 정리와 번역을 담당할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이 과정을 이수한 사람에게 부여할 자격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현재 각 대학에 개설된 전공의 경우 커리큘럼과 과정 이수자에게 부여하는 자격에는 일정한 기준이 있다. 가령 ‘철학과’ 졸업생이라 하면 그가 재학 중에 학습한 과목에 공통점이 있고, 졸업 후의 자격은 어디에서나 동일하다. 그러나 번역자 양성 프로그램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고전번역협동과정이 개설된 두 학교의 커리큘럼만 비교해도 차이점이 확연하고, 이 과정을 마치면 모든 번역 사업에 참여할 자격을 부여하는지는 아직까지 불확실하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번역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번역가에게 필요한 필수과목을 제시하고, 번역협동과정의 교육에 직접 참여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번역을 학문화하여 번역학을 전공으로 하는 전문학자를 양성하는 방안까지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설립된 한국고전번역학회의 활동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필자는 한국학이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문헌자료의 정리와 번역에 대한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 과정을 염두에 두고 종합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워낙 큰 작업인데다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방치해 둘 수가 없는 문제임은 분명하다.


  필자는 최근의 한류 열풍이 한국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한국학 관련 문헌자료를 정리하고 번역하는 것은 한국학 연구의 가장 기초적인 작업에 해당하며, 새로운 문화 콘텐츠도 여기에서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문헌자료를 정리하고 번역하기 위한 종합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중지를 모아주실 것을 당부한다.
 
 
 

 
  글쓴이 : 김문식  
단국대학교 교수
저서
『정조의 제왕학』, 태학사, 2007
『조선후기 지식인의 대외인식』, 새문사, 2009
『왕세자의 입학식』, 문학동네, 2010
『정조의 생각』, 글항아리, 2011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