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잎
- 작성일
- 16-07-17 14:43
여름이라 그런지, 아니 뭐 봄부터도 그랬는데, 집에서 밥하는것이 귀찮아졌어요.
대학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혼자 밥해먹고 잘 살았는데, 언젠가부터 다 귀찮고, 그냥 데충 한끼 한끼 떼우게 되더라고요.
얼마전 시골 다녀올 때 엄마가 이것저것 반찬과 김치를 해주겠다는걸, 아, 나 요즘 덥고 귀찮아서 집에서 밥 안해먹어~이러면서
다 거절하고 올라왔는데,,
엊그제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뭐 메인은 옥수수였습니다. 동생이 삶아 놓았길래 먹었죠. 맛있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던진 한 마디, 콩잎도 있어,, 아, 귀찮아서 밥 안해먹는다고 했는데 엄마는 저 콩잎을 보냈어요;;
결국 오늘 오전에 내내 이불에서 뒤적거리다가, 방금 일어나서,
밥을 하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남는 야채로 감자채볶음을 해서 늦은 점심이자 오늘 첫끼를 먹습니다.
오직 콩잎을 먹으려고.먹어치우려고. 빨리먹지 않으면 조만간 냉장고에 보관한다해도 금세 곰팡이가 키고 버려야하니까요.
여름이면 물김치처럼 담은 콩잎을 꼭 짜서, 아주, 뻑뻑하게 끓인 된장찌개에 싸서 먹습니다.
먹고나면 손에 콩잎의 냄새가 한동안 푹 배여있어서, 손을 코에 가져다 댈때마다, 다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시골에서 자랄때 늘 먹었고, 서울서 살고 있는 지금도 엄마는 늘 이맘때 보내주곤 했습니다.
물론 제가 엄청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여름 짧게만 먹을 수 있는 반찬이지요.
그러니 밥 안해먹는다고 했는데도 엄마는 저걸 꾸역꾸역 보냈겠죠. 콩잎때문에 한동안 밥을 해먹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서울 사람들은 먹지 않더라고요.
이런 물김치형태의 콩잎도 안먹고, 가을에 단풍든 노란 콩잎을 멸치 액젓에 절인 콩잎 절임도 안먹고 간장에 푹절인 콩잎장아찌도 안먹고,
아예 콩잎이란 음식을 먹지 않아요,,서울에서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보내줘야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 되었어요.
그러면서, 이런 음식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엄마와 함께 살지 않으면서 어릴때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아주 특별해져버린 음식들이 떠오릅니다.
올해 생일이 마침 휴일이어서 정말 오랜만에 먹은 가자미를 넣은 미역국이 그렇고,
미꾸라지를 곱게 갈아서, 무청시래기와 함께 끓어서, 다진 고추와 마늘, 그리고 재피가루를 잔뜩 뿌려서 먹는 추어탕이 그렇고,
조선호박을 얇게 썰어서 갈치와 함께 맑게 끓인 갈치찌개도 그렇고,,
철마다 당연히 먹었던 음식들을 이젠 그 철에 딱맞춰 시골에 가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드는 것은 어쩜 어릴때 먹던 음식이 미치도록 그리워지는 그런 것이라는 것도 깨닫게 해준, 그런 콩잎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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