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그런데 단순히 기이한 영화로 그치는 게 아니라 종래의 오컬트 호러영화와는 또다른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는 신기한 에너지가 넘쳐나는 작품이기도 하죠.

영화 내에서 감독이 추구하는 스토리 플룻과 메타포를 순수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관객을 놀라움과 혼돈의 연속으로 몰고가는 156분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3단 논법과 6하원칙의 정석에 매몰되면 개연성이 부족한 의구심만 가득한 지루한 156분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매우 재밌게도 스토리를 관통하는 주제인 '믿음과 불신'과도 일맥 상통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것이죠.

그럼 어느쪽을 택해야 하나? 그야 감독이 자신의 손으로 수년 간 각본까지 직접 써가며 그만의 세계관을 구축한 수고가 있으니 당연히 감독의 의도를 따라야죠.

비싼 돈 주고 영화관에 들어왔는데 자존심 세워서 무엇합니까? 감독이 어딜 끌고 들어가는지 낚여줘서 나쁠게 있나요?

그것은 지난한 시간동안 창작의 고통을 겪은 종합예술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합니다. 

 

일단 그럴 준비(?)가 갖추어지면, 평론가들이 말하는 '맥거핀'이란 요소는 최소한 이 작품에선 없다고 봐야합니다.

그렇게 보는 건 영화를 잘못 접근하고 있는 겁니다. 이 작품은 뼈대가 되는 시놉시스를 빼면 레퍼런스라는 게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각양 각색의 해석들이 감독의 기획의도에 비추면 모두 정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니까 말이죠.

따라서 기존 영화들의 방식으로 접근하면 절대로 안되는 겁니다.

영화가 시작되자 나오는 누가복음의 구절처럼 모두 믿음으로 봐야만 그 어두운 이면이 드러나는 신기한 작품인 거죠.

나홍진 감독은 이 작품이 극장에 걸리기 이전부터 시작과 끝에서 피어나게 될 관객들의 모든의문을 미리 꿰뚫고 있었고, 

그것을 작품의 흥행요소로 써먹기로 작정한 걸로 봐도 하등 이상하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까지 2번 관람을 하면서 결론을 내리자면, 이 작품에 절대 선과 절대 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놉시스대로나 많은 사람들이 유추한대로라면 '일본인'이 절대 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광은 그의 동조자, 반면, 종구에게 힌트를 던져주는 무명은 절대 선이 될테지요.

그런데 제가 보는 관점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일본배우 쿠니무라 쥰이 연기한 외지인에 대해서인데,

단적으로 말해, 이 사람은 악역이자, 선역입니다.

무슨 소리냐면, 그는 반은 악마, 반은 인간의 모습을 띄고 있고,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훈도시 차림의 고라니를 파먹고 있는 인물은 분명한 악마입니다.

부녀자를 모욕적인 말과 함께 겁탈하고, 후반부에 양이삼에게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변해가는 그 또한 악마죠.

하지만 반면, 애완견을 달래고 낚시를 즐기고 시장에서 흥정하고, 겁에질려 도망치다가 실족하여 고통 속의 서글픔을 드러내는 인물은 인간이죠.

한 사람의 배우가 작품 내에서 2가지의 배역을 맡았고, 이는 분리해서 바라보아야 하는 지점입니다.

그가 왜 곡성의 두메산골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는가에 대해 종구가 양이삼을 통해 묻죠.

처음 대답은 여행, 그리고 재차 물음의 대답은 말해줘도 모를 것이다라고 합니다.

여행이란 대답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꽤 오랜시간 이곳 저곳을 떠돌며 어떤 목적의 행위를 해왔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좀더 관찰 해 보십시다.

초반에 그의 거처를 살펴 보면 밀실이 2개가 등장하죠. 하나는 자물쇠로 잠겨져 있는 사당,

그리고 또 하나는 죽은 사람들의 사진이 수없이 붙어 있는 숨겨진 제단이었고, 이 둘은 잠겨있거나 숨겨져 있지만, 한편으론 하나의 거처 내에 모두 공존합니다.

거처를 보고 다들 외지인의 직업이 도사라고 유추할 수는 있지만, 방이 왜 2개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죠.

제가 보건데 그는 제령의식이나 죽은 사람의 천도제를 지내주기도 하지만, 사술 등으로 주민들을 농락하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일광이 처음 그를 언급하며 '허주' 즉, 헛귀신이라고 하는데, 일광이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면, 악마가 씌인 일본인도사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작품 중반에 한 농가의 사건 현장이 나오고 굿을 하던 흔적이 발견되는데 그 집의 주인인 박춘배가 무당과 부인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나죠.

 

그런 박춘배를 찾아내고 다음 씬에서 그의 사진을 제단에 올려놓고 굿을 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박춘배가 괴질에 걸려 미쳐버린 것은 자신이 악마에 씌였을 때 저지른 과오이거나 혹은 누군가의 잘못으로 깨달은 그가 제령의식이나 천도제를 지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미루어 짐작케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산에서 정갈한 자세로 폭포를 맞고

​일단 교차편집 장면의 일광의 살 굿은 무명을 노리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유추는

일광이 살 굿에서 흰 닭들을 제물로 삼아 차례차례 죽여 통 속에 모으고 그 피를 들이마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통에 얼굴을 담구었다가 드는 씬에서 얼굴이 피로 뒤덮인 컷이 마치

훈도시 차림의 악마가 오버랩 됩니다. 일광이 목을 자른 흰 닭들은 무명에게 날린 살들이고

무명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살 굿이 절정을 맞이하고 일광은 흰 염소를 끌어다 목을 잘라

무명에게 치명타를 날리려 하지만 종구가 나와 굿판을 엎어버리면서 수포로 돌아가죠.

 

이 추론이 결정적인 것은, 담요를 덮으며 몸을 진정시키는 외지인을 바라보며 무명이 등장하는 장면에 입고 있는 적삼이 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처입은 무명은 외지인을 건드리지 않았고,

외지인은 다음날 무사히 잠에서 깨어나죠. 그리고 박춘배의 트럭으로 찾아가자 의도한대로 되지 않았는지 대경실색합니다.

그럼, 무명과 일광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도사는 떠돌이입니다. 그 얘기는 그가 또 다른 '외지인'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의 외지인의 위치는 '용의자'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셨습니다.

그런데, '주종' 관계에서 갈리더군요. 모두들 일본도사의 조력자나 같은 종파의 관계자로

보시는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제가 보건대 이 일광이라는 인물은 일본도사를 이용해 도술을 배우거나 금전적인 반사이익을 취하는 타락한 도사이자, 곡성의 참극을 키운 원흉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소개는 소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데, 대학교수라는 신분이며, 매우 위험한 사람이란 평가가 따르죠. 중후반에 등장하는 카톨릭 사제의 발언은 그를 귀신 들린 사람이라기까지 하여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죠.

 

작품 내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그저 영험한 박수무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죠.

무명을 만나 피를 토하고, 곡성을 떠나는 와중에 나방의 습격을 경험한 피해자로 등장할 뿐입니다. 그가 가해를 하는 장면은 집에 들러 혼이 나간 종구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 뿐이었죠.

엔딩에서 그가 사진이 가득 담겨있던 상자를 쏟는 장면은 그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같은 행태를 반복했다는 의미입니다.

 

이 작품에서의 굿이라는 요소는 매우 결정적인 메타포인데, 영험하다는 소문에 데려온 일광이 무당으로써 사건을 해결한 상황이 단 한번도 없었던거죠.

악마에 씌인 일본인 도사가 사람들을 만나며 괴질을 퍼뜨렸고, 일광은 굿이라는 형태의

주술로써 그들을 광란으로 이끌어 왔던 것입니다.

 

 

 

효진을 위한다며 실상은 무명에게 살을 날리려 굿을 하지만 무명의 말을 믿고 있는 종구가 끝내 굿을 망치고 일광의 연락을 받지 않자 급기야는 종구의 집을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무명과 직접 맞닥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무명에게 역살을 맞고 피와 토사물을

쏟으며 도망치게 되죠.

 

이외에도 일광과 무명의 대립이 느껴졌던 씬이 있었는데 더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사실 무명이라는 인물의 정체 또한 매우 신비한 부분이 많은데

 

서두에 이 작품에 절대악 절대선인 인물은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이어서 효진이를 찾는 종구의 물음에 키와 아이의 이름을 물어보고 종구의 집에 걸려있는 덫을 이야기하는데 덫인 금어초 또한 무명 자신이 달아놓은 것으로 사료됩니다. 금어초에 대한 미스터리 또한 풀리는데

 

작품 도입부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집에 걸려 있던 금어초 역시 무명이 달아 놓았다는

설명이 가능하죠. 아마도 희생된 자들에게도 무명이 접근하여 닭이 세번 울기전에

들어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곤 종구의 차례가 되어 똑같은 이야기를 하였고, 종구 역시 최후에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2번 울기전에 돌아가 버립니다.

 

여기서 왜 무명은 종구에게 닭이 세번 울때까지 돌아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 것일까요?

이것은 종구가 무명을 만나게 된 후에 꾸게 된 2차례의 악몽과 연관이 있습니다.

 

무명은 종구의 딸 효진에게 생긴 일을 알고 있었고, '여자'로써 돕고자 했던 것이죠.

그 이전에 악마에게 겁탈당한 여자들에게도 똑같은 마음으로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닭이 세번 운다는 것은 아침이 온다는 의미이고 현실을 꿈으로 바꾸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인거죠. 그것이 '할미'에게서 받은 것이든간에...

 

그러니 끝까지 무명의 말을 믿고 가지 않았다면 3번째의 악몽으로 끝났을 겁니다.

하지만, 종구는 처음 만났던 무명의 말을 믿었을 때와 달리, 의심을 거두지 않고 결국 닭이 세번

울기전에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박춘배의 야상, 작부의 스웨터, 효진의 머리핀을 보고 오해를 하면서 말이죠.

이 물품들은 사실 종구의 기억 속에 있는 물품들입니다만. 그는 이것들을 부정해 버리죠.

 

 

 

 

 

휴... 쓰고나니 글이 길어졌네요.

 

어쨌든 2회차 관람을 통해 얻은 것은 이것들이고 아마도 다음 관람은 블루레이를 구입하여

홈시어터로 관람 한 이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별 재주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저를 심취하게 글을쓰게 만드는 곡성이라는 이 영화는

제가 2013년에 봤던 연상호감독의 작품인 사이비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저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신기하게도 사이비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네요.

 

 

당신이 믿는 것은 진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