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 평론가가 언급한 올해 상반기 나빴던 영화들.. 그리고
- 작성일
- 12-06-01 14:58
사적인 자리에서 나온 것이긴 한데 <범죄와의 전쟁>, <화차>, <건축학 개론>, <은교>를 꼽더군요.
저는 이 말 듣고 킥킥거리면서 웃었습니다. 이 분의 영화 취향을 알기에 예상했던 말이었습니다.
근디 가만보면 정말 몇년 사이에 한국 영화가 점점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웰 메이드의 그럴듯한 구성에 화면빨 좋은 영화는 나오는데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의 그런 분위기는 없네요.
물에서 막 나온 고기가 펄펄 뛰는 듯한 힘있는 젊은 영화들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독립영화 쪽에서 희망을 거는 사람들도 있는데 <혜화, 동>, <파수꾼>, <밍크코트>, <빗자루 금붕어 되다>, <무산일기>...
이런 영화들은 아직 학생 냄새가 납니다. 교과서적인 연출내에서의 성과에 불과하지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갈 실력 있는 영화로는 안보입니다.
그리고 단편 영화제 심사위원 쪽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 주변의 경제적 궁색함을 한탄하는 영화가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힘이 축빠져서 세상에 대한 한탄을 하는 영화. 미래에 대한 전망은 없고 불안이 가득한 이런 영화들은 한편으로는 이 시대를 반영한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것을 영화로 표현할 때는 더 세련되고 힘있게 다뤄져야 합니다.
최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400번의 구타>를 다시 봤습니다. 트뤼포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를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트뤼포의 자전적인 이 영화에서 주인공 소년을 둘러싼 분위기는 절망적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힘이 넘쳐서 프레임을 뚫고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영화 맨 마지막에 주인공 앙트완이 감화원을 도망쳐 바다로 달려갈 때 왜 그 장면이 그렇게 멋진지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기술적으로는 롱테이크 달리 숏으로 찍은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다른 감독이 그렇게 찍어도 그 분위기가 안나오는 것은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카메라의 눈이 밸런스가 맞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이 따위니깐 내 영화도 이 따위로 만드는거야가 아니라.. 세상은 이따위지만 내 영화는 그 보다 더 크다라는 안목이 그런 영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한국 영화들이 너무 주눅이 들어 있거나 공장에서 찍어낸 찻잔 같은 영화들만 보입니다. 홍상수가 처음으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들고 신비롭게 나타났을 때, 봉준호가 <플랜더스의 개>를 들고 세상을 향해 함성을 질렀을 때, 박찬욱이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권토중래하여 <공동경비구역>을 정조준하여 스크린을 향해 쏘았을 때, 김기덕이 <악어>를 들고 물 밖으로 나왔을 때, 허진호가 <8월의 크리스마스>를 수줍게 우리에게 내밀었을 때... 그때 그런 영화들을 젊은 감독들에게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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