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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클레이터의 시간적 작업이 흥미로운 것은 시간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형식적인 야심이나 고민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그와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이 우리와 친구처럼 마주 걷고 말을 걸며 그 시간의 주름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점입니다. 불확실성과 변수가 두드러지는 작업을 계속 해왔던 그지만 그 중에서도 시간성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12년이라는 기획 아래에서 이전의 링클레이터의 영화들에 비해 순서에 입각한 시간적 서사의 구축에 충실한, 현실에서 가장 일차적이면서 올곧게 흘러가는 시간을 배열하지요.

그래서 단순히 12년 기획 제작의 혁신성(보다는 이것을 실행에 옮긴 감독의 확신적 믿음이 충격적이지만)이라는 것만으로 어떤 대단한 형식적 가치를 기대하며 보게 되면 차라리 <비포 시리즈>가 훨씬 감각적인 영화로 다가오실 겁니다. <비포 시리즈>에서의 흘러가는(혹은 흘러간) 시간이 불러오는 감흥은 셀린느과 제시의 관계가 진행되는 서사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비포 선라이즈>에서의 낭만과 <비포 선셋>에서 한정된 시간, <비포 미드나잇>에서 시간의 무게를 포착하는 그 순간에 있습니다. 그 순간의 조각들을 관객은 제시와 셀린느와 마주하며 맞춰나가며 매번 9년간의 텀 사이에서 상상의 고리를 꿰어갑니다.

하지만 <보이후드>의 이야기는 소년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드라마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고 이어지지만 스크린의 경계를 넘어 우리와 소통하는 하나의 망망대해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링클레이터 영화 특유의 수다로 가득한 순간들과 메이슨이 야구 경기 막간에 핫도그를 먹으러 가는 장면이나 홀로 흙을 파는 것 장면 등이 곳곳에 산재해있는 이 영화에서 성장이라는 사실은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이 축적된 길을 함께 보고 듣고 완성해나가게 되지요.

이 영화가 시간 감각이라는 토양 아래에 놓인 인물들간의 관계를 다루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이전 작품들과는 또 다른 노선이자 경지이며 그의 영화의 집대성이 될 수 있다면, 사실은 정교하게 축조된 거대한 서사 안에서 분절된 시간을 끌어안으며 관객에게까지 그 시간을 체현하게끔 만드는 데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대사와 눈빛이 담긴 마지막 장면까지 보고 나면, 영화를 보며 소년과 같이 보낸 그 세월을 <보이후드>는 과거형으로 추억하는 작품이 아니라 통째로 그 시절의 망막을 떼어내어 재생시켜 우리로 하여금 그 시절을 살아내게 하는 영화라는 것을 비로소 체감하게 됩니다. 시간을 담아내는 영화라는 매체의 하나의 숙명을 명확한 기획의 테두리 안에서 그러한 야심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채로, 스크린 밖으로 말을 걸어오는 영화가 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