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원래 10/3~10/6 3박 4일 일정으로 갔습니다만,

4일 <위플래쉬> 예매를 놓치고 홧김에 10일 야외상영분을 예매해서

당일치기를 해볼까 하다가 어쩌다 폐막날(11일)까지 1박 2일을 더 있었네요.

(돈은 없는데 시간은 현재 많은....?!)


하루 3편 정도씩은 보기로 했는데 (전주에선 그 정도 봤는데) 생각보다 영화를 별로 못 봤습니다.

술자리 비롯해서 이것저것 동선이 겹치다보니..

베스트 : <보이후드><더 홈즈맨><소녀 나타>

베리 굿 : <도원경><침묵의 시선>


굿 : <돌에 새긴 기억>


? : <서유>

소소 : <파솔리니><가디><팀북투><위플래쉬>

배드 : <카프카의 굴>

워스트 : <거짓말>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이전에 소개하기도 했던 <보이후드>는 듣던대로 무척 좋았습니다. 6시 버스 타고 5시간 이상 승차 끝에 부랴부랴 막 도착해서 봤는데도 3시간 가량 되는 상영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얼핏 슬렁슬렁 만든 작품으로 보이지만, 무엇보다 12년이라는 기간을 감독이 책임지고 해냈다는 결과물이 곳곳에 산재해있는 것을 직접 확인하게 되니 실로 놀랍더군요. 이제 10월 23일, 좀만 있으면 개봉이니 그 때 꼭 직접 확인하세요.

<더 홈즈맨>과 <소녀 나타>는 오기전까지 일정이 모호한 탓에 영화들에 대한 사전조사가 부실해서 (그래서 좀 피를 봤습니다 킁..) 사실 부국제 와서야 알게 된 작품들인데, 매혹되었습니다.


<더 홈즈맨>은 토미 리 존스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인데, 큰 감명을 받았네요. 무엇보다 근래에 존 포드를 스크린으로 접하고 할리우드 클래식들을 보며 결국 할리우드가 영화를 품는다는 생각으로 옮겨가고 있는 저로서는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이스트우트, 스필버그 외 몇이나 될까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빠질 수가 없는 끊임 없는 지평선의 매혹은 스크린으로 봐야 그 감흥이 배가 될 것 같습니다. 마치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코엔 형제의 서부극(이면서 동화같은) <더 브레이브>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조각한 듯한 느낌도 듭니다. 토미 리 존스는 기름기 조금 뺀 제프 브리지스. 힐러리 스웽크는 헤일리 스타인펠드로부터. (헤일리 스타인펠드가 말미에 우정출연합니다.) 토미 리 존스의 얼굴을 보면서 스크린 속 배우의 얼굴이 줄 수 있는 스펙터클한 경이도 다시 한번 느껴지더군요. 주름과 웃음과 온갖 감정들이 새겨진 그의 얼굴은 경탄스러웠습니다. 나이가 드시면서 연기도 중후해지시고 연륜이 묻어나오는 것 같네요.
 

<소녀 나타>는 개인적으로 우연히 발견한, 신인 감독으로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는 매우 마음에 드는 영화였습니다. 내용적으로 새로울 것은 없지만 이를 담아내는 감성을 확장하는 방식에서 일련의 특별한 성장영화들로 일가를 이룬 이전 감독들의 자취가 느껴졌다랄까요. 시대적 배경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이를 캐릭터와 밀착시킨채로 교직시키는 훌륭한 성장영화들이 흔히 그렇듯 시대(중국 현대사)의 테두리 안에서의 소녀를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담아냈습니다. 떠나보내야만 하는 인연(들)의 아스라함 같은 것들이나, <연연풍진>을 비롯한 대만 뉴웨이브 작가들의 (감성의) 잔영 혹은 언제나 제 머리 속에서 재생되는, 제 영화 리스트 만신전에 오른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들 (<벌집의 정령><남쪽>)도 다시금 문뜻 꺼내보고 싶게끔 만들더군요. 제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류의 영화인 듯 했습니다.


<도원경>은 우연히 두 번 보게 된 영화네요. 처음 볼 땐 피곤에 절어서 제대로 감상을 못해서 다시 볼 땐 눈에 불을 켜고 봤는데, 상당히 인상적인 구석들이 존재하는 작품입니다. 거의 Fixed (고정) 카메라로 전 분량을 촬영한 작품으로서 구도와 자연 자체가 이 영화의 하나의 미학이 됐는데, 마치 풍경화의 웨스턴이라고 해야할까요. 1.85:1로 촬영한 후에 후반작업에서 4:3 화면으로 자른 화면비율도 독특합니다.


<침묵의 시선>은 작년에 <액트 오브 킬링>이라는 인도네시아 군부 정권 시절 학살단들의 시점으로 담은 다큐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신작이자 올해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번엔 전작의 반대 지점에서 학살단들에 의해 친형이 살해된 동생의 시점에서 사실 굉장히 다이나믹한 화술을 구사한다는 전작을 못 봐서 비교는 못 하겠지만, 이 작품은 꽤나 직설적인 화법을 가졌는데 훌륭한 다큐멘터리는 카메라가 좀 더 들어갈 때 들어갈 줄 아는데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감독이 미국 사람인데 덴마크에서 활동하고 덴마크 스텝진과 같이 작업을 하는데, 이걸 보면서 근래 <아르마딜로>도 그렇고 덴마크 정부나 덴마크 다큐 스텝진은 정말 열려있고 열의가 넘치는 것 같네요. 덴마크는 신흥 다큐 강국인듯.


<돌에 새긴 기억>은 그냥 이야기만 보고 좀 끌려서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1988년 이라크의 쿠르드인 대량학살에 대한 영화를 촬영하는 것이 주내용인데, 여주인공부터 찾기 어려워 난항을 겪는 것부터 시작해서 캐스팅된 여주인공도 시시껀껀 법정 보호자인 삼촌과 그녀를 흠모하는 그의 아들 등으로 인해 끊임없이 영화 제작이 지연됩니다. 설상가상 감독마저.... 여튼 개인적으로 영화 제작 촬영과 떼 놓을 수 없는 입장이다보니 약간 메타 영화적인 측면이 있기에 더 흥미롭게 느껴진 작품이었어요.

차이밍량의 근작들을 본 게 없지만 (차이밍량 영화를 봤다고 해봐야 <하류>?) 워낙 주목할만한 작가이고, 작년 <떠돌이 개>에서의 악명 높은 마지막 15분 롱테이크 이야기만 듣고 <서유>를 보았는데 흐.. 1시간 가량의 영화가 단 세 개의 쇼트로만 이루어져있습니다. 뭐 거기까진 무수한 롱테이크 영화들을 봤기에 문제는 없는데,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움직임이라는 건 오로지 승려가 0.초 분량으로 발을 앞으로 내딛는 게 답니다. 이것이 강렬한 이미지를 발산하기도, 결국 영화 생각하게끔 하는데 차이밍량의 근작들도 같이 보면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파솔리니><가디><팀북투><위플래쉬>등은 더 간략하게...는 아니겠네요.


<파솔리니>도 아벨 페라라 감독만 보고 일단 보게 된 영화입니다. 사실 최근에 일부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근작들 보지도 못했지만요. 개인적으론 이 영화, 좀 어정쩡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애초에 무난한 전기 드라마를 만들 사람은 전혀 아닙니다만, 페라라가 이전보다 좀 온순해졌다지만 여전히 수위가 강한데 그것이 그렇다고 매력을 취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길을 잃은 느낌이랄까요.


<가디>는 뉴커런츠 부문 영화로 KNN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 보자마자 무조건 관객상 받겠구나 싶더라구요. 다른 무수히 많은 영화들을 못 봤기에 알 길이 없습니다만, 아마 이번 영화제 모든 영화들을 통틀어 가장 쉽고 대중적이고 따뜻한 영화라고 장담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영화 끝나고 GV도 있었는데, 여튼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감독이 첫 장편을 찍을 때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렇지 않았던 점은 인상적이더군요.


<팀북투>는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작품입니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더러 있기도 했습니다만 (특히 탄압에 의해 축구공도 못 쓰게 되자, 공 없이 축구하는 축구 장면) 무언가 산만하고 방만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올해 부산 최고의 화제작 한 편만 꼽으라면 당연히 이 영화일겁니다. <위플래쉬>. 10일자 상영에는 5000석 영화의전당 야외무대가 매진 될 정도로 입소문 화끈하게 제대로 탔는데, 듣던데로 화끈한 영화더라구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다른 곳에 곁눈질하지 않고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작품입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은 측면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개인적으론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수시로 튀어나와서 온전히 젖지 못했습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과도하게 나는 감상에 젖지 않아요! 라는 식으로 인물과 거리를 두면서 플롯을 꼬고 자기가 쿨하다는 것을 의식한다는 느낌이릴까요. 로맨스라든지 곁가지 잔치레들을 쳐낸 것이 좋은 선택이기도 하겠지만, 굳이 여성 캐릭터를 그렇게 소비하는 것이 쿨한 자세인지는. 그리고 이 영화의 쾌감 자체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영화적인 방식이 주요했다기 보다는 역시 음악의 힘이 컸다고 봅니다. 마무리도 예상이 가능했구요. 이것은 제가 꼰대여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저만 그냥 그랬던 듯 싶네요. 킁...


그리고 나뻤던 영화들..


<카프카의 굴>. 역시 제목에 위대한 작가, 문학이 들어간, 혹은 그것을 소재로 삼은 영화치고 괜찮은 영화 찾기 어렵다는 건 진리인 듯 싶군요. 사실 저도 한 편으론 별로일 것 같았지만, 4일 그 회차에 <위플래쉬>를 구하지 못해 비게 되어서 일단 봤던 작품입니다. 거기에 믿어서는 안 될 카탈로그 소개글을 보고 영화적인 부분에서 뭔가 얻어갈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 봤는데.... 물론 내면의 시각화가 무척이나 어렵기도 하고 (특히나 카프카의 문학을 옮긴다면) 감독 본인이 카프카 독백 문체를 그대로 옮기는 작업을 누구도 한 적이 없지 않았느냐 라고 했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보다보면 내가 영화를 보는건지 영화가 내레이션에 취하는건지 헷갈리는 지경까지 오더군요. 촬영을 비롯 기술적인 완성도 자체는 뛰어납니다만 외화내빈이라는 것이 적합한 영화였습니다.



<거짓말>....흐..하.. 정말 전형적인 생각 많은(것처럼 보일뿐인 힘만 들어간) 강박증 걸린 독립영화 + 연출 데뷔작의 스테레오타입의 끝을 보여줍니다. 영화적인 완성도와 별개로 정말 짜증나고 불쾌한 캐릭터는 덤. 극단적인 판타지가 조롱과 비판의 우화의 한 일환이 될 수 있지만, 넷에서 된장 김치로 욕 먹는 여성의 사례 이상가는 캐릭터가 나옵니다. 근래에 <제보자>나 이번 폐막작 <갱스터의 월급날> 같은 작품도 어두운 장면에서 노이즈가 지글지글 발생한다고 해서 훨씬 열악한 독립영화에 뭐 큰 말을 하진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밤 장면만 되면 그 심각한 암부의 지글거림은.... 조명의 탓은 아닐꺼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허망한 마지막 숏....



어쩌다보니 영화 하나하나에 대해서 그래도 쓰다보니까 꽤 길어졌네요.. 짤막은 아니군요. 물론 영양가는 쥐뿔도 없습니다만. 그래도 인상에 남는 작품들이 더러 있어서 다행이었던,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만나는 재미가 있던 영화제였습니다.


여기서 <보이후드> 코 앞 개봉, <위플래쉬> 수입, <침묵의 시선>은 이번에 <액트 오브 킬링>이 배급, 개봉된다고 하니 언젠가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