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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이제 다 지났는가? 올해에는 봄을 제대로 느끼지도, 즐기지도 못한 채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사계절 중 봄이라는 계절은 사람들에게 밝은 이미지와 단어들을 연상하게 한다. 탄생, 생명, 꽃, 화사함, 단란함, 새싹, 나들이, 시작, 성장 등등. 그런데 불행히도 이번에는 이런 밝은 단어들과는 거리가 먼 봄을 보냈다. 그리고 또 언젠가부터는 일상에 섞여, 봄날의 단어들을 뒤로 한 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 속의 시인은 어느 봄날 나귀를 재촉하여 맑은 시냇길을 지나며 한적한 곳을 찾고 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 나귀는 아무렇게나 풀어놓은 채 자신은 시냇가 모래밭에 누워버린다. 봄이라 했으니, 따사로운 햇살에 싱그러운 풀 내음이 있을 것이고 주위를 감도는 꽃향기에 흐르는 물소리가 더해지고 있으리라.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해는 서산에 지고 있다.

  시인은 무엇 때문에 이런 한적한 곳을 찾아 자연에 몸을 내맡겼을까? 번뇌를 가득 안고 마음을 추스르려는 것이었을까? 그저 봄날의 정취에 흠뻑 빠져보려 했던 것일까? 아무런들 어떠하겠는가. 지금 이 순간이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한 것을. 무언가를 생각하고 찾았더라도 그 생각마저 잊어버렸으리라.

  현대를 사는 우리는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바쁘다는 것을 고마워해야 하기도 할 것이다. 물론 바쁨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많다. 나와 가족의 의식주는 바로 그 바쁨이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허나 바쁨이 우리에게서 앗아가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나와 주변과의 관계 맺음과 여유로운 마음을 자꾸만 앗아가고 있다. 그리고 몸은 일과(日課)를 마쳤지만, 머리에선 일과를 털어낼 수 없는 경우에는 비록 우리가 물리적 휴식시간을 가진다 해도 일상의 바쁨에서 결코 벗어난 것은 아니다.

  시인이 찾았던 맑은 물가 모래밭은 어디일까? 이제 봄은 멀리 가고 없지만, 시인의 나귀를 빌려 타고 시인이 누웠던 그 모래밭에 몸을 누이고 싶다. 나귀를 빌리지 못한다면 허위허위 걸어서라도 그곳에 가고 싶다. 그리고 지는 석양뿐 아니라 떠오르는 달빛도 그곳에서 맞이하고 싶다.

 

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기획예산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