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예전에 후추에서 봤던 글입니다. 분석이 매우 날카로운 명문입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능력이 정말 부럽네요.
========================================================================================================

내가 처음 농구를 볼 때엔 이충희-김현준 같은 걸출한 가드/슈터들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던 시절 이였다. 하여간 그탓에 나는 농구에서 제일 멋있는 포지션이 슈팅가드라고 생각했고 사실 지금까지도 그런 편견(?)은 남아있어서 요즘도 KBL을 볼 때면 에이 저렇게 슈팅가드가 없어서 무슨 재미야...라고 불평을 늘어놓게 된다. 그런면에서 용산고 시절부터 주는것 없이 맘에 안들었던 김병쳘선수, 요즘은 꽤나 좋아진다.

하여간 나의 이런 슈팅가드에 대한 편견을 조금 수정해 주었던 선수는 강동희도 김유택도 허재도 서장훈도 아닌 이상민 선수이다. 이상민 선수를 보면서 아..포인트 가드란게 정말 멋진 포지션이란걸 알게 되었다. 이상민이 나오는 경기를 보면 "송곳 같은 패스"라는 말이 가끔 나오는데 별로 참신하지도 않은 이말은 이상민의 어시스트를 가장 잘 표현해 준다. 그만큼 그의 패스는 공간을 뚫는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틈이라도 그의 손을 통하면 그야말로 송곳이 도화지를 뚫고 나가듯 공은 어김없이 맥도웰에게 서장훈에게 민랜드에게 조성원에 가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민을 2:2를 위한 가드라고 표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의 패스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네명의 선수가 얽히고 섥힌 좁은 공간에서 선수가 서로 빠르게 움직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상민의 패스는 그 공간을 빠르게 침투한다.그렇게 만들어낸 득점을 상대편의 입장에서 보는 것은 꽤나 괴로운 일이다. 그야말로 손쓸수 있는 틈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요즘 인기를 얻고있는 김승현은 이상민과는 조금 다르다. 이상민의 패스가 패스 자체에 매력이 있다면 김승현의 패스는 패스 이전의 동작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는 이상민처럼 없는 공간을 뚫어가면서 경기하는것 보다 자신이 공간을 만들어주는 데 뛰어난 선수이다. 그는 공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많은 페이크와 방향 전환을 한다. 상대가 김승현의 동작대로 움직일때 그 반대편에서 생기는 공간에 김승현의 패스가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김승현의 패스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2:2보다는 5:5이며 속공이다. 이상민과는 반대로 공간이 넓어질수록 그의 능력은 더 많이 발휘된다. 코트 비전의 문제이기 보단 공간 활용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플레이는 창의적이며 화려하다. 경기를 이기는데에는 어떤지 몰라도 팬들을 사로잡는데에는 이상민 보다는 김승현이 제격이다. 이상민의 2:2가 알고도 당하는 일이라면, 김승현의 어시스트는 생각하지 못하는 곳에서 당하게 된다. 때로는 자신의 동료까지 짐작지 못하는 패스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을 보는것도 팬 입장에선 별책 부록이다.

이상민과 김승현이 공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다른 선수라면 허재는 공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가드이다. 허재에게 필요한건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다. 허재에게 있어 패스를 어디에 해야 할지는 별로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다만 "언제"하는 것이 문제이다. 왜냐하면 선수가 움직이기만 한다면, 공간은 언젠가는 나기 때문이다.허재의 어시스트는 공을 받는 선수가 움직이는 순간에 일어난다. 김주성이 허재의 어시스트를 받는 가장 좋은 선수가 될 수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주성은 신장이 크므로 일단 공간에 대한 부담을 줄여준다. 게다가 그는 빠르게 움직인다. 수비수는 공격수의 동작에 따라 움직으므로 언제나 한발 늦게 되어 있다.허재는 이 한발의 시간을 노치지 않는다. 정말 그 찰라와 같은 시간에 공은 이미 김주성에게 가 있다. 아마 김주성은 자신이 움직이기만 하면 허재는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공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