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억해보는 08총선 저승사자 공심위.....(2)
- 작성일
- 14-06-07 16:52
4) 여론 조사와 현역 의원 탈락 기준
비리 배제기준이 발표되고 난 뒤 그 당사자들의 반응이 아주 복잡했다. 거의 자신들의 억울함을 떠들어대면서 공심위원들을 공격하고 나섰다. 별별 수사를 동원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그중에서도 노무현 계열로 분류되는 안희정은 조선시대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들이 홍제천에서 더러움을 씻게 한 고사를 들고 깨끗하게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 장부다운 기개를 보여 주었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큰 규정을 만들어놓고 조금 손쉽게 다른 규정을 만들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3월9일부터 면접 점수와 서류 심사 점수를 합산하고 다시 여론조사를 실시해 50 대 50의 비율로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여론조사를 중시한 것이다. 이어 현역 국회의원 교체를 위한 규정이 마련됐다. 그 세부 사항은 당의 정책위원장인 최인기의 아이디어로 준비됐다. 대통합신당 소속이 다수인 현역 의원 교체는 국민적 여망이어서 결코 범상하게 넘어갈 수 없었다.
현역 의원 교체기준은 상임위 출석률, 본회의 출석률, 의총 출석률, 법안 발의와 통과 수, 중앙 당직과 국회직 공헌도 등 5가지로 잡았다. 이 기준에서 D를 맞으면 탈락시키기로 했다. 이 현역 탈락기준도 우리나라 정당 사상 또는 공천 사상 첫 도입의 기록을 세운 것이다. 또 호남 출신 의원 탈락은 그 특수성으로 하여 30% 수준, 다른 지역 출신 의원은 20% 이하로 정했다.
마지막으로 일반 규정 외에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다. 하나는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세 번 받으면 3진 아웃시키는 벌점규정을 둔 것이다. 이는 사회질서와 법질서를 존중해달라는 표현이었다. 또 하나는 품위규정을 둔 것이다. 여성 장애인 비하발언을 일삼는다든지, 국회에서 면책특권을 믿고 허장성세 또는 막말을 마구 한다든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자주 한다든지 한 경우 별점을 준 것이다. 이 명문 기준도 아마 처음 활용했을 것이다.
그런 뒤 실사에 들어갔다. 호남 30% 기준에 따라 하위 점수를 받은 9명의 탈락이 확정되자 또다시 빗발치는 항의와 해명이 이어졌으며 또 다른 지역의 의원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김근태는 복지부장관, 당의 원내대표 또는 대선 경선후보로 활동한 탓으로 위 규정에서 D를 받았다. 탈락 마지막 규정에 따르면 구제 대상이 되어야 했다. 김근태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고 당의 간판이지 않은가? 그가 탈락된다면 서울 지역의 파장이 클 것이요, 당도 요동을 칠 것이다.
하지만 원칙을 고수하려는 분위기가 있어서 3일 동안 논란이 벌어졌고 탈락의 분위기에 휩쓸렸다. 그러자 박재승·장병화·인병선·박경철·이이화는 오피스텔에 모여 대책을 논의한 결과 재론해 구제하기로 합의했다. 정해구는 배제 반대를 표명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그리하여 어렵사리 예외를 두어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비밀 투표를 실시한 결과 찬성 11, 반대 1로 나와 공천을 결정지었다. 반대 1이 누구인지를 두고 서로 농담을 주고 받았다. 이 사실이 흘러나가 한 때 김근태 탈락설이 유포되기도 했다.
비리 배제기준이 발표되고 난 뒤 그 당사자들의 반응이 아주 복잡했다. 거의 자신들의 억울함을 떠들어대면서 공심위원들을 공격하고 나섰다. 별별 수사를 동원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그중에서도 노무현 계열로 분류되는 안희정은 조선시대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들이 홍제천에서 더러움을 씻게 한 고사를 들고 깨끗하게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 장부다운 기개를 보여 주었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큰 규정을 만들어놓고 조금 손쉽게 다른 규정을 만들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3월9일부터 면접 점수와 서류 심사 점수를 합산하고 다시 여론조사를 실시해 50 대 50의 비율로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여론조사를 중시한 것이다. 이어 현역 국회의원 교체를 위한 규정이 마련됐다. 그 세부 사항은 당의 정책위원장인 최인기의 아이디어로 준비됐다. 대통합신당 소속이 다수인 현역 의원 교체는 국민적 여망이어서 결코 범상하게 넘어갈 수 없었다.
현역 의원 교체기준은 상임위 출석률, 본회의 출석률, 의총 출석률, 법안 발의와 통과 수, 중앙 당직과 국회직 공헌도 등 5가지로 잡았다. 이 기준에서 D를 맞으면 탈락시키기로 했다. 이 현역 탈락기준도 우리나라 정당 사상 또는 공천 사상 첫 도입의 기록을 세운 것이다. 또 호남 출신 의원 탈락은 그 특수성으로 하여 30% 수준, 다른 지역 출신 의원은 20% 이하로 정했다.
마지막으로 일반 규정 외에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다. 하나는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세 번 받으면 3진 아웃시키는 벌점규정을 둔 것이다. 이는 사회질서와 법질서를 존중해달라는 표현이었다. 또 하나는 품위규정을 둔 것이다. 여성 장애인 비하발언을 일삼는다든지, 국회에서 면책특권을 믿고 허장성세 또는 막말을 마구 한다든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자주 한다든지 한 경우 별점을 준 것이다. 이 명문 기준도 아마 처음 활용했을 것이다.
그런 뒤 실사에 들어갔다. 호남 30% 기준에 따라 하위 점수를 받은 9명의 탈락이 확정되자 또다시 빗발치는 항의와 해명이 이어졌으며 또 다른 지역의 의원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김근태는 복지부장관, 당의 원내대표 또는 대선 경선후보로 활동한 탓으로 위 규정에서 D를 받았다. 탈락 마지막 규정에 따르면 구제 대상이 되어야 했다. 김근태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고 당의 간판이지 않은가? 그가 탈락된다면 서울 지역의 파장이 클 것이요, 당도 요동을 칠 것이다.
하지만 원칙을 고수하려는 분위기가 있어서 3일 동안 논란이 벌어졌고 탈락의 분위기에 휩쓸렸다. 그러자 박재승·장병화·인병선·박경철·이이화는 오피스텔에 모여 대책을 논의한 결과 재론해 구제하기로 합의했다. 정해구는 배제 반대를 표명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그리하여 어렵사리 예외를 두어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비밀 투표를 실시한 결과 찬성 11, 반대 1로 나와 공천을 결정지었다. 반대 1이 누구인지를 두고 서로 농담을 주고 받았다. 이 사실이 흘러나가 한 때 김근태 탈락설이 유포되기도 했다.
5) 당의 견제와 전략공천
우리 위원들은 서류심사 자료를 보면서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영남지역은 40여곳이 한 명의 신청자도 없었으며 충청·강원·경기도의 일부 지역에도 신청자가 없었다. 그 대신 호남지역에는 한 지역구에 많게는 10명 이상의 신청자들이 몰려들었다. 국회의원 150여명을 확보하고 있는 제1당의 모습이 이러했다. 왜 이 지경으로 위축되었는가? 또 전국적으로 단수 후보 지역이 71곳이었다. 경쟁자가 없는 곳이 이토록 많은 것은 당이 국민적 인기가 없음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이다.
어쨌든 단수 신청자 지역을 먼저 심사해 우선 61곳의 공천 명단을 3월6일 확정해 최고회의에 올려 발표를 기다렸다. 그런데 최고회의에서는 “검토했지만 심사 결과 보고 자료가 미비하다”는 반대 의견이 제기되어 발표를 미뤘다. 심상치 않은 기류였다. 현역 의원 또는 단수 신청자는 빨리 공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장의 선거운동에서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아우성이었다. 곧 선거법상 3월10일부터는 당원 집회교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상천은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단수지역이라도 현역 물갈이 차원에서 전략공천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공심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8일부터 복수 경합지역 심사에 들어갔고, 17일까지 128곳의 공천을 완료했다.
다음 전략공천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첫째는 미신청 지역에 새 인물을 추천해 공천하는 경우이다. 이는 주로 영남지역에 몰려 있었다. 둘째는 서울·경기 등 비교적 신청자가 적은 곳에 명망 있는 인물을 배치하는 것이다. 셋째는 그야말로 당의 필요에 따라 특수 지역을 선정해 공천하는 것이다. 첫째, 둘째는 별 논란의 여지가 없었으나 셋째는 경우가 달랐다.
전략공천은 당규에 위원장이 합의를 해 주게 되어 있었으므로 대표들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 전략공천을 놓고 당 대표와 박재승 세 사람은 줄다리기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절충이 어렵게 되자 마지막 단계에서 박상천은 자신의 몫으로 호남지역 5곳의 전략공천을 박재승에게 요구했지만 박재승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될 호남지역에 무슨 전략공천이 필요하냐고 맞섰다. 이 전략공천 5곳은 박상천이 자기세력을 박으려는 의도였다. 원래 당 통합 과정에서 서로 공천 지분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우리 공심위에서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공천 기준에 맞는지 여부의 잣대만을 가지고 결정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창근이 낙마했다. 돈 많은 국창근은 구민주당에서 많은 공헌을 해서 전남 도당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1996년 총선에서 당선되었으나 선거법과 금융실명제법을 어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의원 시절 유럽 여행에서 세계 최고가의 양주를 구입하는 따위의 품위 문제로 말썽을 빚은 인물이었다. 당연히 우리는 그를 배제했던 것이다.
그런데 박상천은 그를 구제하기 위해, 담양·곡성·구례 지역 공천을 받은 당 원내대표인 김효석의 공천 발표를 보류하게 하고 광주 또는 서울지역으로 차출하려 했다. 그 자리에 국창근을 공천하려는 뜻이었다. 이 요구를 박재승이 다시 거절했고 김효석도 반발했다. 박상천의 요구는 하나도 관철될 수 없었다. 금고 배제 기준의 제1라운드에서 손학규가 맥없이 물러섰다면 지역공천과 전략공천의 제2라운드에서는 박상천이 KO패하고 말았다. 박재승의 일방적 승리였던 셈이다.
이를 두고 김민석은 최고회의에서 공천심사를 두고 “박재승 전횡공천” 또는 “외인군단 연줄 공천”이라고 맹비난하고 나섰고, 정균환은 “공심위는 동학당이다. 이이화는 동학 관련 단체의 인사들에게 몇 억 먹고 공천을 약속했다”고 소문을 퍼뜨린 적이 있는데 이때에 와서는 “공심위원들은 노빠들이다”라고 했다. 한편 박상천은 공심위 의결정족수를 과반수에서 3분의 2로 개정하자고 제의했다. 박상천은 한발 더 나가, 17일 오후 8시쯤 공천 확정자 합의를 거부하고 공심위 해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날 오후 9시 무렵 우리 외부 위원들은 당산동 복집에 모여 간담을 가졌는데 박재승은 더 견딜 수 없어 사퇴를 고려한다고 말하면서 그 성명서를 이이화보고 작성하라고 당부했다. 그리하여 나는 순진하게도 모처럼 집으로 돌아와 밤늦게 성명서 초안을 작성했다.
한편 손학규는 당 대표인데도 지역구에 신청을 내지 않았으며,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도 자신의 지역구인 전주에 신청을 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공심위원들과 재야 인사들에게서 서울지역에 출마해서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전략지역 문제가 일어날 무렵 두 사람은 회동을 하고 손학규는 종로구, 정동영은 동작을에 출마하기로 합의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으며 강금실은 비례대표를 포기하고 선대위원장을 맡아 지원 유세를 벌이기로 했다.
“비례대표 15번안에 두 대표 사람들만 12명, 이게 뭔가”
6) 밀실-나눠 먹기의 비례공천과 공심위의 위기
마지막 단계로 비례대표에 대한 심사가 남아 있었다. 당에서는 무슨 속셈이 있었는지 심사위원과 신청자를 비밀에 부치고 후보 마감 며칠 전까지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비례대표 공천은 당규에 공심위 위원장이 심사위원장을 겸임하게 되어 있지만 12명의 심사위원은 최고회의의 심의를 거쳐 당 공동대표가 임명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대표들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비례대표 상위 30%의 순번은 두 공동대표와 공심위 위원장의 합의로 결정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심사를 앞두고도 박재승에게 심사위원 명단과 신청자 명단이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박재승은 그 명단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당에서는 무소식이었다. 3월19일 오후 5시에야 팩스로 심사위원 명단을 보내왔다. 그 명단이 어렵사리 전달되어 살펴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당직자 참여라고 변명했지만 김민석·신계륜·김광삼 등 지역 공천의 탈락자들이 들어가 있었고 강금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 박재승은 1시간 동안 침묵을 지키며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듯했다. 그런 뒤 우리들 곧 박재승·인병선·장병화·이이화·박경철 등은 회의장에서 잠정 간담회를 가졌다. 우리는 항의를 하고 퇴진을 각오하자고 합의했다. 박재승은 긴급히 위원회의를 소집하고 “나는 정신병원에 가서 정신감정을 받아 보아야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박경철은 곧이어 위원들이 사퇴할 수 있다는 뜻을 기자들에게 공포했다.
또 비례대표 신청자 명단을 보고도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말이 직능대표이지, 상위 순번 안에 주가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 당직자들도 모르는 당직자가 포함되어 있었고, 당의 원로 아들로서 지역구에 신청했던 애숭이,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청와대 공보비서관을 지낸 인물 따위가 상위 순번에 들어 있었다. 그 대신 참신한 정치 신인이나 재야 명망가, 시민사회단체나 문화예술계 인사가 거의 누락되어 있었다. 사실 통합민주당에 공천 혁명이 일어난다는 말을 믿고 정치 신인들을 포함해 250여명이 심사비 등의 명목으로 300여만원을 내고 뒤늦게 몰려들었는데 이들이 상위 순번에서 거의 빠져 버렸다.
박재승·인병선·이이화·박경철은 청진동 올갱이집에서 밤늦게 회합을 갖고 당면 문제를 논의했다. 박재승은 예정된 대로 제주도 4·3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고, 나는 그동안의 경과를 적어 국민에게 알리는 마지막 사퇴 성명서를 작성했다.(공표되지 않았다)
20일 아침부터 이 소문이 널리 퍼져 공심위 위원들이 사퇴한다는 말이 떠돌았다. 함세웅·나병식 등 재야인사들은 공심위를 깨서는 안 된다고 간절하게 요청을 해왔고 언론들도 부쩍 귀추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렵게 박재승과 통화를 하여 결코 사퇴하는 일은 없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안심했고, 인병선은 최고위원 김상희와 통화해 해촉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전해 받았다.
한편 김부겸은 손학규를 설득했고, 박경철은 이 사실을 박재승에게 전달했다. 그 결과 손학규는 “김, 신 두 사람을 전략공천으로 구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이에 박재승은 두 사람의 심사위원 선정을 인정했다.
21일 아침 손학규·박재승은 조찬회동을 했고, 박상천은 이를 보이코트해 참석하지 않았다. 이때 손학규는 “박재승만 영웅을 만든다”고 불만에 찬 소리를 질렀다고도 전한다. 박재승은 아침 기자회견에서 “대의에 입각해야 한다. 자존심을 버렸다”고 다소 추상적인 말로 비례심사에 참여할 것임을 암시했다.
비례대표는 우리가 우려한 대로 두 대표가 밀실에서 나눠먹기로 순번을 결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당선 가능성이 있는 15번 안에 손학규계 8명, 박상천계 4명이라고도 한다. 당 관계자는 뒷날 당선가능 순번인 15명에게서 당비를 최고 1억원까지 받았다고 말했으나 당 안팎과 정치판에서는 ‘검은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당사자가 아니고는 알 수 없다고 수군거렸다. 그러니 한나라당 등 다른 정당과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박재승은 비례심사에 참여하면서 망망대해에 혼자 내팽개쳐진 느낌이란 말로 외로움을 털어냈다. 그가 한 일은 딱 두 가지였다고 하소연했다. 하나는 원로의 아들을 당선 순번에서 벗어나게 뒤로 돌린 것, 둘째는 전두환 비서관 출신 인사를 탈락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둘째의 경우 손학규는 당료를 시켜 집요하게 당선권 안에 놓으려 시도했으나 박재승은 두 시간에 걸쳐 정체성 발언을 통해 기어코 막아냈다. 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당료들에게 휘말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비례대표 명단이 발표되자 언론의 비판을 호되게 받았고 시민의 항의도 연이었다. 제3라운드에서는 박재승이 완패한 것이다. 그리하여 “박재승 신드롬”은 마지막 단계에서 빛을 잃고 말았다. 국민들은 그 동안 쌓은 여망을 한 순간에 허물었다고 왁자하게 떠들었다. 그러나 총선에서 81석을 확보하지 않았던가?
우리 위원들은 서류심사 자료를 보면서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영남지역은 40여곳이 한 명의 신청자도 없었으며 충청·강원·경기도의 일부 지역에도 신청자가 없었다. 그 대신 호남지역에는 한 지역구에 많게는 10명 이상의 신청자들이 몰려들었다. 국회의원 150여명을 확보하고 있는 제1당의 모습이 이러했다. 왜 이 지경으로 위축되었는가? 또 전국적으로 단수 후보 지역이 71곳이었다. 경쟁자가 없는 곳이 이토록 많은 것은 당이 국민적 인기가 없음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이다.
어쨌든 단수 신청자 지역을 먼저 심사해 우선 61곳의 공천 명단을 3월6일 확정해 최고회의에 올려 발표를 기다렸다. 그런데 최고회의에서는 “검토했지만 심사 결과 보고 자료가 미비하다”는 반대 의견이 제기되어 발표를 미뤘다. 심상치 않은 기류였다. 현역 의원 또는 단수 신청자는 빨리 공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장의 선거운동에서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아우성이었다. 곧 선거법상 3월10일부터는 당원 집회교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상천은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단수지역이라도 현역 물갈이 차원에서 전략공천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공심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8일부터 복수 경합지역 심사에 들어갔고, 17일까지 128곳의 공천을 완료했다.
다음 전략공천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첫째는 미신청 지역에 새 인물을 추천해 공천하는 경우이다. 이는 주로 영남지역에 몰려 있었다. 둘째는 서울·경기 등 비교적 신청자가 적은 곳에 명망 있는 인물을 배치하는 것이다. 셋째는 그야말로 당의 필요에 따라 특수 지역을 선정해 공천하는 것이다. 첫째, 둘째는 별 논란의 여지가 없었으나 셋째는 경우가 달랐다.
전략공천은 당규에 위원장이 합의를 해 주게 되어 있었으므로 대표들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 전략공천을 놓고 당 대표와 박재승 세 사람은 줄다리기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절충이 어렵게 되자 마지막 단계에서 박상천은 자신의 몫으로 호남지역 5곳의 전략공천을 박재승에게 요구했지만 박재승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될 호남지역에 무슨 전략공천이 필요하냐고 맞섰다. 이 전략공천 5곳은 박상천이 자기세력을 박으려는 의도였다. 원래 당 통합 과정에서 서로 공천 지분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우리 공심위에서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공천 기준에 맞는지 여부의 잣대만을 가지고 결정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창근이 낙마했다. 돈 많은 국창근은 구민주당에서 많은 공헌을 해서 전남 도당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1996년 총선에서 당선되었으나 선거법과 금융실명제법을 어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의원 시절 유럽 여행에서 세계 최고가의 양주를 구입하는 따위의 품위 문제로 말썽을 빚은 인물이었다. 당연히 우리는 그를 배제했던 것이다.
그런데 박상천은 그를 구제하기 위해, 담양·곡성·구례 지역 공천을 받은 당 원내대표인 김효석의 공천 발표를 보류하게 하고 광주 또는 서울지역으로 차출하려 했다. 그 자리에 국창근을 공천하려는 뜻이었다. 이 요구를 박재승이 다시 거절했고 김효석도 반발했다. 박상천의 요구는 하나도 관철될 수 없었다. 금고 배제 기준의 제1라운드에서 손학규가 맥없이 물러섰다면 지역공천과 전략공천의 제2라운드에서는 박상천이 KO패하고 말았다. 박재승의 일방적 승리였던 셈이다.
이를 두고 김민석은 최고회의에서 공천심사를 두고 “박재승 전횡공천” 또는 “외인군단 연줄 공천”이라고 맹비난하고 나섰고, 정균환은 “공심위는 동학당이다. 이이화는 동학 관련 단체의 인사들에게 몇 억 먹고 공천을 약속했다”고 소문을 퍼뜨린 적이 있는데 이때에 와서는 “공심위원들은 노빠들이다”라고 했다. 한편 박상천은 공심위 의결정족수를 과반수에서 3분의 2로 개정하자고 제의했다. 박상천은 한발 더 나가, 17일 오후 8시쯤 공천 확정자 합의를 거부하고 공심위 해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날 오후 9시 무렵 우리 외부 위원들은 당산동 복집에 모여 간담을 가졌는데 박재승은 더 견딜 수 없어 사퇴를 고려한다고 말하면서 그 성명서를 이이화보고 작성하라고 당부했다. 그리하여 나는 순진하게도 모처럼 집으로 돌아와 밤늦게 성명서 초안을 작성했다.
한편 손학규는 당 대표인데도 지역구에 신청을 내지 않았으며,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도 자신의 지역구인 전주에 신청을 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공심위원들과 재야 인사들에게서 서울지역에 출마해서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전략지역 문제가 일어날 무렵 두 사람은 회동을 하고 손학규는 종로구, 정동영은 동작을에 출마하기로 합의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으며 강금실은 비례대표를 포기하고 선대위원장을 맡아 지원 유세를 벌이기로 했다.
“비례대표 15번안에 두 대표 사람들만 12명, 이게 뭔가”
6) 밀실-나눠 먹기의 비례공천과 공심위의 위기
마지막 단계로 비례대표에 대한 심사가 남아 있었다. 당에서는 무슨 속셈이 있었는지 심사위원과 신청자를 비밀에 부치고 후보 마감 며칠 전까지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비례대표 공천은 당규에 공심위 위원장이 심사위원장을 겸임하게 되어 있지만 12명의 심사위원은 최고회의의 심의를 거쳐 당 공동대표가 임명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대표들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비례대표 상위 30%의 순번은 두 공동대표와 공심위 위원장의 합의로 결정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심사를 앞두고도 박재승에게 심사위원 명단과 신청자 명단이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박재승은 그 명단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당에서는 무소식이었다. 3월19일 오후 5시에야 팩스로 심사위원 명단을 보내왔다. 그 명단이 어렵사리 전달되어 살펴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당직자 참여라고 변명했지만 김민석·신계륜·김광삼 등 지역 공천의 탈락자들이 들어가 있었고 강금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 박재승은 1시간 동안 침묵을 지키며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듯했다. 그런 뒤 우리들 곧 박재승·인병선·장병화·이이화·박경철 등은 회의장에서 잠정 간담회를 가졌다. 우리는 항의를 하고 퇴진을 각오하자고 합의했다. 박재승은 긴급히 위원회의를 소집하고 “나는 정신병원에 가서 정신감정을 받아 보아야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박경철은 곧이어 위원들이 사퇴할 수 있다는 뜻을 기자들에게 공포했다.
또 비례대표 신청자 명단을 보고도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말이 직능대표이지, 상위 순번 안에 주가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 당직자들도 모르는 당직자가 포함되어 있었고, 당의 원로 아들로서 지역구에 신청했던 애숭이,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청와대 공보비서관을 지낸 인물 따위가 상위 순번에 들어 있었다. 그 대신 참신한 정치 신인이나 재야 명망가, 시민사회단체나 문화예술계 인사가 거의 누락되어 있었다. 사실 통합민주당에 공천 혁명이 일어난다는 말을 믿고 정치 신인들을 포함해 250여명이 심사비 등의 명목으로 300여만원을 내고 뒤늦게 몰려들었는데 이들이 상위 순번에서 거의 빠져 버렸다.
박재승·인병선·이이화·박경철은 청진동 올갱이집에서 밤늦게 회합을 갖고 당면 문제를 논의했다. 박재승은 예정된 대로 제주도 4·3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고, 나는 그동안의 경과를 적어 국민에게 알리는 마지막 사퇴 성명서를 작성했다.(공표되지 않았다)
20일 아침부터 이 소문이 널리 퍼져 공심위 위원들이 사퇴한다는 말이 떠돌았다. 함세웅·나병식 등 재야인사들은 공심위를 깨서는 안 된다고 간절하게 요청을 해왔고 언론들도 부쩍 귀추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렵게 박재승과 통화를 하여 결코 사퇴하는 일은 없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안심했고, 인병선은 최고위원 김상희와 통화해 해촉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전해 받았다.
한편 김부겸은 손학규를 설득했고, 박경철은 이 사실을 박재승에게 전달했다. 그 결과 손학규는 “김, 신 두 사람을 전략공천으로 구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이에 박재승은 두 사람의 심사위원 선정을 인정했다.
21일 아침 손학규·박재승은 조찬회동을 했고, 박상천은 이를 보이코트해 참석하지 않았다. 이때 손학규는 “박재승만 영웅을 만든다”고 불만에 찬 소리를 질렀다고도 전한다. 박재승은 아침 기자회견에서 “대의에 입각해야 한다. 자존심을 버렸다”고 다소 추상적인 말로 비례심사에 참여할 것임을 암시했다.
비례대표는 우리가 우려한 대로 두 대표가 밀실에서 나눠먹기로 순번을 결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당선 가능성이 있는 15번 안에 손학규계 8명, 박상천계 4명이라고도 한다. 당 관계자는 뒷날 당선가능 순번인 15명에게서 당비를 최고 1억원까지 받았다고 말했으나 당 안팎과 정치판에서는 ‘검은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당사자가 아니고는 알 수 없다고 수군거렸다. 그러니 한나라당 등 다른 정당과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박재승은 비례심사에 참여하면서 망망대해에 혼자 내팽개쳐진 느낌이란 말로 외로움을 털어냈다. 그가 한 일은 딱 두 가지였다고 하소연했다. 하나는 원로의 아들을 당선 순번에서 벗어나게 뒤로 돌린 것, 둘째는 전두환 비서관 출신 인사를 탈락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둘째의 경우 손학규는 당료를 시켜 집요하게 당선권 안에 놓으려 시도했으나 박재승은 두 시간에 걸쳐 정체성 발언을 통해 기어코 막아냈다. 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당료들에게 휘말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비례대표 명단이 발표되자 언론의 비판을 호되게 받았고 시민의 항의도 연이었다. 제3라운드에서는 박재승이 완패한 것이다. 그리하여 “박재승 신드롬”은 마지막 단계에서 빛을 잃고 말았다. 국민들은 그 동안 쌓은 여망을 한 순간에 허물었다고 왁자하게 떠들었다. 그러나 총선에서 81석을 확보하지 않았던가?
', '4) 여론 조사와 현역 의원 탈락 기준비리 배제기준이 발표되고 난 뒤 그 당사자들의 반응이 아주 복잡했다. 거의 자신들의 억울함을 떠들어대면서 공심위원들을 …', 'http://img.khan.co.kr/news/2008/04/30/8e01w06a.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