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근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애정을 거두기 어려운 것보다 훨씬 힘드니,
남에 대하여 애정을 거두는 것이 어찌 자신에게 있는 근심을 떨쳐 버리는 것만 하겠는가!
자신에게 베푸는 것으로는 죽기 전에 천하의 대관(大觀)을 다 구경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憂之不離, 視過於愛之難捨,
우지불리  시과어애지난사

捨愛而施人, 熟若離憂而自施?
사애이시인  숙약이우이자시

自施之中, 無過於未死, 盡天下之觀.
자시지중  무과어미사  진천하지관
 
 


- 심노숭 (沈魯崇 1762~1837)
 <해악소기(海嶽小記)>
《효전산고(孝田散稿)》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근심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간다. 지우(智愚)와 귀천(貴賤)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그렇다. 마음에 근심이 빼앗겨 버리면 아주 오래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자기 고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고금에 흔한 일이다. 사람들은 왜 자기 집안에서 편안하게 지내는데 연연하고 관직에 속박을 당해서 멀리 유람을 해 보려 하지 않는 걸까? 이 근심을 떨쳐버리는 것은 정말이지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서 지워버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이야 타인이라는 대상이 있지만 근심은 늘 자신에게 착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항상 근심하는 자기 자신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보면 즐거움은 적고 근심은 많다. 근심이 없는 날을 기다려 여행을 하기로 한다면 장차 늙어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산수 유람을 기왕에 가고자 한다면 동행자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좋고 준비물을 챙기거나 날짜를 잡거나 하면서 뜸을 들이면 안 되고 경비를 간소하게 하여 그냥 훌쩍 떠나야 한다. 그래야 발을 한 번 내디디면 거침없이 마음껏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근심에 대한 생각과 근심의 해소로 명산을 유람하는 방식이 대개 이러하다. 요즘 운동을 해야 한다, 한다, 하면서 하지 못하는 것이 뜸을 들여서 그런 걸 보면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이 가기도 한다.


  심노숭은 정조와 순조 연간에 활동한 문인인데 호를 몽산거사(夢山居士) 혹은 효전(孝田)이라 한다. 이 분은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다가 최근 연구자들에 의해 단편적 내용이 번역되어 독자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부친이 심낙수(沈樂洙)로 노론 시파의 당론을 가진 집안에 태어난 탓에 1801년(순조 1)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그 역시 경남 기장현(機張縣)에 6년간 유배되었는데, 이 때 저술하기 시작한 책이 《효전산고(孝田散稿)》이고 이 글은 1818년 금강산을 유람하고 쓴 유기(遊記)인 <해악소기(海嶽小記)>의 서(序) 일부이다.



  심노숭은 만명(晩明) 소품 문학에 크게 심취하여 전대의 근엄하고 전아한 고문의 문체와 정신 지향을 단호히 배격하고 자기 나름의 개성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며 감각적인 글을 적극 창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동패림(大東稗林)》이라는 야사총서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의 유기작품이 중국에 비해 기운이 딸리는 등 시원찮다는 비평을 하고 자신이 손수 모범을 보이려고 이 글을 썼다. 그래서 저자는 명말 소품체 유기를 본받아 여정이나 잡다한 내용을 걷어내고 필기체의 형식으로 견문 중 중요한 것만 선택하고 여기에 자신의 독창적 사고를 곁들여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표현도 독특하다. 인용한 부분이 길지 않지만, 앞의 것을 뒤의 것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훨씬 뛰어나다는 뜻으로 다소 생소한 ‘視過’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또 남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접는다는 뜻을 ‘捨愛而施人’이라는 말로 개성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지만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자기가 하고 싶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己所不欲, 勿施於人.]”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전혀 생뚱맞게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저자가 근심을 떨치기 어려운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어려운 데다 비유한 것은 그만큼 근심을 떨치기 어려운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지만,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어려움을 체험한데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나아가긴 쉽고 잊기는 어려운 일 알겠으니
  목소리나 웃음으로 부러 꾸민 게 아니라네
  定知易就難忘事
  不以聲音笑貌爲  <향루학사(香樓謔詞)>

  심노숭이 지은 시의 일부이다. 목소리나 웃음으로 일부러 꾸며낸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랑이기에 잊기 어렵다는 말이다. 벌써 20년이 다 되가는 최영미 시인이 쓴 시를 보면 심로숭의 생각과 똑 같다.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선운사에서> 부분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 1994.》

  저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가 그렇게 잊기 어려워 한이 된 사랑을 굽이굽이 곡진하게 노래한 대서사시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이런 사랑을 접기 어려운 것보다 근심을 떨쳐내기 어렵다는 말에 여러분은 공감하시는가? 아마도 나이에 따라 다를 듯하다. 필자는 공감한다. 아니, 공감할 뿐만 아니라 삶의 진실을 발견하는 기쁨마저 안겨준다. 어릴 때도 나름대로 근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살다보면 점점 근심이 많아진다. 자질구레한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하나의 근심이 해결되면 두 개의 근심이 생겨나고, 묵은 근심은 늘 마음을 누르고 있는데, 새로운 근심은 잡초처럼 생겨난다. 아마도 이 근심을 죽기 전에는 다 떨쳐버릴 수 없을 듯하다. 어쩌면 근심이란 살아가는 값으로 지불하는 일종의 세금 같은 것이기라도 한 것일까.



  위의 본문에서 ‘이우(離憂)’는 근심을 떨쳐버린다는 뜻이지만 굴원이 지은 <이소경(離騷經)>의 ‘이(離)’는 반대로 ‘걸려든다’는 뜻이다. 같은 글자인데도 문맥에 따라 정반대로 해석되기도 하는 것이 한문의 묘미라고나 할까. 굴원의 <이소>에는 우국충정과 함께 버림받은 신하의 슬픔과 원망이 안개처럼 자욱하다. 성현(成俔 1439~1504)은 굴원이 ‘소인배들이 혼비백산하여 스스로 움츠러들게 하였으니, 명교(名敎)에 큰 보탬이 된다.’라고 결론을 내리긴 하였지만, ‘조정을 원망하고 비방하여 자신의 임금이 간언을 거절했다는 악평이 후인의 입에 전파되게 하였으니, 비록 웅장한 말과 뛰어난 필력이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더불어 그 빛을 다툰다 하더라도 어찌 취할 만한 것이겠는가.’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아, 사람이 근심을 어떻게 떨칠 수 있겠는가? 다만 그 근심의 내용이 문제일 뿐이다. 이용악 같은 시인도, 이순신 같은 영웅도, 다 근심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이런 근심을 보면서 우리의 자질구레한 근심을 돌아보고 잠시나마 큰 근심으로 작은 근심을 잊어보면 어떨까.

  北 쪽

             이용악(李庸岳 : 1914~미상)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女人이 팔려간 나라
머언 山脈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 감을 줄 모르다 《李庸岳詩全集, 창작과비평사, 1988.》

  閑山島歌

                이순신(李舜臣 : 1545~1598)

閑山島月明夜에 上戍樓하야
撫大刀하고 深愁時에
何處一聲羌笛은 更添愁아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권1(현토(懸吐) 필자)

閑山섬 달 밝은 밤에 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一聲胡?는 남의 애를 긋나니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 <完譯 李忠武公 全書 上>에서 이은상(李殷相)은 이 시조가 여러 시조집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전해진다는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고 《해동가요(海東歌謠)》에 있는 것을 취하였다고 하면서 이 시조로 번역문을 대신하였다. 다만 두 구절씩 끊어 6행으로 기록하고, ‘하는 적에’는 ‘하는 차에’로, ‘애를 긋나니’는 ‘애를 끊나니’로 표기하였다. 《병와가곡집》의 원문에는 ‘아래아’를 사용하고 표기도 약간 다른데 독자의 편의를 위해 현대어로 수정하였다. 예전 학창 시절에 배우던 그대로다.
* 胡? : 고대 중국의 북방 민족들이 연주하는 피리의 일종.

 
 
 
글쓴이 :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