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변기 몇 번째 ....
- 작성일
- 12-05-24 03:20
베팍에도 그런 분이 꽤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개인적으로 심리학이나 문화인류학 같은 게 참 재미있어요.
물론 대중 교양용 수준에서지만 ...
에드워드 홀이라는 문화인류학자의 숨겨진 차원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4부작인데 ..)
이 사람은 거의 1950년대쯤 활동했던 것 같고,
미국이 전세계로 쭉쭉 뻗어나가서 미주알고주알 간섭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
외국 것들은 대체 왜 이러나, 걔들은 우릴 일부러 적대하는 거 아니면 미친 거다
라는 식의 인상을 받는 외교관 내지 현지 활동 요원의 고충을 해결하고자 문화인류학을 동원하게 되었고
그런 면에서 활동을 한 것 같습니다.
예컨대, 중동 사람들은 시간 관념이 개판이라더군요. (개판이라는 것은 현재 우리 문화권의 기준으로..)
미국 문화권에서는 시간을 꽤 중시한다고 하는데, 중동에 가면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는 거죠.
(참고로 한국도 그리 엄격하지는 않은 쪽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
예를 들어 ... 7시에 저녁 약속이 있다고 하면
어떤 문화권 (정확히 기억이 안나서) 에서는
10분 이상 일찍 도착하는 것 무례, 10분 전쯤~5분전까지가 예의바른 것이고,
5분~정각까지는 그냥 그런 .., 정각~5분 후는 '어이쿠 좀 늦었네요' 정도의 가벼운 사과
10분 이상 늦으면 결투 신청급의 무례(는 과장이고) 라고 합니다.
(한두시간 쯤 그냥 흘려보내는 다른 문화권에 갔다고 하면 울화통이 터지겠죠)
한국은 급격하게 서양화-미국화되면서 세대간, 개인간 격차가 크지만
제가 생각할 때 대충 저것보다 한 5분~10분 정도씩 늦는 것 같고요.
시간에 관해서는 그렇고 ..
공간에 관해서도 비슷합니다.
문화권에 따라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지키는 개인 거리가 있는데
예컨대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할 때, 전혀 모르는 사람과의 거리, 안면만 있는 사람과의 거리,
좀 친밀한 친구 사이의 거리,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등이 거의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사무용 책상의 폭이 딱 의자에 앉고 책상 앞에 있는 사람과 얘기할 때 사무적인 거리에 맞춰져 있다고 ...
이것도 문화권별로 달라서 차이가 생기는 게,
중동 사람들은 거리가 매우 짧고 미국인은 비교적 길어서,
대화를 하면서 중동 사람들은 자기들의 사무적 거리로 좁히려고 다가오고,
미국인들은 자기들의 사무적 거리로 넓히려 하고, 그래서 계속 물러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게 무의식적인 과정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 사람을 만나면 불편한데 정확히 뭐가 어떻게 불편한지 알 수가 없다고 ....
......
잡설이 길었는데, 이 개인 거리 적용의 사례 중에 변기 선택이 있습니다.
공중 화장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써야 하고 가장 긴 거리가 선호되죠.
변기가 다섯칸이라고 하면 1 3 5에 서는 것이 차후에 사람이 더 들어오더라도 가장 긴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위치죠.
다섯 칸이 다 비어 있으면 사실 아무곳이나 선택할 수 있는데,
만약 누군가 2, 4에 선다면 그 다음 사람, 그 다음다음 사람이 선택에 제한을 받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불쾌해할 수 있죠.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보면 일정한 행동 패턴이 정해지고, 1, 3, 5 칸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개인거리같은 것은 콩나물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엘리베이터 탈 때 등 특수한 상황에서는 무시되는 기제도 있고요)
..... 제 글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냥 문득 생각나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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