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와 민족주의
- 작성일
- 13-09-04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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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보충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더 적어봅니다.
네이션nation(국민)이라는 것을 "상상의 공동체"로 규정한 베네딕트 앤더슨에 의하면 네이션은 미신이나 주술처럼 계몽주의에 의해서 없어지는 환상이 아니라 계몽주의에 의해서 종교가 약화된 자리를 대리보충하는 모종의 상상력입니다. 인간의 삶으로부터 생겨나는 수많은 고통으로부터 상상으로 가득찬 응답을 해왔던 기존 종교가 계몽주의에 의해 약화되자 그자리를 대신한 것이 네이션이라는 이야기죠.
민족국가라는 것은 보통 유럽에서는 베스트팔렌 조약이후 생겨난 여러 국가들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됩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이후 봉건 영주들의 권력보다는 왕권이 강화되었고 또 그 강화된 왕권과 국가들은 상공업과 같은 경제활동은 보장한다는 등의 조약을 맺음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근대국가로 나아가는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보는 것이죠. 이 조약이후 탄생한 유럽의 절대주의왕권은 교황에 의한 종교의 힘을 약화시켰고 봉건영주들에 의해 분할되었던 지역간의 통일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절대왕정을 통해 영토적, 행정적 구획이 완성되었다면 국민nation은 시민혁명에 의해 완성됩니다. 봉건영주의 농노에서 신분적 해방을 획득하기 위해 또 왕의 백성이 아닌 자율적 시민으로 완성되기 위한 시민혁명의 과정을 거쳤을때에야 비로소 국민nation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또 자본제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토지에 결박되어있던 농민들이 임노동자로 변화했던 측면도 빼놓을수 없습니다. 자본제경제가 성립하기위해 필요한 임노동자는 농민으로부터 충원될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기존에 속해있던 농촌공동체와 토지로부터 분리시키는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했죠. 그 과정에서도 역시 농노제나 노비제와 같은 전근대적 신분제의 철폐와 시민혁명은 불가피했습니다. 시민혁명은 노동자와 농민의 요구인 동시에 부르주아의 요구이기도 했죠.
그런데 이 네이션이라는 관념은 이렇게 자신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자본-국가에 협조적인 관념이라기보다는 이에 저항하는 요소로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자본이란 것은 결국 임노동자로부터의 노동착취로 작용하게 되고 국가라는 것도 각종 세금과 제도 또는 군대와 같은 강제적 동원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기존에는 이로부터 생기는 외부적 고통의 극복을 종교라는 수단 혹은 농촌공동체로부터의 상호부조로 해소할수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보호막이 사라져버린 상태이므로 대신 민족/국민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통한 결속을 통해 그 공백을 채우려고 시도하게 된단 거죠. 이렇게 민족주의Nationalism란 관념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민족주의는 자본-국가에 결핍된 상상적 상호부조의 역할로 작용함으로써 오히려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는 보로메오의 메듭을 완성시켜주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오늘날의 선진자본주의국가의 모습이 바로 이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민족주의라는 관념은 한 국가내의 결속을 강조할 뿐 국가간의 결속이나 연대를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갈등상황에서는 국가간의 전쟁을 막기보다는 오히려 격화시키는 관념이 됩니다. 이와더불어 왈러스틴에 의하면 16세기 이후 성립한 근대자본주의체제는 주기적으로 위기를 겪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헤게모니국가의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두차례의 세계대전의 원인이었죠. 근대국가가 타국으로 확장되면서 수탈하게 되면 그것을 흔히 제국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20세기초 제국주의국가들간에 식민지나 영토등을 둘러싸고 대립하게 되면서 이 전쟁을 위한 명분을 민족주의이념에서 찾게 됩니다. 독일의 나치즘과 일본의 군국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독일의 나치즘Nationalsozialismus을 정확히 해석해 보면 민족사회주의를 의미합니다. 민족과 사회주의가 결합된 관념이라고 할수있는데 여기서 사회주의는 구사회주의국가에서의 사회주의와는 다릅니다. 다만 한가지 점에서만은 유사한데 바로 공동체를 상상한다는 관념이죠. 히틀러와 같이 나치즘을 발명하고 돌격대SA를 창설했던 에른스트 룀의 성향을 살펴보면 그는 반(유대)자본적이고 반국가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와 행동을 강조한 인물이죠. (여기까지의 나치즘이 하이데거가 동조했던 나치즘이기도 합니다) 나치가 권력을 잡은 이후에도 "제2의 혁명"을 계속 이야기해서 독일자본과 군부와 결탁한 히틀러의 권력에 위협이 된 결과 장검의 밤사건으로 숙청되고 말았지만 원래는 이 룀이 대변하는 이상이 나치즘이 말하는 민족사회주의의 프로토타입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한편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합니다만 제국주의전쟁을 위해 파시즘의 일종인 군국주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 일본의 파시즘도 기원을 따져보면 국가를 부정하고 농민공동체의 자치를 주창했던 곤도 세이쿄와 같은 농본주의적 아나키스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합니다. 마치 이탈리아의 무쏠리니가 소렐의 아나키즘과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죠.
그러나 이러한 민족주의나 그것의 변형으로서의 파시즘은 자본-국가에 의해 파생된 고통을 어디까지나 상상으로서만 극복하려는 시도였을 뿐이므로 결코 자본-국가의 모슌을 극복할수 없었고 체제가 안정화되면서 오히려 그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결합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럼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봅시다. 한국은 대한제국말기 자체적 근대화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대한제국은 망하고 일본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게 되면서 근대국가의 성립이 유예되죠. (근대화라는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국민과 국가 자본이라는 세 요소의 결합과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때 최근의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이 얼마나 설명이 허술한 학설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자립적 근대국가를 건설하지 못한 결과 당시 반도의사회주의자들은 불가피하게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과제를 계급투쟁이라는 사회주의적 과제와 함께 떠맞게 됩니다. 그 결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에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가 건설됩니다만 이 사회주의는 파시즘에서의 상상적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상상적 관념으로만 남게 됩니다. 대신에 이 상상으로서의 상호부조 혹은 상상으로서의 공동체는 "위대하신 어버이 수령"일가로 대리보충됩니다. 김일성을 유럽의 근대화과정과 비교하자면 유럽 절대왕정국가의 왕과 같은 모습이라고 할수있는데 유럽과 북한의 차이점이라면 유럽은 왕정이 시민혁명에 의해 국민국가로 대체된 대신 북한은 이 시민혁명에 의한 왕조의 타도와 국민nation 혹은 시민의 탄생이 없었기에 김일성에 의한 세습왕조가 민족국가 그자체(짐이 곧 국가다)를 대리하는 형태으로 존속하게 된 것이죠. 때문에 북체제에서의 북한주민은 따지고 보면 아직까지도 국민nation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자애로운" "장군님의 은총"을 받는 신하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있게 되는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