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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당 당맥의 역사적 연원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의 당맥은 1955년 1공화국의 민주당, 1967년 3공화국 시대 창당된 신민당,  그리고 1985년 5공화국 치하에 창당된 신한민주당과 1987년 만들어진 통일민주당에 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현대 민주당의 역사는 1987년 통일민주당의 분당으로 탄생한 평화민주당에서부터 시작되지요. 이 분당은 단순히 양김의 분열만으로 볼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1955년 민주당이 탄생할 때부터 시작되었던 신파(장면)와 구파(조병옥)의 대결구도는 3,4공화국의 신민당-5공화국의 신민당으로 이어지는 야당가의 역사 속에 잠복되어 있다가, 1987년의 단일화 실패와 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 분당을 계기로 완전히 별개의 정당 사이의 경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반독재-민주화'라는 목표 아래 드러나지 않았던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 사이의 노선 차이도 이때부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장택상의 비서 출신으로 조병옥을 지지하는 외곽단체 유석청년동지회를 이끌었던 구파-영남 출신 김영삼과, 장면을 대부로 모시고 천주교 영세를 받았으며 4.19 혁명 이후 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했던 신파-호남 출신 김대중은 같은 보수야당 안에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요. 김대중은 6,7,8대 국회를 거치면서 야당가의 정책통으로 이름을 날리며 1971년 대선에서는 '4대국 보장안-대중경제론'과 같은 굵직하고 혁신적인 정책공약을 내세워 박정희를 압도하는 한판승부를 벌입니다.

 이와 달리 김영삼은 사상 초유의 원내총무 5회 당선-역대 최연소 야당총재(47세) 당선으로 야당가 최고의 정치적 완력을 과시했죠. 그리고 유신체제와의 투쟁에 이어 23일간의 단식투쟁과 민추협 창설-신민당 창당으로 독재에 맞서는 야당의 투사라는 이미지와 지도력을 내외에 확립했습니다. 정치에 강했던 민주당 구파와 정책에 강했던 민주당 신파의 차이가 김영삼과 김대중을 통해 드러난 셈입니다. 그러나 김영삼은 김대중과 달리 정책적으로는 기존의 보수 야당의 색채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실 당시의 야당은 정책으로 승부하기에는 여당과의 이념적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보수 일색의 한국정치에서 여야 간의 갈등은 정책이라는 영역에서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상이한 정치력 이력과 성격을 보유하고 있던 두 정치인이 처음으로 충돌한 것은 '40대 기수론'의 발화점이 되었던 1970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이었고, 두 번째 충돌은 1987년 대선에서 발생합니다. 이때의 충돌이 이후 야당의 역사를 완전히 갈라놓게 됩니다. 통일민주당의 김영삼과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사이에 일어난 분열은 야당 역사에 있어서 구파(통일민주당)와 신파(평화민주당)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분리였고, 상대적 진보와 보수 사이의 분리였습니다. 1970년대에 이미 4대국 보장안과 대중경제론을 주창할 만큼의 정책적이고 이념적인 소양을 갖고 있던 김대중을 중심으로 보수 야당 내부의 상대적 진보세력+재야 민주화세력이 집결했고, 기존의 보수 야당 정치인들은 김영삼을 축으로 결집합니다.

 1988년의 13대 총선은 이렇게 분리된 김영삼과 김대중의 세력이 전국적인 범위에서 처음으로 맞붙은 선거였습니다. 선거 전 논의되었던 양당의 재통합이 끝내 무산되면서, 김대중은 평민당 총재직을 포기하고 전국구 11번을 자청하여 배수의 진을 친 다음, 재야 민주화운동의 거두 박영숙, 문동환 등을 대거 영입해 야당가에 새 피를 수혈합니다. 이후 재야로부터의 수혈은 민주당의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전략은 그대로 적중합니다. 평민당은 서울에서 16석을 얻어 수도의 1당으로 올라섰고, 호남지역 37석 전부를 석권하며 지역구 54석+전국구 16석을 차지해 70석의 제1야당으로 부상합니다(하지만 서울과 호남 외에는 성남시에서 1석을 얻는데 그쳤습니다).

 반면 김영삼은 득표율에서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46석+전국구 13석으로 59석을 차지하는 데 그치며 제2야당 지도자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김대중의 평민당은 총선에서 제2당으로 올라선 여세를 몰아 민정당에 대한 대대적 공세에 나섭니다. 5.18과 5공 비리에 대한 국회 차원의 특별위원회 구성이 이뤄졌고, 이 특위들을 통해 13대 국회를 뜨겁게 달군 청문회 정국이 펼쳐집니다. 이 와중에 제3당으로 내려앉은 민주당과 김영삼은 평민당과 김대중에 묻혀 정가의 스포트라이트로부터 멀어지고, 설상가상으로 동해시 보궐선거에서 김영삼의 측근이었던 서석재 민주당 사무총장이 후보매수 파문을 일으킵니다. 위기에 몰린 김영삼은 정국의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 그리고 평생의 숙원인 대권을 위해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깜짝쇼를 단행하고 말죠.

 사실 1989년 후반기부터 정계개편 논의는 물밑에서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민정당은 여소야대의 4당 구도를 견뎌낼 인내심이 없었습니다. 민주화와 함께 시작된 여소야대의 타협정치란 일사불란한 군사문화에 젖어있던 민정당에게는 버거운 일이었으니까요. 김영삼은 더 이상 스포트라이트를 김대중에게 내준다면 1992년의 대선에서 승리를 바랄 수 없다고 판단했고, 만년 여당 체질의 김종필로서도 원내 4당이란 위치는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여기에 평민당과 김대중을 축으로 야당과 재야 민주화 세력의 결집이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기존 보수 정당들에게는 불안요소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때문에 노태우의 특사 박철언은 처음에는 호남을 포섭할 요량으로 김대중과 접촉했지만, 김대중은 이를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러자 박철언은 민주당의 황병태와 공화당의 김용환을 통해 김영삼과 김종필과 접촉하게 되고, 물밑에서 정치적 격변은 무르익어 갔습니다.

 결국 1990년 1월 21일, 3당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례 없는 정치적 사변을 감행하게 됩니다. 노태우의 민정당은 원내 다수의석과 정권재창출을 노렸고, 김영삼의 민주당은 1992년 대선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삼았고, 그리고 김종필의 공화당은 개헌이 가능한 국회재적 3분의 2를 확보한 이후 내각제로 이행할 속셈을 품고 3당 합당에 합의하게 됩니다. 여당과 야당으로 갈라져 있던 보수 세력이 대구·경북(노태우) + 부산·경남(김영삼) + 충청(김종필)의 지역연합을 고리로 뭉친 것입니다. 그때까지 군사독재에 대항해 왔던 야권의 일각이 졸지에 붕괴되어 오히려 군사정권의 여당과 한 몸이 되어 버리는 모습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지만, 이미 작동하기 시작한 지역구도는 이 모든 배신감과 모순점들을 덮어버리는 마력을 발휘합니다. 기실 보수라는 이념에 있어서 서로 다를 바가 없었던 3당이었기에, 여태까지 싸워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한 이불 덮는 일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을 감안한다면, 1990년의 3당 합당은 민주와 반민주라는 구도에서 볼 때는 그야말로 역대 최고의 정치적 배신극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한편으로는 보수와 진보라는(어디까지나 한국이라는 환경에서의 상대적 측면에서) 정치적 노선의 차이가 정립되기 시작한 계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서술했듯이 보수 일색의 한국 정당정치 구조에서 기존의 여당과 야당 사이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고, 3당 합당의 주체가 된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은 모두 보수적인 정책을 표방한 가운데 김대중의 평화민주당만이 가족법 개정과 같은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의제들을 제시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호남 포위 + 보수 대연합 = 지역주의 심화와 보수 과점체제 성립'이라는 3당 합당의 패악이 덮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3당 합당으로 말미암아 1990년 초까지 야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민주당(1공화국의) 구파-영남 계열의 흐름은 기존의 보수 여당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대중의 평화민주당만이 외롭게 남게 되지요. 3당 합당으로 단숨에 200석이 넘는 거대여당 민주자유당이 탄생했고, 평민당은 71석의 미니 야당으로 급전직하하게 됩니다. 노태우와 김영삼이 손을 잡으면서 영남권은 보수에게 완전히 장악되어 버렸고, 여기에 충청권이 가세한 가운데 호남권만이 유일야당의 본거지로 외롭게 고립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민주당의 역사는 이렇듯 철저히 구축된 호남 포위구도를 부숴내고, 지지기반을 호남 바깥으로까지 확대해 정권교체를 이룩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점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