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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엠팍 시절에 써놓은 글이 있어서 옮겨봅니다. 이 영화는 지금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스필버그 초기 영화 중에 이 영화가 제일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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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슈가랜드 특급>(The Sugarland Express, 1974, 미국)


평단의 엄청난 지지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는 쫄딱 망해버린 영화가 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두 번째 연출작이자 극장용 영화로는 첫번째 작품인 <슈가랜드 특급>도 그런 영화 중에 하나입니다. 스필버그는 TV용 영화 <듀얼>(Duel)로 데뷔하면서 자동차 두 대로 영화 보는 내내 관객의 오금을 절이게 할 수 있는 재능을 보여줬습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감독 데이빗 린은 <듀얼>을 보고 "매우 총명한 감독이 드디어 나타났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영화사에서는 스필버그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작품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영화의 시놉시스는 대략 이런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교도소에 복역중인 생활보호 대상자인 유부녀가 있습니다. 정부 당국에서는 그녀가 더 이상 아이를 기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아이를 강제로 빼앗아 다른 가정에 입양시키려 합니다. 아이 엄마는 4개월 뒤면 출옥하는 남편에게 탈옥을 부추겨 자동차를 탈취하고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엄청난 혼란이 생깁니다.

영화사는 이 영화에 각본을 조금 손질한 뒤(이 영화는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습니다) <듀얼>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수량의 경찰차를 스필버그에게 제공해줍니다.

당시 스물 여섯의 스필버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 밑기지 않을 재능을 발휘합니다. 헝가리 출신의 위대한 촬영 감독 빌모스 지그몬드와 의기투합한 그는 신인 감독으로서 전혀 주눅이 들지 않은 과감한 모험을 시도합니다. 이미 스필버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움직이는 방법, 카메라를 움직여야 할때야 하지 말아야 할 때, 카메라는 움직이지 말고 주변 사람을 움직여야 하는 법, 카메라 렌즈 각각의 속성에 대해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모스 지그몬드도 놀랍니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13살때 16미리 카메라를 마스터한 천재 스필버그, 6피트 촉광으로만 조명을 하고도 완벽하게 이미지를 포착한다는 헝가리 출신의 미치광이 촬영감독 빌모스 지그몬드. 그들이 사고를 칩니다. TV 화면이 주는 시각적 제한에서 벗어날 기회가 주어지자 스필버그는 로버트 알트만보다 더 대담한 영상 스타일을 원했습니다. 스필버그는 빌모스 지그몬드에게 다큐멘터리 느낌이 나는 유럽식 조명을 원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자연광과 현장음, 프로세스 포토그래피 기법을 탈피한 자동차 내부 장면, 스산한 텍사스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내놓습니다. 스필버그와 지그몬드는 흥행용 영화가 아닌 예술작품을 찍어버린 것입니다.

<듀얼>의 단순성과 달리 <슈가랜드 특급>은 병참학적 복잡성에 있어서 바로크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초소형화된 파나플렉스 카메라를 최초로 사용하여 차내에 이루어지는 고도의 기술적 촬영을 완성해냅니다. 자동차 대화씬에서느 시속 35마일로로 뒷좌석으로 이동카메라를 이용해서 카메라를 상하 좌우로 움직이는 팬촬영을 합니다. 70, 80년대 영화들을 보면  줌렌즈 촬영이 많은데 그것을 끔찍히 싫어하던 스필버그는 줌촬영과 팬촬영을 동시에 사용하여 카메라가 줌촬영하고 있는 것을 숨기면서 카메라의 원근을 신속하게 바꿔버리는 방법을 이 영화에서 구사하고 있습니다. 영화 끝부분에서 주인공들이 탄 자동차가 아이의 양부모 집을 향해 접근할 때 줌촬영과 달리차를 멋지게 혼합합니다. 그리고 저격병 어깨 너머로 히치콕이 <현기증>에서 시도했던 그 유명한 줌 인 트랙 아웃 기법이 사용됩니다.

<슈가랜드 특급>의 압권은 클라이맥스 직전, 카메라가 결정적인 순간에 15초 동안 멈추는데 있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고 서서히 물러서게 합니다. 전경과 배경을 나란하게 놓여지면서 자동차에 있는 사람과 저격병을 똑같은 관계에 놓이게 되자, 두 대상이 서로를 겨룰 때 스필버그는 시간을 멈추게 합니다. 빌모스 지그몬드는 이렇게 말합니다."나는 지금도 그 촬영에 무한한 경외심을 느낀다.. 도대체 그는 그 나이에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영화 평론가 폴린 카엘은 "영화사상 가장 경이적인 데뷔작이다. 그 어느 감독이던 부러워할 것이다. 앞으로 수년 내에  청년 스필버그가 미국영화계를 접수할 것"이다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녀의 예언은 이 영화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케팅의 실패로 이 영화는 철저하게 망해버렸으니까요.

하지만 스필버그는 절치부심하여 다음 작품인 <죠스>를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서명을 남기게 됩니다.


스필버그의 주특기인 움직이는 카메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보고 싶은 분들은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