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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초기 걸작선'이 진행 중입니다. 얼마 전에 거기를 갔다가 스필버그가 불과 스물 네살에 만든 데뷔작 <듀얼>을 봤습니다. 1971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TV물로 만들어진 것인데 젊은 스필버그의 패기와 영화 천재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저도 여러번 본 영화지만 이번에 큰 화면으로 보니 훨씬 좋더군요. 그러면 깨알 같은 숏바이 숏 분석을 해보겠습니다. 다행히 유튜브에 이 영화의 90분짜리 풀타임으로 올라와 있네요. 마음 같아서는 90분 동안 제가 입으로 설명하면서 스톱, 되감기, 반복해서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게 아쉽습니다.

몇회로 나누어서 진행해야 할 것 같은데, 체력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이 기회를 통해 스필버그가 왜 영화 천재인지, 이 영화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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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1971) 동영상





1.
영화의 첫 장면은 항상 중요합니다. 이 영화는 시작하자 마자 검은 화면이 나오고 발자국 소리와 자동차 시동거는 소리가 납니다. 그리고 화면이 밝아지죠. 잠시 후 차고에서 자동차가 빠져 나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네. 이 영화의 도입부는 운전자의 1인칭 시점으로 찍혀 있습니다. 자동차가 처음 차고를 나올 때는 전진이 아니라 후진으로 나오는데 이렇게 해야 집과 차고를 촬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의 모습을 보세요. 괴물이 아가리를 벌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운전자에게 아무도 배웅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기억해두세요. 뭔가 냉랭한 분위기가 있는거죠.





2.
자동차 운전수의 시점 숏으로 계속 영화가 진행됩니다. 운전수가 라디오를 켜는데 교통방송과 광고, 스포츠 중계 등이 사운드로 들립니다. 그리고 열네번의 디졸브에 의한 장면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이 열네번의 디졸브를 통해 자동차가 가정집 차고에서 도심지를 거쳐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라디오 방송 내용도 바뀌지요.



3.
열네 번의 디졸브가 끝난 뒤에 (디졸브가 아니라) 컷으로 바로 붙인게 위의 화면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까지는 자동차 운전수의 1인칭 시점 숏인데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주관적 시점에서 객관적 시점으로의 변화지요. 다른 하나는 라디오 방송의 내용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첫번 째 시점의 변화를 통해 관객은 비로소 지금까지 시점 숏의 주인공이 타고 있던 자동차를 보게 된데 빨간 색 플리머스 밸리언트입니다. 이 자동차의 모습이 철조망에 포위된 장면으로 처음 등장힙니다. 얼마 뒤에 이 자동차에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죠. 그리고 스필버그는 다시 네번에 의한 디졸브에 의한 장면 전환으로 자동차가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상하행 1차선의 갓길로 접어 드는 것을 보여줍니다.

둘째, 라디오 방송의 변화를 주목해서 보면 가장의 지위를 상실한 남자의 불평과 관련된 상담이 주 내용입니다. 이 부분을 잘 기억해 둬야 합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나누는 대사는 50마디에 불과합니다. 어찌보면 무성영화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스쳐지나가는 라디오 방송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라디오 방송이 이 영화를 해석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조금 뒤에 설명하겠습니다.




4.
드디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자동차 운전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룸밀러에 비친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어딘가 완전하지 못한 존재, 불안하고 파편화된 모습으로 주인공을 보여주죠. 그 사람이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정면에서 다시 이 인물을 보여줍니다. 앞에 뭔가를 발견한거죠.




5.
이 남자의 시야에 들어 온 것은 연기를 내고 달리는 몬스터 트럭입니다. 룸밀러에 비치는 운전사의 표정과 몬스터 트럭을 같이 잡았습니다. 이 남자가 트럭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한 쇼트에서 알 수 있죠. 트럭과 자동차가 굉장히 가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망원렌즈로 당긴 쇼트도 보입니다.






7.
자동차가 트럭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카메라는 자동차 뒤에 있다가 트럭 앞으로 나아갑니다. 달리 자동차로 찍은 것인데, 여기서 몬스터 트럭의 크기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관객에게 이 트럭의 크기에 대한 정보를 주는 쇼트입니다. 달리는 차에 카메라를 붙여서 최대한 로우 앵글로 찍었기에 트럭의 위용이 느껴지지요. 동영상으로 보면 이 때 트럭의 바퀴와 철판에서 내는 소리가 들립니다. 폴리 작업(영화 편집시 사운드 작업)을 해서 넣은 건데 화면이 이동함에 따라 느껴지는 사운드가 일품입니다.
그리고 이 다음 장면부터는 위에 붙인 동영상을 보십시오. 연기와 끼어들기, 경적소리 등을 통해 트럭이 위협하는 장면들이 보여집니다. 그건 동영상을 통해 직접 확인하시길..




8.

몬스터 트럭과 첫번 째 접촉 이후, 주유소에 도착한 이 남자. 뒤에 몬스터 트럭도 따라 오는 것을 봅니다. 트럭 운전사를 관찰하려 할 때 카메라는 남자의 차에서 트럭 쪽으로 약간 줌인합니다. 남자가 안경을 닦으면 더 자세히 보려는 순간, 주유소 직원이 차 유리창에 세정액을 뿌려 남자의 시야를 가로막습는다. 이것은 마치 끝내 이 트럭 운전사의 정체를 모를 것 같은 미묘한 느낌을 줍니다. 이런 식의 트릭들도 스필버그는 참 재미나게 배치시켜 놓았죠. 



 
9.

흔히 놓치기 쉬운 부분인데 주유소 직원을 주목하십시오. 이 남자 기름을 주유구에 제대로 못 넣고 흘리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잔돈으로 교환해줄 때도 기름을 질질 흘립니다. 게다라 절름발이지요. 이 씬에서 주유 호스는 남자의 성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절름발이가 기름을 흘리는 것은 마치 성기능이 감퇴된 남자처럼 여겨지는 것이지요. 왜 이런 설정을 했을까요? 이 절름발이를 통해 주인공 남자의 남성성 부족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주유소 직원이 남자에게 말하죠. '라디에이터 호스 교환하셔야겠는데요!' 그때 남자는 다음에 하겠다는 뜻을 내 비칩니다. 그 다음의 주유소 직원의 대답. "그렇게 하세요. 손님은 왕이니까!"라고 대답하죠. 남자의 다음 대답. "집에서는 안 그렇습니다"
집에서는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죠. 그리고 이 라디에이터는 영화 후반 부에 결국 문제를 일으킵니다. 라디에이터와 관련된 한번의 대사를 통해 두 가지를 알게 되죠. 라디에이터가 고장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 후반부에 자동차가 연기를 내는 것의 원인으로 설명됩니다. 다른 하나는 이 남자는 가정에서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고장난 존재다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대사가 여러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입니다. 좋은 각본이지요.





10.

남자가 주유소 실내로 들어와 전화교환수에게 자기 집으로 연결을 부탁하면서 자신의 인적사항을 이야기합니다. 관객은 여기서 처음으로 이 남자의 이름이 '데이빗 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데이빗 맨과 아내와의 통화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데이빗 맨과 아내는 어제 파티에 참석했는데 그의 아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티브 핸더슨에게 강간을 당하려고 했는데, 데이빗이 항의 한번 제대로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두 사람 사이가 냉랭한 상태죠. 다시 말하면 데이빗은 가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데이빗은 현재 포브스라는 바이어를 만나러 가는 길이고 여섯시 반까지 집에 돌아와야 하는데 왜냐하면 데이빗의 어머니가 집에 오기 때문입니다. 그는 엄마의 눈치를 보는 마마보이인 셈입니다.

사실 이 장면은 굉장히 튀는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일관되게 유지되는 장소가 파괴되는 장면입니다. 굳이 데이빗의 가정을 보여줄 필요는 전혀 없는 장면이거던요. 원래 75분짜리 오리지널 판에는 없었던 것인데 90분으로 늘이면서 첨부된 장면이죠.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대사를 통한 상황 설명도 어설픕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건질게 있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십시오.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데 그것이 데이빗이 처한 상황이죠. 집안에서 장난감 로봇보다 못한 신세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영화의 첫 장면에서 자동차 차고와 집을 왜 그렇게 으스스하게 보여줬는지가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인공의 이름은 David Mann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데이빗은 <성경>의 다윗의 영어식 표기입니다. 이 영화는 골리앗인 몬스터 트럭과 싸우는 작은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Mann은 영화 중에 주인공이 한번 더 강조하듯이 n이 첨가된 Man입니다. 그는 몬스터 트럭과 대결 과정에서 남자(Man)로 성장해 갑니다.

앞에 나온 라디오 방송을 다시 환기해봅시다. 방송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한 남자가 통계청 직원에게 인구 통계 조사서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집안의 가장이냐?'는 질문에 이 남자는 답변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일하기가 싫어서 아내가 돈을 벌고 자신은 집안 일을 하는 처지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 남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I'm really not the head of the family and yet I'm the man of the family."(가장은 아니지만 집안의 남자지요).

그게 바로 현재 데이빗 맨의 상황과 유사합니다. 아내가 성희롱 당하는데 지키지 못한 남자답지 못한 남자. 주유소 직원을 통한 암시된 것처럼 거세된 남자와 같은 처지라는 거죠. 그래서 이 영화는 정체 불명의 트럭과 맞서 싸우면서 상실한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찾아가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기계와 인간과의 대결이라든지, 데이빗 만을 대표하는 상층 계급과 트럭 운전사를 대표하는 하층계급의 대립이라는 해석이 있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이런 해석은 전부 개소리입니다. 영화를 해석할 때는 가능한한 그 영화에 사용된 장면이나 대사를 통해서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점이 1971년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여성운동이 일어나고 여권이 향상되기 시작하면서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을 가하던 시기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미국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데이빗 맨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사이에 세탁물을 넣을려고 열어논 세탁기 뚜껑이 보이십니까? 데이빗 맨은 조준경에 들어온 연약한 사냥감처럼 보입니다. 이후 이 남자의 고군분투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