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 작성일
- 16-03-16 13:51
인간관계중에는 가족, 친구, 직장동료나 그런 것 외에도 그냥 지인 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사실 제 돌아이력+까칠한 성격+부끄러움 이런 것 때문에 그런 관계가 많지는 않거든요.
얼마 전 딱 그냥 지인,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의 언니를 만났어요.
예전 공연에서 알게 된 사인데 공연 전 페이 협상하면서 저는 그냥 안하겠다고 해서
(그 때만 해도 프랑스에서 귀국한 지 며칠 안 된 무개념이라 한국의 출연료가 그렇게 거지같은 줄을 잘 몰랐;;)
같이 공연도 안하고 그냥 연습 때 몇 번 보고 만 사이였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그 언니에게 좋은 느낌을 받아서 나중에 따로 아주 가끔 연락하며 지냈죠.
페이스북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서로의 공연도 가끔 가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사이로 지냈는데
얼마 전 언니에게 문자가 왔어요.
"동롱아. 만나자."
결혼식에도 못왔었고 사고도 났었고 하니까 그 김에 겸사겸사 만나는 거였죠(뭐 전 그런 줄 알았)
그래서 만났는데 이 언니가 만삭이더라는.
오오 축하해!! 하고 같이 밥먹고 결혼얘기, 신랑얘기, 사고얘기, 언니 공연얘기 등등 하면서 수다도 떨고 하는데
이미 얘기 많이 한 것 같은데 커피를 마시재요.
그래서 제가 엄청 좋아하는 작은 찻집에 갔어요.
또 수다를 떨다가(사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깊이있게 팔 만한 수다거리도 별로 없었.)
슬슬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이 언니가....
내가 너한테 준 그거 있잖아. 하는겁니다. 만나자마자 결혼선물이라고 뭘 줬거든요.
봤더니 암웨이라고 써져있었.....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뭔 종이를 꺼내더니 암웨이가 얼마나 튼실한 화사이며, 회원이 되면 커미션이 얼마가 어쩌고 저쩌고.....
말을 끊고 물어봤죠.
근데 왜 나한테 이거 설명해? 필요한 게 뭐야. 그냥 얘기를 해.
뭐 제 얘긴 어차피 안듣습니다. 다 들어봐. 하면서 또 메뉴얼대로 설명을 하기 시작...
한참을 듣다가(정말 좋아하는 카펜데 정말 작거든요. 거기 사람들이 다 들었을 거에요... ㅠㅠ 엄청 창피했어요)
이 대화를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개드립을 쳐봅니다
언니. 근데.... 언니 홈쇼핑을 좀 봐. 이렇게 말하면 아무것도 못 팔 것 같아. 홈쇼핑 보면 얼마나 사람을 홀린다고.
응, 그렇지? 그래. 연습좀 해야겠다. 하더니 또 막 무슨 비타민을 사라고 합디다.
결국 그렇게 흐지부지 하고 일어났어요.
그리고 집에 와서 선물세트를 열어봤죠. (나름 암웨이 제품 좋아해서 살짝 기대도 하면서)
근데.... 주방세제거 한 통 들어있었어요. 그 큰 박스에. 그리고 그 옆에 수세미, 고무장갑, 행주, 세제담는 빈 통이
마치 지들도 상품인 냥 자리잡고 있었.
그 순간 열이 확 뻗치더라는. 아니 내가 치약이나 뭐 샴푸나 그런 게 서너 개 들어있으면
그래도 이언니가 나름 나한테 선물을 주긴 했구나. 라고 생각했을텐데 말이에요.
친한 사람은 아니라 그 사람이 나를 만난 목적이 그런거였든,
그 전에 우리의 대화가 다 다단계에 저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인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든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걱정이 될 만큼 친한 것도 아니고 안보면 끝잉게.
근데 아오. 내가 그언니 결혼선물로 진짜 고심해서 자클린 뒤프레 프라하 공연 실황 씨디를 선물했다는 사실이
그 세제 한 통과 겹치면서 훅 화가났다는.
그리고 그 날 저녁 또 친한 친구인 언니를 만나자마자 바로 얘기했어요.
야. 너는 혹시 다단계에 빠지면 그냥 닥치고 옥장판 하나만 사줘라. 라고 해라. 그러면 내가 사줄게. 진짜 약팔지 말자.
라고요.
그랬더니 그 언니는 자기 어릴 때 친구 얘기를 해주면 자기가 어떻게 그 사무실에 끌려갔고
어떻게 그 다음 날 아침까지 실랑이를 벌이다 경찰서까지 갔는지 썰을 풀어주며
그냥 깔끔하게 연락 끊으라는 조언을 해줬....;
뭐.... 아무튼. 그 지인이었던 언니랑은 이제 끝인걸로.
다들 굳애프터눈이에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