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가득!) 제가 본 놀란 감독의 배트맨 3부작
- 작성일
- 12-07-25 15:23
거의 모든 내용이 이 영화들의 스포일러이므로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안 읽는게 좋습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엄청 기대했고, 19일이 되었을 때 바로 봤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아직 알투디투님이 소개해주신 두개의 문이라는 좋은 영화를 못봐서 죄송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제게 너무나도 아쉬운 작품이었던 놀란 감독의 배트맨 3부작을 본 소감을 모두 여기에 적고자 합니다.
당연히 모든 내용은 제가 영화를 본 가공된 기억에 의존하므로 사실과는 조금 다를수도 있고, 특히나 다른 사람들과의 해석과는 다릅니다.
이렇게 이 영화를 봐야한다는 주장이 아님을 밝히면서 시작합니다.
일단, 제가 히어로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각 히어로의 신념과 그 신념의 실천입니다.
배트맨도 히어로물이기에 저는 이점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반대로 히어로물에서 자신의 신념이 없어 보이는 히어로들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 신념이 이해가 가지 않는 히어로들은 좋아하지 않구요.
그럼 배트맨의 신념은 무엇일까요?
저는 "법과 질서의 수호"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놀란 감독의 시리즈에서는 이것이라고 거의 확신했었습니다)
그럼 배트맨은 왜 저런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보통 특별한 신념은 인생의 장애물을 건너면서 생깁니다.
그리고, 세월에 따라 가공되어서 (없어지거나 희미해지는 경우도 있고, 확고해지는 경우도 있죠) 신념으로 확립이 됩니다.
이렇게 확립된 신념들은 그 사람의 행동원칙이 되어, 왠만해서 무너지거나 바꿀수 없게됩니다.
(그렇지 않은건 아직 확립된 신념까지 못간 것이겠지요)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에서는 신념의 확립 과정을 정말 잘 보여주었습니다.
첫 작품인 배트맨 비긴스에서는 이 과정 중 신념의 발생까지를 다룹니다.
눈앞에서 생긴 부모의 죽음으로 공포를 만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그 공포는 분노로 가공됩니다.
그리고 그 분노의 해소를 위해 이런저런일을 하다 결국 분노를 넘어선 "질서의 수호"라는 신념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라즈 알 굴과의 만남이 그 과정을 더욱 쉽게 만들어 준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브루스 웨인의 신념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번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럼 질서란 무엇인가?
브루스 웨인이 선택한 질서의 기준은 (제가 보기에) 법입니다.
그래서 브루스 웨인은 "법과 질서의 수호"라는 신념을 가지게 되고, 그에 따라 배트맨이 히어로로 탄생하게 됩니다.
배트맨에서 나오는 다른 인물들은 모두 배트맨의 신념에 한군데씩 영향을 주는 인물들 입니다.
비긴스의 라즈 알 굴은 바로 이전부터 있던 "질서의 수후자"이지요.
하지만 라즈 알 굴이 선택한 질서는 배트맨의 질서와는 다릅니다.
라즈 알 굴의 질서의 기준은 절대 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질서의 수호자" 사이에 각자의 질서를 위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배트맨은 이제 막 신념을 가졌을 뿐, 확립된 단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비긴스의 마지막에 라즈 알 굴을 "법에 따라" 집행하려 하지 않고, 그의 죽음을 방관합니다.
이것은 배트맨의 실수이자 미숙한 과거의 과오로 남게 됩니다.
배트맨은 법의 집행자가 아니므로 직접 처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요.
배트맨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부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배트맨에게 가장 중요한 신념인 법과 질서의 수호와 살인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죠.
이는 배트맨이 사실상 자신의 신념을 지키지 못한 것이지요, 미숙으로 인한 실패입니다.
한쪽의 질서는 지켰지만, (어찌 보면 더 중요한) 다른 한쪽의 질서는 지키지 못한 채로 비긴스는 끝이 납니다.
두번째 작품인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은 여러가지 신념의 역경을 만나고, 그를 통해 배트맨은 자기성찰을 통한 신념의 확립단계에 들어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먼저 다크나이트에서 가장 화려한 조커를 저는 "혼돈의 수호자"라고 봅니다.
하지만 배트맨과 조커는 목표가 질서와 혼돈이라는 반대의 가치로 정해졌을 뿐, 나머지 점에서는 거의 유사한 인물입니다.
물론 조커의 목표는 혼돈이기에 그에게는 모든것이 재미일 뿐, 목표를 거스르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조커는 질서의 수호자인 배트맨까지 혼돈을 위해 이용하고자 공존을 원합니다.
질서의 수호자와 혼돈의 수호자의 공존이야 말로 혼돈의 극치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배트맨의 신념이 아직 덜 확립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혼돈을 위해 계획하되, 그 계획도 일종의 질서이기에, 그 계획이 실패하는 것 조차 즐거워합니다.
그런 조커를 보면서 배트맨은 자신이 너무나도 조커와 닮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배트맨은 더욱더 자신이 기준이 되면 안 되는 것을 깨닫습니다.
배트맨이 원하는 법과 질서의 수호를 위해서, 그 기준은 절대 배트맨이 아닌 법에 있어야 합니다.
기준을 법이 아닌 배트맨이 가지게 되는 순간, 배트맨은 배트맨이 아니라 라즈 알굴이나 조커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악당이 사라진 후 법과 질서의 수호를 위한 마지막 걸림돌은 배트맨 자신임을 알게 됩니다.
이는 하비 덴트를 통해 더욱 강해집니다.
배트맨이 바라는 법과 질서의 수호의 마지막 걸림돌은 배트맨 자신이 됨을 느낀 그의 마지막 카드가 하비 덴트이지요.
그러나, 그를 위해 마지막 걸림돌이 될 배트맨은 하비 덴트와 가까워질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하비 덴트와 브루스 웨인은 어울릴 수 있지만, 배트맨은 어울릴 수 없습니다.
즉, 하비 덴트의 지원은 결국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이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하비의 입장에서는 배트맨이란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믿을수도 없는 상대로 남겨놓게 됩니다.
이를 조커가 잘 이용하여 결국 하비 덴트는 투 페이스라는 "랜덤의 추종자"가 되고 맙니다.
투 페이스는 배트맨이 원하던 화이트나이트가 될수 없는 인물이지요.
그래서, 배트맨은 또 한번 신념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일단 악당 투 페이스는 죽었습니다.
배트맨의 신념을 위해서는 화이트나이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화이트나이트가 나오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배트맨의 신념은 법과 질서의 수호이지 정의 구현이나 진실의 수호 혹은 악의 처단이 아닙니다.
그래서 배트맨은 자신의 신념을 제외한 모든 정의로움을 포기합니다.
그 선택이 세상에 거짓된 질서를 만드는 것이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일지라도 배트맨은 신념을 위해 이를 선택합니다.
이로서 배트맨은 확립된 신념을 가진 수퍼히어로 다크나이트로 거듭나게 된 것이지요.
다크나이트가 원하는 것은 자기행복도, 진실도, 정의도 아닙니다.
단지 법과 질서의 수호만이 남게 됩니다.
반대로 다크나이트가 두려워할 것은 죽음도, 자기희생도, 거짓도, 악도 아닙니다.
법과 질서의 파괴만이 두려울 뿐이지요.
이는 실수도 과오도 잘못된 선택도 아닙니다. 배트맨이라면, 다크나이트라면 당연한 선택인 것이지요.
이렇게 영화 다크나이트의 끝에서 드디어 브루스 웨인은 다크나이트로 완성됩니다.
이제 세번째 작품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남았습니다.
배트맨은 확고한 신념을 가진 다크나이트로 이미 자리잡았습니다. (그래서 은둔해 있죠.)
자, 그러면 다시 배트맨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은 무엇일까요?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배트맨에게 남은 두려움, 즉 법과 질서의 파괴입니다.
이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베인이지요.
베인은 "질서의 파괴자"입니다. 물론 베인의 목적은 따로 있는 듯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 목적이 다른 질서이던, 파괴 그 자체이던, 사랑이던 뭔 상관입니까.
베인으로 인해 다크나이트가 만들어 놓은 법과 질서가 파괴됩니다.
다크나이트는 다시 나와서 베인이 부순 법과 질서를 복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베인도 바보는 아니지요.
다크나이트가 만든 법과 질서를 부수기 위해 베인이 선택한 도구는, 진실입니다.
지금의 질서는 거짓에 기반하고 있다는 다크나이트 스스로가 포기한 정의로움을 공격함으로써, 세상의 질서는 무너집니다.
그리고 베인이 만든 약육강식으로 보이는 새로운 (오히려 혼돈에 가까운) 질서에 의해 고담시는 흘러가게 됩니다.
다크나이트는 이를 막아보려하지만 역부족이고,
오히려 결국 베인의 신념이 확립된 지하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하지만 브루스 웨인은 주인공답게 그 역경을 극복하고 두번째로 지하감옥을 자력으로 탈출하는 인물이 됩니다.
여기서 영화상으로 정말 짧지만 맘에 안 드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지하감옥에서 나온 브루스웨인은 왠일인지 지하감옥으로 밧줄을 던져줍니다.
배트맨은 억울하게(?) 갇혔지만, 그곳은 어디까지나 지하감옥. 바로 법과 질서를 위협한 사람들이 갇혀있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세상에 나올수 있는 출구를 브루스 웨인이 만들어 줍니다.
저는 이를 다크나이트의 신념이 감옥에서 무너지고, 다시 배트맨 수준으로 퇴보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자기희생 따위는 신념을 위해 얼마든지 감수하던 그 다크나이트는 지하감옥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배트맨은 다시 신념의 무너짐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결국 고담시로 돌아온 것은 다크나이트가 아닌 배트맨.
그는 질서를 위해 질서의 파괴자들과 싸웁니다.
(이 때 존 블레이크와 셀리나 카일과의 이야기는 뒤로 빼겠습니다)
그리고, 질서의 파괴자들을 모두 처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과거 배트맨의 과오를 만납니다.
바로 탈리아 알 굴, 배트맨이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지 못하고 그 죽음을 방관한 라즈 알 굴의 자손입니다.
즉, 탈리아 알 굴은 배트맨에게 "미숙했던 과거의 과오"라는 존재로 다가온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베인에 의해 다크나이트가 아닌 배트맨인 상태로 돌아간 그로서는 이를 자력으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배트맨의 신념은 또 한 번 흔들리게 됩니다.
게다가 베인의 마지막도, 탈리아 알 굴의 마지막도 배트맨의 신념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둘다 법에 의한 처단대신 죽음을 맞게 됩니다.
다시 배트맨의 신념은 이렇게 무너집니다.
배트맨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저는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배트맨은 마지막으로 원하던 질서의 수호를 위해 폭탄과 함께 사라집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정말 안 좋게 생각합니다.
전작들과는 반대로 다크나이트가 배트맨이 되고, 다시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영화가 너무 잘 만들어져서 이를 보면서 저는 화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 그 대미를 장식하는 두 인물 존 블레이크와 셀리나 카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존 블레이크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배트맨 시리즈에서 가장 맘에 안 드는 인물이 로빈입니다.
배트맨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공포-분노-신념의 확보-자기성찰-신념의 확립의 단계들을 거쳤던 반면,
로빈은 공포-분노의 단계에서 멈춰져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배트맨이 로빈을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고자 하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신념이 확립되지 못한 로빈과 함께 (로빈이 독단적으로 말 안 듣고 나가는것 제외) 활동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는 다시 배트맨의 신념을 깨뜨리는 행위이기 쉽습니다.
로빈의 신념은 로빈의 질서는 배트맨과 다를수 있기 때문이지요.
크리스찬 베일이 3부작에 로빈이 나오면 출연하지 않겠다는 인터뷰를 했을때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거짓이었습니다.
혹자는 블레이크는 로빈이 아닌 2대 배트맨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블레이크의 신념은 위에서 말한 우려대로 배트맨의 신념과 다릅니다.
따라서 블레이크는 배트맨의 옷을 입고, 배트카나 배트포드를 타고, 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배트맨은 될 수 없습니다.
고든경감이 블레이크에게 일깨워준대로 "법으로는 대처하지 못하는 정의"까지도 블레이크에게는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존 블레이크는 로빈입니다.
게다가 더 나쁜 점은 로빈은 아직 신념의 확보조차 확실히 못한 상태입니다. 로빈은 아직 분노가 행동의 결정에 영향을 줍니다.
아직 히어로로서의 조건조차 만족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를 이끌수 있는 배트맨이나 알프레드도 없습니다. 고든경감 정도만이 남아 있을 뿐이지요.
블레이크가 배트맨의 동굴로 들어서는 장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탄성을 가져왔지만, 저에게서는 탄식을 가져왔습니다.
깊이는 조금 얕지만, 존 블레이크만큼 마지막을 안타깝게 만든 인물이 있습니다.
셀리나 카일, 바로 캣우먼입니다.
캣우먼이 배트맨에서 가지는 역할을 다크나이트의 자기희생과의 대척점으로 저는 봅니다.
캣우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행복입니다.
캣우먼은 자기행복을 위해서, 도둑질을 하고, 배트맨을 공격하고, 배트맨과 협력하고, 브루스 웨인을 사랑합니다.
캣우먼은 사실 제 역할을 다 했습니다.
제가 안타까운 것은 그 브루스 웨인입니다.
브루스 웨인도 일상적인 행복을 가지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보이는 이유가 레이철 도스의 죽음이었지만, 숨겨진 진짜 이유는 자기희생의 상징이라고 봅니다.
브루스 웨인도 셀리나 카일을 만나서 반하게 됩니다.
하지만 브루스 웨인은 그때 다크나이트였고,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비록 반했지만 캣우먼은 자신의 신념인 법과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크나이트가 배트맨이 되고, 그 배트맨조차 신념을 지키지 못하면서 폭탄과 함께 사라집니다.
캣우먼이 베인을 죽이면서 말하는 장면에서 그 신념의 흔들림은 정점을 찍습니다.
배트맨과 같이 싸우는 사람이 살인도 괜찮다니요!
게다가 그것을 방관하는 배트맨은 또 뭡니까!
이 시점에서 배트맨은 스스로 배트맨이기를 포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배트맨이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브루스 웨인이 선택한 것은 셀리나 카일과의 행복입니다.
이제 브루스 웨인은 신념보다 자기행복이 중요해졌습니다.
다크나이트는 적(베인과 탈리아)에 의해 신념이 무너져 다시 배트맨이 되었지만,
배트맨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브루스 웨인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서 신념을 이을 후계자는 아직 신념을 가지지도 못한 배트맨이 될 수 없는 로빈...)
예, 다크나이트 라이즈라는 제목을 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이렇게 다크나이트의 몰락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이렇게 더이상 배트맨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배트맨 3부작은 끝이 납니다...
- 게시물이 없습니다.
- 게시물이 없습니다.
-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