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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 생각이 모두 나 같지 않은 건 알지만.. 한영애의 <옛사랑>이 하위권으로 밀려간게 참 아쉽습니다.
저는 이 곡이 지금까지 나가수에서 들은 곡 중에 손 꼽을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가수들이 높은 음역을 오르내리는 기교와 웅장한 코러스, 화려한 악기로 치장을 할 때, 한영애는 그 치장을 다 벗어버리고 오직 자신의 목소리로만 노래를 했습니다.

노래가 시작되고 몇 소절이 흘러가도, 악기는 한영애의 목소리 하나였고, 이어 흘러 나오는 연주는 한영애의 목소리를 경처하는 듯한 악기들의 소리였습니다.

세상에 처음 노래가 만들어졌을 때, 그 노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과의 교감이 이루어진 대화였을 것이고, 필시 오늘 한영애의 노래와 같은 것이었을 겁니다.

어렸을 때, 별 것도 아닌 것에 혹해서 대가의 작품을 우습게 봤던 적이 있었습니다. 영화쟁이인 제게는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가 그랬습니다.
브레송의 영화는 후기로 갈수록, 배경이 점점 사라집니다. 배우는 그냥 벽 앞에 서서 굳은 얼굴로 묵묵히 대사를 읊을 뿐입니다.
그 영화의 작품성을 (책에 적힌 이론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으로) 깨닫기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최민식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사진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은 들어봤을 대가 중에 한 분입니다.
이 분이 영광스럽게도 제 결혼식 사진을 찍어주셨습니다. 결혼식 일주일 전에 저랑 지금의 집사람을 불러서 사진을 찍는데, 그냥 맨 벽에다 대고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하늘을 한번 봤다가 카메라에 눈을 대고, 엄청난 속도로 셔트를 누르시더군요. 그리고 다시 다른 벽에다 저희들을 세워놓고 하늘을 또 봤다가 바로 카메라를 대고 사진을 찍고, 이렇게 하기를 몇차례 반복하시더군요.
그 분은 빛과 사진 앞에 놓인 인간만 보고 셔트를 누른 것입니다. 예식 사진을 찍을 때의 그 화려한 스페인 풍의 무대와 의상이 아니라 다 비워버린 사진. 남자와 여자 그리고 흰 벽,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크나큰 울림이 있습니다. 빈 공간이지만 거기를 감싸고 있는 이상한 기운.


오늘 한영애의 노래는 제게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노래는 나가수 무대에서 불리워져서는 안되는 무대였습니다.
한영애의 목소리가 자자지고 난 뒤에는 무대를 텅비게 했야지 다른 노래로 채워버리면 그 노래는 휘발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대기실에서 평가를 기다리다 하위권으로 떨어지자 실망하는 한영애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횡설수설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