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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편지>를 듣고 있다.

물론, 시작은 유재하. 버벌진트와 나얼을 거쳐 JK 김동욱을 지나고 있다. 임상아와 소나기 프로젝트, 전제덕의 <우울한 편지>가 남아 있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을 들으면서 그렇게 됐다.

1987년 유일한 독집 앨범이자 유작이 되어 버린 이 앨범이 나올 무렵 LP로 사서 듣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CD로도 듣게 되었고. 아, 벌써 25년이 지났구나.

한 여자 아이가 있었다. H5라고 하자.

대학에 입학하면서, 고3이던 H5에게 수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어머니 친구분 딸이라 아무런 보수가 없었지만, 즐겁게 가르쳤다. 내 방에 나란히 앉아 나는 수학 문제를 풀었고 H5는 가만히 아무 소리 없이 듣기만 했다. 제대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다. 가끔씩 옆을 봤을 땐 풍성한 단발머리가 얼굴 모두를 가리고 있었다.

가장 기뻤던 일은, 어느 날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학교 수학 시간에 일어난 일을 내게 말했을 때다. 앞에 나가 수학 문제를 풀었는데 담당 선생으로부터 무척이나 창의적인 방법으로 풀었다며 칭찬 받았다며 얼굴을 붉혔다.

대학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건너 들었다. 수학 성적이 무척 잘 나왔다고도 했다. 그런가, 다행이다, 잘 됐구나 생각하고 잊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집 근처 지하철 역에서 우연히 만났다.

가볍게 밥을 같이 먹었다.

지나가는 말로 다음에 또 기회 되면 같이 밥 먹자고 했다. 2주인가 3주 뒤에 또 다시 식사. 그런 식으로 한 달에 한, 두 번씩 밥 먹고 차 마시고.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종로에서 <Face Off>를 같이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이었는데 사람이 거의 없었다. 좌석은 텅텅 비어 있고. 계속 만나고 싶다고, 사실 사귀고 싶다며 손을 내밀었다. 열차는 달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무심히 자신의 일을 했다. 당황했는지, 황당했는지 묘한 표정을 짓더니 한참 있다가 내 손을 잡았다. 손이 무척 작다고 생각했다.

유재하가 남긴 앨범이 열 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 여러 사람이 그를 추억하기 위해 앨범 하나를 만들었다. 후배 가수들은 노래하고 선배들은 <재하를 그리워하며> 재하에게 이런 저런 얘길 했다.

당시 그 앨범을 계속 듣고 있었다. 파란색 파라소닉 CDP 안에는 늘 그 앨범이 들어 있었다.

H5를 기다리며 지하철 역사 안 기둥에 기대 노래를 듣고 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게 날 툭 쳤다.

이어폰을 빼고 H5를 쳐다봤다.

그 자리를 뜨려고 할 때, 가방 안에서 무언가 꺼내 내게 보여 주었다.

그 앨범이었다.

CDP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들어 있고 CD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같이 웃었다.

그 때가 1997년이었으니 그 시절도 15년이 지났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도, 그를 기리는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앨범도, 레코드 가게에 가서 바꿔온 Radiohead 앨범도 내 옆에 있다. 늘상은 아니지만 꽤 자주 듣는다.

<우울한 편지>를 들을 때마다 다음 구절에 마음이 묘하다.

슬픈 지, 기쁜 지, 우울한 지, 뿌듯한 지, 자랑스러운 지, 부끄러운 지 모르겠다.

노래만 남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시간이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바라볼 때 눈물 짓나요

마주친 두 눈이 눈물 겹나요

그럼 아무 말도 필요 없이 서로를 믿어요

어리숙하다고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그대는 아는가요 아는가요

내겐 아무 관계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