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3)
- 작성일
- 15-11-20 10:56
둥지 세번째 이야기 - 결론 나다.
둥지 1
둥지 2
둥지 3편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이것도 일종의 약속인데
어떤식으로든 마무리를 지어야 할것 같아서 이렇게 몇자 적습니다.
일단 천정과 벽채를 작업한 대략적인 모습입니다.
일반 천정재가 아니고 가로 90cm 세로 180cm 짜리 석고보드를 혼자서도 작업이 가능할수 있도록
반으로 자르고 너무 단조로운 무늬가 싫어서 자른 두장중 한장엔 라카로 추상적이고 환상적이고 예술적인 문양을
그려보았습니다.
자르지 않아도 원래 크기대로 작업이 가능한 벽채에도 두장중 한장꼴로 라카로 무늬를 넣어주었구요
혹시 무늬가 대충 성의가 없는 그림처럼 느껴진다면 순전히 기분탓일겁니다.
천정이 처음 작업때는 아주 평평한 모습였는데 습기를 머금고 자체 무게때문에 약간 아래로 휘면서
자연스레 굴곡이 지었습니다.
- 속편하게 보자면 이것마저도 편한 시각적 효과를 주어 꽤나 괜찮아 보이네요.
사실 아무리 측량과 계산을 정확히 해도 두면이 맞닿는 모서리 부분은 정확히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정확하게 맞출 필요도 없거니와 그런 수고를 다른 부분에 기울이는편이 훨씬 더 합리적입니다.
두 면이 닿는 모서리나 천정선, 그리고 바닥과 닿는 아랫부분은 몰딩이라는 자재로 마감하면서 약간씩 오차가 나는 부분을
그냥 덮어버리면 됩니다.
나같이 가난한 아마추어는 그냥 몰딩 대신 검은 테이프를 붙여버리는걸로 하죠.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보는이도 없고 어차피 나 혼자 부대낄 공간인걸요.
천정과 벽채 작업을 하면서 바닥공사에 대한 계획이 꽤나 많았었습니다.
30cm 정도 단을 쌓고 보일러시설이나 혹은 전기 온돌을 하고 커텐을 달아서 주거공간으로 만들어볼까 계획했었습니다만....
비가 제법 오던 지난 주말 숙직 비슷하게 우중감찰을 해본 결과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이 둥지 관련 모든 작업에 더 이상의 투자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발견된 끔찍한 광경이란......
배수펌프가 연결된 바깥쪽 출구가 예전에 사용하던 정화조와 연결 되었는데
비가 제법 오니 이 정화조가 역류하여 밤새도록 이 펌프가 돌아가는겁니다.
말이 좋아 역류지 사실 정화조까지 가는 배관도 다 터진 상태고 이것이 땅으로 스며들고 다시 지하실로 스며들어 또 펌프로 배수하고....
이런 무한 반복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 오는날 잠 자다가 펌프가 고장이라도 나면 아마 난 지하실에서 익사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입니다.
가끔 물이 찰수도 있다는 얘길 듣고 모든 전기 시설을 사람 가슴 높이 이상으로 올려 설치했으니
감전에 대한 위협은 둘째로 하더라도 침수에 대한 문제는 심각수준을 넘어 해결 불가능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뭐 어쨋든 -.
담배냄새 없는 공간에서 내 맘대로 칠수 있는 당구대. - 물론 내꺼니까 게임비도 없는 공짭니다.
스물네시간 언제라도 칠수 있습니다.
월세가 한달 15마넌이니까 하루 한시간만 당구쳐도 월세는 버는 셈입니다.
부지런히 당구치는게 남는겁니다.
당구 치다가 피곤하고 졸리면 다시 집에 올까요?
그냥 대충 두어시간 눈 붙이고 또 당구쳐야 합니다.
그래서 앵글로 침대를 만들고 이불 깔고 전기담요 넣고.....
첨엔 그냥 소파에서 잤습니다만..... 잠은 편히 자야 하는겁니다.
당구치고 잠자고... 그래도 컴퓨팅이 빠지면 안되죠.
아직 인터넷은 연결 안했습니다...
천정 작업하면서 전기배관을 넣을수 있는 호스를 묻어야 하는데 까먹었습니다.
천정 몇장 다시 뜯어내고 호스 묻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발단이 된 피아노....
계획대로라면 이 자리엔 지금 그럴듯한 중고 어쿠스틱 피아노가 앉아있어야 할 자립니다.
물 잠기면 도망 가야 하는데 300Kg가 넘는 피아노는 내가 감당할수 없으니
그냥 쓰던 피아노 계속 쓰는걸로.....
별수 없지요.
당구치다가 잠깐 자다가 또 피아노도 좀 치다가.....
내년 이맘때쯤엔 베토벤 소나타 하나쯤 연주할수 있을런지 모르지요.
간이 주방입니다.
첨엔 커피나 끓여먹다가....
그 담엔 입이 심심하니까 과자부스러기나 먹다가....
따끈한 국물이 아쉬워 라면이라도...
라면 많이 먹으면 해로우니까 라면에 떡국떡이라도....
- 그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예언을 실현하는 중입니다.
8-90리터 쯤 되는 작은 냉장고를 들여놓고 김치나 과일이라도 넣어놓고 먹을까요.
이사진은 벽이 그냥 남아서 흰 페인트 칠해놓은게 아니라...
스크린입니다.
영화를 좋아해서.... 가 아니라 무료한 백수생활에 보탬이 되는 유익한 드라마 시청용...
앞에 놓은 빨간 의자는 화면 크기 가늠하라고...
양 옆에 2채널 스테레오 슈퍼 우퍼 스피커.
하드 뒤적거려보다가 묵은 드라마 하나 있길래 8시즌째 보는중.
그냥 가끔 심심할때나 한편씩 보는...
이젠 결론 났습니다
배수펌프가 고장 나기전에
난 최소한 베토벤 소나타 한곡쯤 연주할수 있을만큼 내 피아노를 많이 두들겨야 하며
시간이 허용하는한 무조건 최대한 많이 당구를 치고
스몰빌의 클락캔트가 꼬부랑 할부지가 되도록 드라마를 섭렵해야
올해 내가 이 지하실에서 벌린 일들에 손실을 만회하는 겁니다.
결론은 결론이고..
회사 짤리고 백수 된지도 어언 7개월이 다 돼갑니다.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로 쳐박힌지 한참이고 주변 이웃들의 눈초리도 혹시 내가 간첩 아닐까 하는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더 늦기 전에 이젠 취직을 해야지요.
아참, 취직하기 전에 가볍게 전국 일주 여행이나 다녀와야겠네요.
p.s.
옆에서 보는거하고 직접 하는거하고 많이 틀리더군요.
그래도 이젠 자신 있습니다.
사오년뒤 일찌감치 은퇴하고 산골 싸구려 자갈밭 사서 일년이 걸리든 이년이 걸리든 내 손으로 집 짓고 풀 뜯어먹으면서
피아노 치고 당구치면서 살 계획였는데 어쨋든 내 손으로 집 짓는건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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