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응급실
- 작성일
- 14-02-04 17:46
아래 도룡뇽 임호 글 보고
지난 주말에 있던 좀 굵직한 일이 생각나서 몇자 적습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 3시 50분경
와이프님께서는 아기에게 먹일 간식을 만들고 계셨습죠.
보통 4시 즈음에 아기에게 간식을 먹이는지라
저는 아기를 안고 부엌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날 간식은 아보카도였어요.
아보카도가 처음에 칼로 반을 베어서
안에 있는 큰 씨를 꺼낸 후에 썰어 먹으면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요 큰 씨를 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좀 위험하긴 하지만 추천받은 방법이 있으니
바로 칼끝을 씨에다가 수직으로 꽂아서 빼내는 방법이랍니다.
지난 몇 년간 이 방법을 효과적으로 써먹어왔길래
이날도 와이프님께서는 망설임 없이 칼을 꽂는데...
헉.
칼날이 미끄러졌는지
와이프님 손가락이 베이고 말았습니다.
피가 철철 나더군요.
일단 바로 옆에 있는 수돗물에 피를 약 1분간 씻고 상처를 보니
이건 단순히 피부만 베인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살이 살짝 튀어나온 열상이었습니다.
고민하기를 약 1분.
응급실에 가기로 했습니다.
간식시간이 임박해서 보채기 시작하는 아기에게 급한대로 분유를 타서 물리고
혹시 몰라서 저녁이유식, 기저귀, 물티슈 등등을
정신없던 그 와중에 준비해서 어여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사실 평소에 외출대비 아기가방을 상시 준비해두긴 합니다.
약 20분 걸려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다행이 그렇게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응급실에 가면 중상이 아닌 이상
세월에 네월아 하고 기다리는 경우가 많던데
이날도 그러했습니다.
듣자하니 ABC 원칙이라는 것이 있더만요.
Air (숨을 쉬는가), Blood (출혈이 있는가), Conscious (의식이 있는가)
요 세 가지를 기준으로 더 위급한 환자를 먼저 본답디다.
와이프님의 경우는 출혈이 있었지만
병원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큰 상처는 아니었는지
더 급한 환자들에 밀려 끝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날따라 왜그리 구급차들이 많이 오던지요.
응급실에 도착한게 4시 35분이었는데
8시에나 되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잇었습니다.
그중간에 아기 저녁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고
아기는 이미 쌔근쌔근 캐리어 안에서 잠들어 있었구요.
저랑 와이프님은 병원 근처 마트에서 가서 간단히 저녁거리를 사와서 먹었구요.
암튼 의사를 만났습니다.
보더니 바로 꼬매야겠다고 하네요.
출산 때를 제외하고 꼬매는 것이 처음인 와이프께서는 몹시 긴장하시더군요.
소독을 하고,
시술동의서에 사인하고...
뭔노메 서류가 그리 많은지 ㅠㅠ
그리곤 원무과(?) 직원이 와서 "너네 보험 잇니" 하고 물어봅디다.
여기서 보험이 없으면 정말 큰 돈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와이프님께서는 여행자보험이 있어서 그걸로 처리했네요.
(와이프님께서 여행자보험을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복잡하니 설명은 생략합니다)
조금 있다가 의사가 와서 마취주사를 놉디다.
와이프님께선 주사바늘이 아프다고 고통스러워 하십디다.
그러곤 20여분 후에 의사가 다시 와서 이제 드디어 꼬맵니다.
한 땀
두 땀
세 땀
다행히 의사가 솜씨가 나쁘진 않았습니다.
저보고 자기 솜씨가 어떠냐길래 '뷰티풀'이라고 해줬습니다.
얘네들 여유는 참 좋습디다.
와이프님께선 못쳐다보겠다고 하십디다.
집에 오니 10시가 넘었습니다.
아기는 다행히 큰 말썽없이 계속 자주었네요.
집에 와서 정리좀 하고 와이프님과 안방에 둘이 있는데
갑자기 와이프님께서 울기 시작합니다
전 무섭고 아파서 그런 줄 알았는데
자기 때문에 제가 너무 고생해서 그게 더 미안하답디다.
가뜩이나 아기 보는 것이 쉽지 않은데
와이프님께서 한동안 아기를 손으로 안기 힘든 상황이라
이미 여러가지 일로 바쁜 제게 더 큰 부담을 줘서
스스로가 너무 원망스럽고 한심하다고 합디다.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우린 둘이 나란히 앉아서 한 10분을 조용히 울었습니다.
오늘은 월요일이었네요.
지난 이틀 간 솔직히 제가 좀 육체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와이프님께선 아기가 앉아서 놀 때
옆에서 있다가 넘어지지 않게 한 팔로 잡아주는 것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한 손으로 요리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며 좋아합니다.
제 설거지 부담을 줄여준다고 당분간 일회용 그릇을 쓰잡니다.
씻는 것도 제가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다친 손에 비닐 봉지를 씌워서 고무줄로 고정하고 혼자 씻겠답니다.
이를 보는 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상처가 언제쯤 다 아물런지 모르겠습니다.
열상부위를 꼬맬 때 녹는 실을 쓰지 않아서
이번 주 토요일에 다시 병원에 가서 실밥을 빼내야 합니다.
실밥 빼내면 며칠 후에 상처가 아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지난 토요일 일을 다시 곱씹으니
다시 가슴 한 켠이 아파오네요.
다행히 쌔근쌔근 잘 자고 있는 와이프님 한테 가서
볼에 뽀뽀 한 번 해주고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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