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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게임] '브라질전이 부끄럽다고?'…우리 안의 사대주의

[두서있는축구=서형욱] 브라질전에서 대한민국이 0-2로 패했다. 굳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성적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선전한 결과다. 정예 멤버들이 총출동한 브라질은 제 아무리 홈에서 맞아들인다고 해도 결코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상대다. 더욱이 이번에 브라질 선수들은 다른 A매치 참가국들에 비해 여유있는 일정으로 입국했다. K리그 일정 등으로 뒤늦게 제 꼴을 갖춘 홈팀 한국 선수들보다 오히려 더 일찍 소집된 셈이다. 2박이나 3박 일정으로 한국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다른 A매치 사례와 비교하면 이번에 우리가 맞붙은 브라질은 그런 점에서도 분명 제대로 된 강한 상대였다. 비록 열세를 노출하며 패배하기는 했지만, 그런 그들을 상대로 여러 가능성과 한계를 두루 확인한 브라질전의 두 골 차 패배는 기뻐할 순 없어도 납득할 수 있는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 여론은 경기 결과나 내용이 아닌 매너에 집중했다. 요컨대, 우리가 일종의 ‘태권 축구’를 펼쳤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20개 넘는 반칙이 나왔으며 때론 공과 상관없는 충돌도 있었고 상대 선수들의 강한 어필도 목격할 수 있었으니 부드러운 시합은 아니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나, 더 나아가 ‘부끄럽다’거나 ‘더럽다’는 표현까지 나오는 분위기는 어딘지 불편하다. 정말 대한민국 축구는 브라질전에서 비열하고 ‘더러운’ 축구로 ‘부끄러운’ 경기를 한 것일까. 그래서 이러한 비난 섞인 비판을 겸허히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객관성과 사대주의 사이 

의아함의 출발점은 이 모든 표현이 철저하게 외부의 시선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데에 있다. 우리 사회의 시선은 때론 힘의 논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백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유색 인종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또한, 때론 우리의 입장보다 (우리보다 낫다고 여겨지는)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배려(혹은 의식)하는 경향도 있다. 축구장 위에서 벌어지는 (심판도 상대도 인정한) 정당한 경기에 대해, 우리 스스로 먼저 나서 '창피'와 '비열'을 논하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어쩌면 그 연장 선상에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식의 해석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을 객관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브라질전에서 한국 대표팀의 경기 방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는 분명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입장에서 개인적으론 이 경기가 일반적인 축구 시합보다 대단히 거칠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양팀 선수들간의 감정 싸움이나 공과 상관없어 보이는 충돌이 몇 차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주심은 누구도 퇴장시키지 않았고 경기는 아무 문제 없이 종료됐다. 만일 규정에 어긋나는 과도한 행위가 있었다면 주심이 조치를 했을 것이고, 상대팀도 그대로 경기에 임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동의 침대축구가 여전히 가능한 것도 그들이 규정 안에서 영악하게 플레이하기 때문이다. 그걸 얄밉다고 할 수는 있어도 공개적으로 비난할 도리는 없다. 억울하면 골을 더 많이 넣고 앞서가야 할 일이다. 반대로 보자면, 브라질 선수들이 헐리웃 액션을 취하거나 우리 선수들에게 헛발질을 하며 장난을 거는 것도 마찬가지다. 얄밉지만 어쩌겠나. 정상적으로 끝난 경기에 대해 '더러운 경기', '부끄러운 축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경기 후 스콜라리 감독이 말했듯 "축구는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한 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듯 공 하나를 두고 22명의 장정들이 뼈와 살을 맞대며 충돌하는 것이 축구다.  

브라질의 에이스 네이마르. 거친 수비를 하지 않고 그를 견제할 수 있는 팀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사진=연합뉴스)

브라질 선수들의 경기 후 인터뷰도 일반적인 수준이었다. 집중적인 견제를 받은 네이마르가 "반칙은 나에게 늘 따라 붙는 친구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나 "한국 선수들이 거칠었다"고 말한 것은 경기에 대한 소감일 뿐이다. 이를 굳이 한국 축구를 비꼬거나 비난한 것으로 해석하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이 표면적으로 밝힌 것 이상의 속내를 어찌 읽고 우리끼리 부끄럽다 되뇌일 수 있는 것일까. 한국 축구에 대한 열등감이나 브라질 축구에 대한 사대주의가 아니라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브라질 축구에 경의를?!

또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친선경기인데' 거친 축구를 했다는 비난이다. 이 경기는 친선경기이면서도, 월드컵을 준비하는 평가전이기도 하다. 강팀을 만나 한국팀의 현재 위치를 체크해볼 수 있는 매우 귀한 기회다. 또한, 이것은 브라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 자동 진출이 확정된 브라질에게는 평가전이 유일한 실전 훈련의 장이다. 그들에게도 한국전은 말그대로의 '친선' 경기가 아니라 실전 평가전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본선에서 강호를 만나 상대할 법을 준비해야 하듯, 그들 역시 본선에서 자신들에게 거칠게 나올 상대들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많은 돈을 퍼부은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단순히 돈의 액수가 아니라 각자에게는 이 경기에서 얻어야 할 것들이 또 있었다. 아무리 친선경기라한들, (한국 대표팀이) 거칠게 나올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다면 그건 도리어 그들의 문제다. 우리가 다소 감정적으로 대응한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분명 다듬어 나가야 하겠지만 거친 플레이 자체에 대한 과소평가에는 곱씹을 부분이 있다. 

그러니, 굳이 브라질이나 외국이 우리 축구를 어떻게 볼 지 걱정하는 것 자체가 기우가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얻을 것을 얻어가면 된다. 전략적으로 거친 축구를 택한 한국 축구가 잘못되었다는 논리라면, 우리는 브라질을 불러들여 정상적인 축구를 펼쳐 더 많은 골을 내주고 패배했어야 했을까. 그렇게 상대가 다칠까 걱정하며 예쁘게 공을 찬 뒤, 중국이나 일본처럼 0-8, 0-4로 패배하고 "페어플레이했다" 자위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까. 어차피 본선에서 만날 상대들은 강팀이고, 그렇다면 이렇게 강하게 붙어 경험과 자신감을 쌓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 아닐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축구는 쇼가 아닌 승부다 

벌써 9년이 넘은 일이다. 2004년 7월에 ‘바르셀로나에게 경의를?!’이라는 컬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수원 삼성과 내한 경기를 가졌다. 바르셀로나는 수원의 우르모브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0-1로 패한 채 한국을 떠났다. 경기 후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수원이 친선경기인데도 지나치게 거친 축구를 해 부끄러웠다’, ‘이런 식으로 축구하면 앞으로 강팀들이 한국에 안오려고 할 것’ 등등의 비판 여론이 존재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브라질은 큰 돈을 받고, 자신들의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다. 한국 축구에 멋진 경기를 보여주려 노개런티 입국을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축구를 하면 되는 것이다. 우승권 전력이 아닌 우리 입장에서는 그런 강팀들을 상대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전략을 시험해 볼 기회였고, 이를 위한 감독의 선택은 다소 거칠더라도 뛰어난 상대를 견제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를 두고 "부끄럽다", "비열하다"는 표현을 하는 이들의 생각에 '사대주의'라는 딱지를 붙인다면 지나친 것일까. 

그들이 축구를 잘 한다는 사실과, 그들의 축구가 보호받아야 한다는 투의 주장은, 서로 별 상관이 없는 얘기다. 그것이 경기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 축구는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이고, 반칙이나 몸싸움은 그 안에 당연히 포함되는 요소들이다. 그러한 면을 거세한 채 기예를 겨루는 것은 축구가 아닌 서커스나 쇼와 다름 없을 것이다. 파울을 '정도껏' 하라는 주장 또한 마찬가지다. 지나쳤다면 왜 아무도 퇴장을 당하지 않았을까. 한국에게는 한국의 입장이 있고, 브라질에는 브라질의 입장이 있다. 하나의 사안을 바라볼 때 한 쪽의 입장을 배제하는 대신 굳이 한쪽(브라질)의 입장만을 고려해 해석하는 것은 온당한 것일까. 또한, 아무 문제 없이 끝난 경기, 왠만한 축구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경기에서 나온 몇몇 장면들을 과장되게 해석해 이를 지나치게 거칠고 더러운 축구라 폄하하는 것은 건전한 생각일까.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피와 땀을 생각하면 참 편한 생각은 아닐런지. 거친 축구에 냉정이 필요하다는 수준의 조언이나 경고가 아닌, 그러한 축구의 일면을 부끄럽다 몰아 세우는 것은 그래서 아쉽다